강석훈 신임 산업은행 회장이 8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산업은행으로 출근하던 도중 산업은행 부산 이전 등을 반대하는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조합원들에게 가로막혀 있다. 사진=뉴시스
강석훈 신임 산업은행 회장이 8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산업은행으로 출근하던 도중 산업은행 부산 이전 등을 반대하는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조합원들에게 가로막혀 있다.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강석훈 신임 산업은행 회장이 노조의 반발에 부딪혀 이틀째 출근하지 못하고 있다. 신임 회장 취임으로 기업 구조조정 작업이 재개될 거라는 기대가 높았지만, 부산 이전 문제를 둘러싼 노조와의 갈등이 새로운 장애물로 떠오르는 모양새다.

앞서 강 회장은 지난 8일 서울 여의도 산은 본점에 도착했으나 노조원들이 출근을 저지해 발길을 돌린 바 있다. 9일에도 노조의 출근 저지 투쟁이 계속되자, 강 회장은 본점으로 출근하지 않고 외부에서 업무를 시작했다. 

노조와 강 회장의 출근을 저지하고 나선 이유는 윤 대통령이 지난 대선 당시 공약한 산은의 부산 이전 문제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선거캠프에 참여해 경제정책 자문을 담당한 인물이 신임 회장으로 취임한 만큼, 산은의 부산 이전 작업이 빠르게 추진될 것이라는 위기감이 커진 것이다. 실제 강 회장은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선거대책본부 정무실장을 맡아 경제 분야 정책 자문 및 공약 개발에 참여했고, 당선 이후에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정책특별보좌관으로 일했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한국산업은행지부는 지난 8일 성명을 내고 “노동조합은 산은 본점이 지방으로 이전해서는 안 되는 이유에 대해 수백, 수천 번을 얘기해 왔다. 대부분의 금융전문가들도 반대 의견을 표명하고 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핵관들의 정치 논리를 대통령은 외면하지 못했고, 국정과제에 버젓이 포함됐다”고 지적했다.

노조는 이어 “오늘 내정된 내정자가 본점 지방 이전 미션을 부여받고 올 것이라는 점은 자명하다”며 “우리의 이 같은 경고를 귀담아듣지 않는다면 낙하산과 정권은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부산 이전 문제를 둘러싸고 강 회장과 노조 간의 갈등이 불거지면서 산적한 기업 구조조정 작업의 재개 시점도 불투명해지게 됐다. 산은은 KDB생명보험, 대우조선해양, 쌍용자동차 등의 매각작업이 최근 연이어 무산되면서, 재매각 작업 추진이 시급한 상황이다. KDB생명보험은 인수 후보였던 JC파트너스가 MG손해보험 부실 이슈로 대주주 자격요건을 갖추는 데 실패하면서 결국 인수 계약이 해지됐다. 대우조선해양 또한 유럽연합(EU)의 기업결합심사 불승인 결정으로 인해 현대중공업과의 인수합병이 무산됐다. 쌍용자동차는 우선협상대상자였던 에디슨모터스가 잔금을 치르지 못해 계약이 해제된 뒤, 이달 초 공개입찰을 재개해 새 주인을 찾고 있다. 

매각 절차가 계속 지연되면서, 이들 기업의 경영개선 작업 또한 난항을 겪고 있다. KDB생명의 경우 금리상승의 여파가 겹쳐 지급여력(RBC) 비율이 지난해 말 168.9%에서 올해 1분기 158.8%로 10.1%포인트 하락했으며, 대우조선해양 또한 같은 기간 부채비율이 79%에서 523.2%로 144.2%포인트나 급등했다. 구조조정 작업이 계속 지연되고 재무 구조가 악화한다면, 향후 매각이 더욱 어려워질 가능성도 있다.

문제는 부산 이전 문제의 해법이 딱히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제 산은의 부산 이전에 대해서는 노조 외부에서도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굳이 국책은행을 지방으로 옮겨 금융 클러스터를 분산시킬 경우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점, 지방 이전으로 인해 2030 핵심 인력들이 이탈할 수 있다는 점,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 효과가 기대보다 크지 않다는 점 등이 반대 이유로 꼽힌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산은 이전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없지 않다. 실제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4월 서울시의회 본회의에서 “(산은 부산 이전에 대해) 시는 당연히 반대 입장”이라며 “윤 당선인을 직접 만나 반대 의견을 전달했다”고 말한 바 있다. 이달 12일 열린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는 “금융도시를 만든다고 국책은행을 지방으로 내려보내는 것은 국가적인 견지에서 자해적인 결과로 귀결될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게다가 산은 본점을 부산으로 옮기기 위해서는 한국산업은행법의 개정이 필요하다. 산은 부산 이전에 반대 입장인 더불어민주당이 다수 의석을 차지한 상황에서, 공약 이행이 순조롭게 이뤄질 것이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한편 강 회장은 9일 오후 노조와 만나 대화를 나눌 예정이다. 강 회장이 부산 이전 문제를 둘러싸고 격화된 노조와의 갈등을 해소하고 미뤄둔 기업 구조조정 작업에 속도를 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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