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정보 열람청구권 행사 절차. 사진=개인정보보호포털
개인정보 열람청구권 행사 절차. 사진=개인정보보호포털

[이코리아] 정부의 ‘AI식별추적시스템 구축사업’에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시민들은 법무부가 개인정보 열람청구권을 보장하지 않았다며 개인정보분쟁조정을 신청했다. 그러나 법무부는 사업 종료 뒤 개인정보를 모두 파기해 열람이 불가한 상황이라고 해명했다.

◇AI식별추적시스템 구축사업, 목적은?

법무부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AI식별추적시스템 구축사업을 진행했다. 공항 내 ‘출입국심사 시간 단축’ ‘위험인물 신원 식별’ 등을 위한 얼굴식별 AI 알고리즘을 개발하는 사업이었다.

AI산업을 육성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정부는 2020년 AI식별추적시스템 구축사업 성과 보고서에서 “공항 출입국 관리리스템을 데이터·AI 기반으로 고도화해 국민 편의성을 높이고, AI기업들에게는 공공분야 실증 및 시장수요를 제공해 산업 활성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AI식별추적시스템을 구축하면서 롤모델로 삼은 국가는 중국이다. 정부는 해당 보고서를 통해 중국의 AI산업 현황에 대해 “안면데이터 활용이 자유로운 중국 기업들이 안면인식분야 기술 및 시장 선도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중국 우루무치역에서 신분증과 여객 신원을 비교하고, 식별하기 위해 도입한 검표 시스템을 참고사례로 들기도 했다.

정부는 AI 알고리즘 고도화에 국민들의 개인정보를 활용했다. 법무부는 공항 출입국 심사 시 수집한 얼굴사진을 포함한 개인정보 약 1억7760만 건(내국인 5760만 건, 외국인 1억2000만 건)을 AI기업들에 개방했다.

◇법무부 ‘개인정보 열람청구권’ 거부, 왜?

문제는 이런 사업에 개인정보를 활용한다는 사실을 정보주체인 국민들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진보네트워크센터·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법무부가 국민 개인정보를 무단활용하고 침해했다고 주장한다. 

단, 이 사건을 조사한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법무부가 적법한 절차를 거쳤다고 봤다. 출입국관리법상 얼굴사진을 AI식별추적시스템 구축에 활용하는 일은 ‘안전한 국경 관리’에 해당하므로, 별도로 동의를 구하거나 사업을 안내할 필요가 없었다는 설명이다.

시민단체들은 법무부가 개인정보보호법상 ‘개인정보 열람청구권’ 보장 의무도 위반했다고 지적한다. 개인정보 열람청구권이란 개인정보처리자가 보유한 개인정보와 처리내역 등을 정보주체가 요구할 수 있는 권리다.

이들은 시민 23명과 함께 법무부에 개인정보 열람을 청구했지만 거부당했다. AI식별추적시스템 구축사업에 신청인들의 개인정보를 활용했는지 여부를 확인하려는 목적이었지만 확인할 수 없었다. 이에 지난달 개인정보분쟁조정위원회에 분쟁조정까지 신청한 상태다.

법무부가 시민들의 개인정보 열람청구를 거부한 까닭은 무엇일까. <이코리아>는 지난달 18일부터 이달 3일까지 법무부와 서면으로 질의응답을 주고 받으며 상세한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법무부에 따르면 출입국자 개인정보 중 성명·주민등록번호·여권번호 등 ‘인적정보’는 인천공항출입국·외국인청 정보관리과에서 비식별화했다. 비식별화란 개인을 특정할 수 없도록 가명 또는 익명처리하는 작업이다.

‘얼굴사진’은 비식별화 없이 AI기업들이 활용하도록 했다. 다만 실증랩을 통해서만 개인정보로 얼굴식별 AI 알고리즘 고도화를 수행할 수 있게 조치했다. 실증랩은 물리적·기술적 보안을 적용하고, 원본이 담긴 데이터베이스 및 외부 환경과는 완전히 차단한 공간이다.

법무부는 시민들의 개인정보 열람청구를 거부한 까닭에 대해서는 “2021년 사업 종료에 따라 개인정보를 파기했으므로, 특정인 개인정보 활용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고 답했다. 사업 도중에만 확인이 가능했다는 의미다.

이번 사건은 정부가 법률상 개인정보 활용 근거를 광범위하게 해석할 수도 있다는 선례로 남았다. 얼굴사진은 다른 개인정보와 결합 없이 그 자체만으로도 민감한 개인정보다. 그럼에도 ‘안전한 국경 관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업이라면, 향후에도 국민들에게 알리지 않고 활용할 수 있는 셈이다.

또한 정부가 개인정보 열람청구권을 보장해도, 사업 종료 직후부터는 이번처럼 정보주체가 이를 행사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이에 국민들은 본인의 개인정보의 흐름을 파악하려면 직접 정부의 개인정보 활용 사업을 감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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