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추가경정예산안 중 일반지출 구성 항목. 자료=기획재정부
2차 추가경정예산안 중 일반지출 구성 항목. 자료=기획재정부

[이코리아] 역대 최대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 집행을 앞두고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타격에서 회복하지 못한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의 숨통이 트일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지만, 시중에 막대한 유동성이 공급되면서 물가가 더욱 가파르게 상승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은 30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열고 62조원 규모의 2차 추경안을 재가했다. 기존 추경안 규모는 59조4000억원이었으나, 국회 심사 과정에서 일부 지출항목이 증액되면서 2조6000억원이 더 늘어나게 됐다. 이는 코로나19 발생 첫해인 2020년 3차 추경(35조1000억원)보다 24조3000억원 많은 것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아직 코로나19의 피해를 복구하지 못한 이들이 많은 만큼, 소상공인, 영세 자영업자,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 프리랜서 및 취약계층 지원에 집중된 이번 추경안을 반기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물가가 가파르게 상승하는 과정에서 역대 최대 규모의 추경을 집행해 시중에 막대한 유동성이 공급될 경우 상황이 더욱 나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지난해 10월 처음 3%대를 넘어선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매달 급등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실제 지난달 소비자물가상승률은 4.8%로 2008년 10월 이후 13년 6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5월 물가상승률이 5%대에 진입할 가능성이 크다는 예측도 나온다. 적자국채 발행을 통해 재원을 조달한 것이 아닌 만큼 이번 추경에 통화량이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겠지만, 역대 최대 규모의 추경이 물가를 자극할 가능성을 배제하기는 어렵다.

실제 이번 추경의 핵심은 소상공인 및 영세 자영업자의 손실보상(24.6조원)과 특고·프리랜서 등 취약계층 지원(2.1조원)이다. 저금리 대출 전환 및 채무조정 등 금융지원(1.8조원)과 재도전 장려금(0.2조원), 민생·물가안정 지원(2.2조원) 등을 더하면 일반지출 39조원 중 대부분이 시중에 유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소상공인 손실보전금 및 취약계층 고용·소득안정 지원금 등 대부분이 현금성 지원인 만큼, 이번 추경으로 인해 소비 수요가 폭발하면서 물가상승을 부채질할 수 있다. 

실제 미국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은 지난 3월 ‘왜 미국의 물가상승률은 다른 나라보다 높은가?’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미국의 강력한 재정정책이 팬데믹 시기의 인플레이션을 초래했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근원소비자물가지수(Core CPI)는 팬데믹 초기 1%대에서 지난해 말 5%에 근접할 정도로 급등했는데, 이는 같은 기간 OECD 평균치가 1%에서 2.5% 수준으로 완만하게 상승한 것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팬데믹 이후 미국과 OECD의 1인당 실질처분가능소득(왼쪽)과 근원소비자물가상승률. 자료=미국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
팬데믹 이후 미국과 OECD의 1인당 실질처분가능소득(왼쪽)과 근원소비자물가상승률. 자료=미국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

보고서는 단기간에 전례 없는 수준의 대규모 직접 지원을 감행한 미국의 재정정책으로 인해 1인당 처분가능소득이 급증하면서 인플레이션이 가속화됐다고 설명하고 있다. 실제 미국은 지난 2020년 CARES 법안과 2021년 ARP 법안을 통해 상당한 자금을 가계에 직접 지원했고, 미국 개인의 가처분소득은 OECD 평균보다 크게 늘어났다. 보고서는 미국의 재정정책을 통한 이전소득으로 인해 물가상승률이 3%포인트 가량 더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물가상승에 대응하기 위해 2개월 연속 기준금리를 올린 한국은행와 통화정책과 이번 추경의 방향성이 어긋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지난 1월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서는 한 위원이 “우리나라의 재정불균형 정도가 선진국에 비해 크지는 않으나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상당 규모의 확장재정이 예정된 만큼, 재정 측면에서의 인플레 압력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며 “가능한 한 취약부문에 집중하면서 규모를 조절하는 방향으로 재정이 운영될 필요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반면, 이번 추경이 물가를 크게 자극하지 않을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는 지난 1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2022년 상반기 경제 전망’ 브리핑에서 2차 추경에 따른 물가상승률을 0.16%포인트로 예상했다.

허진욱 KDI 전망총괄은 “추경이 이전지출로 상당 부분 구성돼 있고, 이는 다른 직접적인 정부 소비와 투자에 비해 소위 말하는 승수가 낮게 나오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허 총괄은 이어 “물가의 경우 결국 소상공인들에게 가는 지출인데 그간 어려움을 겪었던 분들이기 때문에 부채를 상환하는 등 직접적인 최종 지출과는 다른 방향으로 활용될 것”이라며 “이런 전제를 두고 물가에 대한 영향은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물가상승 우려 때문에 경제회복을 위한 재정정책의 필요성을 부정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샌프란시스코 연방은행은 해당 보고서에서 “코로나19에 따른 재정 지원으로 인해 최근 인플레이션의 3%포인트를 설명할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이러한 재정 지출이 없었다면 경제는 디플레이션과 성장 둔화에 빠졌을 것이며 그로 인한 결과에 대응하기도 더욱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

한편 윤 대통령은 30일 출근길에서 기자들과 만나 추경에 따른 물가상승 우려에 대한 질문을 받고 “그럼 추경을 안합니까?”라고 반문했다. 윤 대통령은 “물가 문제는 저희가 세부적으로 관리를 좀 해야 한다”면서도 “지금 영세 자영업자들 숨이 넘어가는데 그걸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이번 추경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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