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순만 전 국민일보 편집인.
임순만 전 국민일보 편집인.

 

[이코리아]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 몽골의 칭기즈 칸, 프랑스 루이 9세, 중국 명나라 영락제. 이들에게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생전에 지독하게 일해 부강한 나라를 만들었으며, 후손에게 잘사는 나라를 물려주기 위해 정복 전쟁에 나섰다가 원정길에서 사망했다는 게 그것이다. 이들은 한마디로 목숨 바쳐 일한 지도자들이다. 

알렉산더 대왕(알렉산드로스 3세, 기원전 356 ~ 기원전 323)은 치세 기간 대부분을 서남아시아와 북아프리카 지역에 대한 군사 정복 활동으로 보냈다. 30세가 되었을 때 그리스를 시작으로 남쪽으로는 이집트, 동쪽으로는 인도 북서부에까지 영토를 확장했다. 당시 서양에 전례가 없던 대제국을 건설한 그는 전투에서 패배한 기록을 남기지 않은 군사 지도자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인 그는 기원전 336년 부왕 필리포스가 암살된 뒤 왕위를 계승한 이후 팽창 정책을 시작해 10년에 걸친 원정에서 페르시아를 멸망시켰고, 마케돈 제국의 강역을 아드리아해에서 인더스강에 이르는 지역으로 확산시켰다. ‘세계의 끝을 보겠다’는 열망을 가진 그는 바빌론을 제국의 수도로 삼기 위해 원정에 나섰다 사망했다. 

몽골 제국의 건설자 칭기즈 칸(1162~1227)은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많은 영토를 차지한 정복 군주였다. 중국 북부 초원의 부족들을 정복해 몽골 제국을 성립시킨 그는 중국 전 지역을 비롯해 현재의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바그다드와 이스파한, 시리아와 팔레스타인을 넘는 지역까지 정복했다. 그는 군대를 유목민들과 싸울 수 있는 기병만이 아니라 도시전과 유격전, 심리전에도 능한 군대로 키워 자식들에게 사방 1년간 말을 타고 달릴 수 있는 방대한 영토를 물려주었다. 탕쿠트 족인 서하 정벌에 나섰다 전투에서 죽은 그는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 적이 알지 못하도록 곡을 하거나 애도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하거니와, 1995년 12월 미국의 ‘워싱턴 포스트’에 지난 1,000년간 인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오르기도 했다.

프랑스 루이 9세(1214~1270)는 43년이 넘는 기간을 통치하며 생전에 ‘성인’인 생 루이(Saint Louis)로 불린 왕이다. 통칭 ‘용맹왕’인 그는 공공복지라는 개념을 위해 봉건제의 오용을 완화하였으며, 군주를 ‘지고의 심판자’로 보이도록 왕도를 발전시켰다. 국민들이 정의로운 힘을 따르는 나라를 후대에 물려주기 위해 도덕 군주를 내세워 신념에 따른 통치에 성공했고, 세속적으로도 부국강병을 이뤘다. 소르본 대학을 세웠고, 단일 통화를 도입하였으며, 훗날 의회와 감사원이 될 기관들의 창립을 추진했다. 명성은 이웃 나라에 전해져 유럽 여러 왕국들의 불화를 중개하기도 했다. 루이 9세는 제8차 십자군 전쟁 때 스스로 원정에 나가 튀니스에서 사망했다. 그의 유해를 고국으로 가져오기 위해 프랑스는 그의 시신을 삶아 살은 발라내고 뼈만 골라내어 가져왔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명 3대 황제 영락제(1360~1424)도 평생 일을 많이 한 군주였다. 그는 강남과 화북을 통합하고 초원과 바다를 잇는 대제국 건설의 꿈을 실현했다. 자금성을 짓고 수도를 베이징으로 옮겼으며, 색목인(色目人) 정화에게 동남아시아와 인도를 넘어 서아시아와 아프리카 모가디슈까지 항해 원정을 시켰다. 1405년부터 28년간 이어진 남해상 원정에서 대형 돛이 9개나 달린 보선의 규모는 길이 151.8m, 폭 61.6m로 최대 8,000톤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로부터 60~80년 후에 있었던 콜럼버스의 배가 120톤 규모였으니 어느 정도 앞선 것이었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그런가 하면 대부분 흙으로 지어졌던 만리장성을 벽돌로 고쳐 쌓았다. 기록에 의하면 1384년 9월14일에서 21일까지 여드레 동안 그가 결정해야 할 사항이 1,160건, 3,291가지였다고 하니 그가 얼마나 많은 것을 파악하고 일을 열심히 한 왕이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수시로 국경을 넘어오는 몽골족을 격퇴하기 위해 다섯 차례나 전투에 나섰다 원정길에서 세상을 떴다. 

지금은 왕조시대도 아니고 주 50시간의 노동이 권장되며 많이 일하는 것보다 잘 노는 것이 미덕인 시대다. 이런 시대에 고릿적 마케도니아나 명나라 이야기를 하는 것이 소용 있는 소리인가. 소용 있다. 적어도 한국의 대통령은 잘 쉬어야 하는 위치에 있지 않다. 이 나라의 대통령에게는 폭탄주를 마시고 배를 두드리며 어퍼컷 세리머니를 선보이는 것이 미덕이 될 수 없다. 

21세기 들어 지구상에서 가장 특징적인 한류 문화가 솟구치는 한편으로 사사건건 물고 늘어지는 정치문화가 공존하는 나라, 구체제(앙시앵 레짐)의 모순 때문에 평민들에게는 꿈도 희망도 없던 프랑스 대혁명 당시보다도 더 심각한 빈부격차가 존재하는 나라, 젊은이들이 아이 낳기를 꺼리는 사회,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 전쟁이 끝난 지 70년이 지나는 데도 아직 평화협정조차 없는 나라, 5년간의 단임제 대통령, 0.73% 차이의 최소 표 차이의 당선, 후보가 좋아서가 아니라 정권교체를 위해서 투표했다는 표심, 검찰공화국이라고 비판을 받는 정부 구성…. 이런 여건 속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목숨 바쳐 일하지 않고는 나라를 개혁시킬 수 없다. 더구나 느닷없는 청와대 이전으로 제대로 된 파티장소나 기자회견장 하나 없는 상황 아닌가. 

현재 국민의 힘에서는 논의한 적이 없다고 말하고 있지만, 지난 17일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이 국회 운영위원회 발언에서 인천공항공사 운영에 민간 부분을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취지의 말을 함으로써 공공부문 민영화 논란이 불붙기 시작하는 상황이기도 하다. 중국 역사 최고의 황제로 꼽히는 청나라 강희제는 제갈량이 ‘후 출사표’에서 말한 “국궁진췌 사이후이(鞠躬盡瘁 死而後已 : 몸을 아끼지 않고 최선을 다하여 죽기까지 힘쓴다)”라는 말을 62년 재위 기간 동안 생애의 좌우명으로 새기며 일했다고 한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퇴임 시까지 40%가 넘는 지지율을 보이는 가운데 민주화 이후 가장 높은 지지를 받는 대통령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그는 절호의 기회를 놓친 대통령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2018년 9월 능라도 종합경기장에서 평양시민 15만 명을 상대로 연설할 당시 문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4.27 판문점 합의를 실행하기 위해 목숨을 바쳤어야 했다. 그때가 분단 70년 만에 찾아온 남북관계 실질적 개선의 최대 호기였다. 야당과 보수진영의 반대, 미국과의 이견 등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미적거릴 타임이 아니었다. 그가 당시 목숨을 바쳐 조처했더라면 한반도에 새로운 평화 시대가 열릴 수 있는 획기적인 상황이었다는 것은 두고두고 아쉽다.

대한민국 대통령은 죽도록 일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자리에 앉은 사람이다. 대통령이 열정적으로, 또 감동적으로 일하지 않으면 공직사회가 복지부동하고, 경제가 살아나지 않고, 외교가 풀리지 않고, 국방력이 강화되지 않고, 남북관계가 악화한다. 윤 대통령뿐 아니라 김건희 여사도 마찬가지다. 개인사업 코바나컨텐츠의 업무를 접고 영부인으로 국가를 위해 밤낮없이 헌신해야 마땅하다. 축재과정의 의혹에 휩싸인 김 여사가 5만 원짜리 의상과 안경을 썼다고 해서 검소한 영부인이라고 점수를 줄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런 이미지 놀이보다는 오히려 좋은 의상과 액세서리를 착용하고, 품격있는 영부인의 일을 다 하기를 바란다. 

임순만 /작가 · 전 국민일보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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