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글로벌 기금관 전경. 사진=국민연금
국민연금 글로벌 기금관 전경. 사진=국민연금

[이코리아] 국민연금의 대표소송 논의가 결국 새 정부로 넘어가게 됐다. 경영권 간섭을 우려하는 재계의 반발과 주주 권익 보호를 외치는 시민단체 사이에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기금위)는 지난달 29일 제2차 회의를 열고 ‘수탁자책임 활동에 관한 지침 개정안’ 관련 소위원회 논의 진행 상황을 보고받은 뒤, 대표소송 제기 주체 변경 등의 사안을 향후 소위원회에서 추가 논의하기로 결정했다.

주주대표소송은 대주주 및 경영진이 기업가치를 훼손했을 때 주주들이 회사를 대표해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상장사의 경우 회사 주식의 0.01% 이상(일반 법인은 1% 이상)을 6개월 이상 보유해야 소송을 제기할 수 있기 때문에, 소액주주의 경우 권리가 침해당해도 대표소송을 제기하기 어려웠다. 실제 경제개혁연대에 따르면, 지난 1997~2017년 상장사를 대상으로 제기된 주주대표소송은 불과 47건으로 연 2건 수준이다.

이 때문에 국민연금이 소액주주 대신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해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국민연금도 지난 2월 ‘수탁자책임 활동에 관한 지침 개정안’을 수정 의결한 뒤, 기금운용본부와 수탁자책임위원회로 나뉘어 있던 대표소송 제기 주체를 수책위로 일원화하는 방안을 소위원회에서 논의하기로 했다. 하지만 소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김용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사임하면서 논의가 사실상 중단됐고, 결국 해당 논의는 새 정부로 넘어가게 됐다.

재계는 국민연금의 대표소송 주체 일원화 논의가 결국 소송 남발 및 경영 간섭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앞서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지난해 12월 삼성·LG그룹 계열사, 현대자동차, GS건설, 롯데쇼핑·하이마트, SK네트웍스 등 20여개 기업에 주주가치 훼손과 관련된 사건의 사실관계를 확인할 목적으로 비공개 서한을 발송한 바 있다. 

특히 서한을 받은 기업 대부분이 과거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과징금을 부과받거나 형사 기소된 전력이 있어 재계의 우려는 더욱 컸다. 당시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7개 경제단체는 공동 성명을 내고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저출산·고령화로 인해 기금 확충에 전력을 다해도 부족한 터에 국민연금이 불투명한 장기 주주가치 제고와 스튜어드십 코드에 따른 수탁자 의무 이행을 명분으로, ‘기업 벌주기식’ 주주활동에 몰두하는 위와 같은 행태에 경제계는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또한 지난 2월 7일 ‘국민연금의 대표소송, 국민을 위해 바람직한가’ 좌담회를 열고 국민연금의 대표소송 제기는 위험한 발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권태신 전경련 부회장은 “정부는 그동안 국민연금이 기업을 감시⸱규제하는데 걸림돌이 되어 왔던 제도들을 꾸준히 제거해 왔고, 대표소송 제기는 이러한 기업 지배의 최종 마무리 단계”라면서, “수책위의 결정으로 실제 소송이 이루어진다면 국민연금은 우리나라 대부분의 상장사를 통제하는 무소불위의 기구가 될 것”이라 말했다.

반면 시민단체들은 재계의 우려가 지나치다며, 경영진의 독단과 기업가치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대표소송 등의 수단을 통한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가 필요하다며 맞서고 있다. 참여연대는 지난 2월 논평을 통해 “대표소송은 총수, 이사 등 업무집행자의 과실로 인해 회사가 손해를 입을 경우 해당 이사들이 그 피해를 보전하도록 하는 것이므로 기업의 정상적인 영업행위에 대한 소송과는 무관하다”며 “재계는 ‘기업활동을 옥죄는 족쇄’라며 크게 반발하고 있으나, 주주대표소송은 상법에 엄연히 명시된 주주의 권리로, 기업 가치를 높이고 주주가치를 제고할 수 있는 대표적 수단”이라고 말했다.

참여연대는 이어 “경영계는 이를 기업에 대한 압박으로 호도하며, 국민연금이 대표소송을 진행할 경우 상장사를 통제하는 무소불위의 기구가 된다며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며 “이는 회사 경영이 정식 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가 아닌 총수 등 제왕적 권력에 의해 통제되는 현재의 전근대적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하지 않겠다는 몸부림”이라고 지적했다. 

경제개혁연대 또한 지난 1월 논평을 내고 “경제단체들은 주주대표소송 절차 등을 법률에 규정하고, 소송 대상 사건을 제한하는 동시에 소송의 실익에 대한 검증장치를 마련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나, 국민연금은 지난 3년 간 이에 관해 충분한 논의를 거쳐 세부 원칙을 정하고 관련 규정을 정비했다”며 “이제 와서 경제단체들이 국민연금 주주대표소송에 반대하고 나서는 것은 ‘기업 벌주기식 주주활동’이라며 비난 여론을 조성하는 한편, 제도 정비를 구실로 시간을 끌며 국민연금의 소송을 막아보겠다는 의도”라고 재계의 주장을 반박했다.

격렬한 찬반 논쟁과 김 이사장의 사임으로 대표소송 논의가 지연되면서 공은 새 정부로 넘어가게 됐다. 다만 새 정부에서 국민연금의 대표소송 논의가 빠르게 진전될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지난 1월 “기관투자가로서 책임성을 높인다는 것의 취지는 매우 좋지만 지나치게 힘이 집중된 데서 오는 부작용도 커질 수 있다는 점이 고려되지 않은 듯 보인다”며 대표소송 주체를 수책위로 일원화하는 방안은 대선 전까지 보류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기금위 결정을 존중하겠다”라고 밝힌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는 상반되는 입장이다. 

한편, 윤 당선인은 대선 기간 ‘공적연금개혁위원회’를 설치하고 대대적인 연금개혁에 나설 것을 공약했다. 새 정부의 연금개혁이 국민연금 대표소송 논의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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