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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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리아]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기업들의 적극적인 탄소저감 노력이 요구되는 가운데,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재계 1위 삼성그룹에 주도적인 역할을 요청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취약한 국내 재생에너지 인프라를 고려할 때, 기업의 노력만으로는 탄소저감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내외 44개 기후환경 시민사회단체들은 지난 22일 지구의 날을 맞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및 주요 임원에게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집단에서 전 세계적 기업으로 발돋움한 삼성그룹이 그 명성에 걸맞게 기후위기 대응 수준을 높이고, 글로벌 기후 리더로서 선도해달라”는 요청을 담은 서신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기후단체들이 삼성그룹에 요구한 것은 ▲금융계열사의 탈석탄 정책 수립 ▲국내 공급망 소비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 ▲바이오에너지 원료 사업 철수 및 팜유 생산·무역 사업 중단 등의 세 가지다. 

특히 소비전력을 재생에너지로 100% 충당하라는 요구는 전 세계적인 ‘RE100’의 흐름과 맞물려 있다. 지난 2014년 영국의 비영리단체인 ‘더 클라이밋 그룹’(the Climate Group)이 시작한 RE100은 2050년까지 재생에너지 100%를 달성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감축하자는 캠페인이다. 더 클라이밋 그룹의 홈페이지를 보면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BMW 등 굴지의 글로벌 기업을 포함해 전 세계 360개 기업이 RE100 캠페인에 동참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반면 삼성그룹의 핵심인 삼성전자의 전체 전력구성 중 재생에너지 비중은 2020년 기준 17.6%에 불과하며 아직 RE100에도 참여하지 않은 상태다. 반면, 경쟁사인 TSMC나 인텔은 이미 지난 2020년 RE100에 동참해 각각 2050년,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100%를 달성하겠다고 선언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스태티스타’(Statista)에 따르면, TSMC의 재생에너지 소비 비중은 2020년 기준 7.6%로 삼성전자보다 낮지만, 인텔은 무려 82%까지 비중을 높인 상태다. 

기후단체들은 “삼성과 시민사회가 협력하면 다른 기업들의 재생에너지 소비를 촉진할 수 있으며, 재생에너지 투자자들에겐 올바른 재생에너지 가격 지표를 제공하는 동시에 더 나은 전력시장을 조성할 수 있다”며 “삼성은 혁신과 지속가능한 미래의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 갈 거대한 잠재력이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RE100에 참여하지 않을 경우 예상되는 매출 감소액.(단위: 십억원) 자료=사단법인 넥스트
삼성전자가 RE100에 참여하지 않을 경우 예상되는 매출 감소액.(단위: 십억원) 자료=사단법인 넥스트

◇ 부실한 국내 재생에너지 인프라, 탄소중립 발목 잡아

삼성의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 노력이 절실하다는 기후단체의 주장에는 명확한 근거가 있다. 삼성그룹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지난 2017년 1311만톤(CO2e)에서 2021년 1920만톤으로 4년 만에 크게 증가했다. 2020년 기준 삼성전자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국내 기업 중 8위에 해당하는데, 1~7위는 모두 온실가스 배출량이 다른 산업보다 월등히 많은 철강·발전회사였다. 

삼성전자는 매출이 성장하면서 불가피하게 온실가스 배출량이 증가했다는 입장이지만, 온실가스 배출량을 매출액으로 나눈 원단위 배출량 또한 2019년 3.1에서 2020년 3.2로 소폭 증가했다. 실적 성장만으로 늘어난 온실가스 배출량을 정당화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계속된 온실가스 배출을 삼성의 탓만으로 돌릴 수는 없다. 삼성이 국내 사업장에서 소비되는 전력을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고 싶어도, 부실한 재생에너지 인프라로 인해 전력 공급량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실제 영국의 기후·에너지 씽크탱크 엠버(EMBER)가 지난 12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풍력·태양광 발전량은 21.5테라와트시(TWh)에 불과했다. 이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LG디스플레이·현대제철·현대모터스·삼성에스디아이·포스코·LG전자 등 탄소집약적 기업 8개가 2020년 국내외에서 사용한 전력(84.9TWh)의 25%에 불과한 수준이다. 삼성전자가 RE100에 동참하고 싶어도 국내에서 재생에너지를 충분히 공급받을 수 없다는 것. RE100을 달성하려면 재생에너지 인프라가 잘 갖춰진 해외로 사업장을 옮기는 수 밖에 없다.

당장 국내 재생에너지 인프라 확대에 나서지 않을 경우 기업들이 입을 타격도 적지 않다. 유럽연합(EU)을 필두로 생산과정에서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기업에게 ‘탄소국경세’를 부과하려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는 데다, 애플 등 글로벌 기업들이 RE100에 동참하지 않는 기업과의 거래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실제 사단법인 넥스트는 지난 1월 발표한 ‘한국 산업계가 직면한 기후 리스크의 손익 영향도 분석’ 보고서에서 “글로벌 반도체 구매 기업들이 몇 년의 계도기간을 거쳐 2025년부터 RE100에 동참하지 않는 협력사들을 공급망에서 배제하게 된다고 가정하면, 삼성전자는 반도체 부문 매출의 약 19%가 리스크에 노출된다”고 내다봤다. 넥스트의 가정에 따르면, RE100 미참여에 따른 삼성전자의 매출 감소액은 2030년 기준 약 23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추정된다. 

기후단체 또한 이러한 어려움을 인식하고 있다. 기후단체들은 “삼성이 야심 찬 기후 목표를 세우고 이루려면 RE100을 달성하는 것부터다”라면서도 “국내에서 재생에너지를 충당하기에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도 있어서 전력시장을 비롯한 관련 정책 등 제반 환경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삼성전자는 아직 구체적인 시기나 목표는 제시하지 않았으나 올해 중 RE100 가입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이 재계의 기후위기 대응을 이끌 리더 역할을 맡을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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