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금지법제정연대 회원들이 11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차별금지법 4월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차별금지법제정연대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회원들이 11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차별금지법 4월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차별금지법제정연대

[이코리아]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논의가 지연되면서 문재인 정부 임기 내에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기는 어려워졌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차별금지법 제정을 약속하고도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한 더불어민주당을 비판하는 한편, 마찬가지로 차별금지법에 유보적인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 후 행보에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나고 있다. 

참여연대는 지난 11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시급하게 추진해야 할 6대 분야 37개 개혁과제를 제안했다. 

참여연대가 제안한 개혁과제 중에는 포괄적 차별금지법(평등법) 제정도 포함됐다. 참여연대는 “외국의 많은 국가들 역시 2000년 전후 개별적 차별금지법을 넘어선 포괄적 형태의 차별금지법을 제정해 시행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가운데 일본과 함께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지 않은 유일한 국가”라고 지적했다. 참여연대는 이어 “유엔의 인권조약기구들이 반복해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하고 있다”며 “한국은 다수 국제인권조약의 당사국이자 유엔인권이사회 이사국으로서 국제적으로 합의된 인권규범을 실현할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성별, 장애, 지역, 학벌, 인종 등의 이유로 발생하는 직간접 차별 및 차별조장 행위 등을 사회 전 영역에서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국내에서는 지난 2007년 노무현 정부가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로 처음 법안을 발의한 이후 수차례 입법 시도가 있어왔으나 모두 무산됐다. 21대 국회에서도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지난 2020년 법안을 대표발의했지만, 여전히 논의가 진전되지 않는 상태다.

차별금지법이 계속해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불합리한 차별 사유에 성적지향 및 성정체성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특히 보수적 개신교계를 중심으로 “차별금지법은 동성애 조장법”이라는 반발이 거세가 일어나면서, 정치권도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목사가 동성애자를 비난하는 설교를 할 경우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는 루머까지 퍼지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 발의된 차별금지법에 동성애 혐오발언을 처벌하는 조항은 없다. 다만, 동성애 혐오발언에 대해 문제제기를 한 사람에게 불이익을 준 경우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문제는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18대 및 20대 대선 공약으로 차별금지법 제정을 내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지근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국가인권위원회 20주년 기념식에서 “20년전 우리는 인권이나 차별금지에 관한 기본법을 만들지 못하고 국가인권위원회법이라는 기구법 안에 인권 규범을 담는 한계가 있었다”며 “(차별금지법 제정은) 인권선진국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넘어서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20대 대선 후보 또한 지난달 TV토론회에서 “차별금지법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라고 말한 바 있다. 

 

지난해 11월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앞에서 정의당이 ‘차별금지법 심의 촉구’를 위한 피켓팅을 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강은미 의원, 장혜영 의원, 김응호 부대표, 배복주 부대표. 사진=뉴시스
지난해 11월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앞에서 정의당이 ‘차별금지법 심의 촉구’를 위한 피켓팅을 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강은미 의원, 장혜영 의원, 김응호 부대표, 배복주 부대표. 사진=뉴시스

하지만 국회는 여전히 요지부동인 상태다. 지난해 6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국회 국민동의 청원이 10만명의 동의를 모으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됐지만, 법사위는 지난해 11월 해당 청원의 심사기한을 21대 국회 임기 만료일인 2024년 5월 29일로 연장했다. 이날 여야 법사위원들은 모두 심사기한 연기에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11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차별과 혐오의 정치를 변화시켜야 할 가장 큰 책임은 더불어민주당에 있다. 민주당의 '나중에' 정치가 '차별금지법 하나 못 만드는 나라'를 만들었다”며 민주당의 소극적인 태도를 비판했다. 이들은 이어 “시민들이 원하는 것은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또다시 수틀린 계산에 급급해 평등을 미루는 것이 아니라, 당장 할 수 있는 것을 나중으로 미루지 않겠다는 의지와 실행”이라며 “이번 4월 임시회는 현 정부에서 국회가 차별금지법을 제정할 수 있는 마지막 기간이다. 말뿐인 정치의 실패를 다시금 반복할 것이 아니라면 지금 당장 차별금지법을 당론으로 채택하고, 대선 패배 후 스스로 내 건 개혁과제로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완수하라”고 요청했다.

시민단체들이 민주당에게 4월 내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청하는 배경에는 새 정부에 대한 우려도 놓여있다. 실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차별금지법과 관련해 구체적인 공약을 내놓지는 않았지만, 여러 차례 부정적인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윤 당선인은 지난해 11월 서울대학교 호암교수회관에서 열린 ‘청년의곁에 국민의힘’ 모임에서 “형사법 집행은 공동체의 필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 집행하는 것이지만, 자칫 잘못하면 심각한 프라이버시와 개인의 자유 침해를 가져올 수 있다”며 “평등을 지향하고 차별을 막겠다고 하는 차별금지법도 개별 사안마다 신중하게 형량이 결정되지 않고 일률적으로 가다 보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윤 당선인은 지난해 12월 관훈클럽 초청토론회에서도 차별금지법에 대한 질문을 받고 “(차별금지법은) 헌법에서 보장하는 자유와 평등을 어떻게 조화해야 하느냐에 관한 문제”라며 “평등만 강조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2월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 한국기독교공공정책협의회(기공협) 등에 제출한 정책 제안 답변서에서는 “일부 정당 등에서 추진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별도 제정의 주된 목적이 동성애 및 성소수자 보호로, 이를 반대하는 사람들에 대해 처벌하는 것은 반(反)민주적이며 또 다른 차별을 야기한다는 반대 여론도 상당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며 “(차별금지법 제정은) 국민적 합의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이를 위한 국민 여론 수렴 절차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 당선인이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혀온 만큼, 새 정부가 차별금지법 논의에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은 높지 않다. 시민단체들이 민주당에 결자해지를 요구하는 것도 이러한 조급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이 4월 임시회에서 차별금지법 제정 논의에 속도를 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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