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현지시각 3월 26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연설하고 있다. 출처=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유튜브 채널 갈무리 

[이코리아] 내년 시범 도입이 예상되는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가 초안보다 더욱 강화된 방향으로 논의되고 있어 우리나라 수출기업의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세계 첫 '탄소 국경세'로 불리는 탄소국경조정제도(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 CBAM)는 EU로 수입되는 제품의 탄소 함유량에 EU ETS(탄소배출권거래제)와 연동된 탄소 가격을 부과해 징수하는 조치다. 탄소 배출량이 많은 국가에 수출 관세를 부과하는 것이 골자다. 

4일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의 'EU의 CBAM 수정안 평가와 시사점' 보고서를 보면, EU 의회가 지난해 12월 공개한 CBAM 수정안은 초안보다 규제 수준이 강화됐다. 

초안에서 CBAM 적용 품목은 철강·전력·비료·알루미늄·시멘트 등 5개였으나 의회 수정 과정을 거치며 유기화학품·플라스틱·수소·암모니아 등 4개 품목이 추가돼 총 9개로 늘어났다. 

자료=한국무역협회
자료=한국무역협회

수정안 9개 품목으로 범위를 넓히면 연평균 수출액은 55억1000만달러(약 6조7000억원)로 같은 기간 EU 수출액의 15.3%에 해당한다. 그만큼 국내 관련 업계의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뜻이다.

특히 CBAM상 탄소 배출 범위의 경우 초안에서는 '상품 생산과정에서 배출'되는 직접배출만 포함했지만, 수정안에서는 '상품 생산에 사용된 전기의 발전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을 의미하는 간접배출까지 포함했다.

2020년 기준 전력 1kWh(킬로와트시) 생산할 때 한국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량은 472.4g이다. EU(215.7g), 캐나다(123.5g) 등 선진국과 비교해 2~4배가량 많아 부담이 훨씬 클 것으로 전망된다.

이 밖에도 수정안은 당초 EU 집행위원회가 CBAM 도입 시기로 제시한 2026년을 2025년으로 1년 앞당겼다. EU 내 탄소누출 위험 업종으로 분류되는 사업장에 무상으로 할당하고 있는 탄소배출권을 폐지하는 시기도 2036년에서 2028년으로 앞당기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신규섭 한국무역협회 연구원은 "EU 의회는 올해 상반기 중에 최종안을 도출할 예정"이라며 "현재로서는 초안과 비교해 수출기업의 부담이 늘어나는 내용이 담긴 만큼 관련 업계, 기관의 세밀한 영향평가와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내 환경단체들은 변화된 환경에 수출기업들이 적응할 수 있도록 온실가스 감축에 정치계와 산업계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했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대선 당시 공약집을 통해 "온실가스 배출권 유상할당을 확대하고, 탄소세 도입은 신중하게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EU가 탄소 국경세를 도입하면 한국은 철강 수출에 가장 큰 타격을 입게 된다. 그린피스가 지난해 1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이 EU에 수출하는 품목 중 온실가스 배출량이 가장 많은 부문은 철강 산업이다. 만약 2030년에 EU가 탄소 국경세로 톤(t)당 75달러를 걷으면, 국내 철강업계가 부담해야 할 금액은 3억4770만 달러(약 3999억원)에 달한다. EU 총 수출액 대비 12.3% 수준의 추가 관세를 지불하는 셈이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 앞서서 탄소세를 도입하게 되면 제품 원가 상승으로 수출 경쟁력이 낮아진다"며 "EU를 포함한 다른 나라의 동향을 고려하면서 현재 시행중인 배출권거래제와 연계하는 방안으로 부담을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탄소세 도입 및 재생에너지와 관련해 우리 산업계가 일본을 모범삼아 정부를 좀 더 압박시킬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김지석 그린피스 기후에너지 전문위원은 "일본의 경우 소니 등 92개 간판기업의 산업계는 3년 전부터 일본정부에게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목표를 50%까지 높여달라고 강하게 요구해왔다. 결국 지난해 여름 일본 정부는 38%까지 재생에너지를 늘리겠다고 약속했다"고 설명했다.

탄소 국경세 같은 국제적 규제 위협이 코앞에 닥친 만큼 탄소 저감 노력이 뒤처질 경우, 과다한 탄소 배출을 이유로 국제 교역에서 불이익을 당할 가능성이 있기에 일본 산업계가 한마음으로 뭉쳤다는 것이다. 

김 전문위원은 "이번 CBAM 수정안에서 탄소 배출범위에  생산공정에서 사용된 전기 등 간접배출이 포함된다. 그래서 당장 전기를 이산화탄소 배출이 덜한 방법으로 생산해야 하는데, 우선 한국전력의 노력이 우선해야 한다. 그 다음 대형직접배출이 되는 철강업계는 고로(용광로)를 포기하고 수소전환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포스코의 경우 지난해 2040년까지 수소환원제철 기술을 개발하고, 2050년까지 현재의 고로 방식을 점진적으로 수소환원제철 방식으로 전환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무엇보다 재생에너지는 RE100(재생에너지 100%)과 탄소국경세를 동시에 대응할 수 있기에 재생에너지 발전 확대를 통한 전력망 저탄소화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김 전문위원은 "일례로 탄소국경세의 부담을 줄이려면 수소는 그린수소를 써야 한다. 그러려면 태양광과 풍력으로 수소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유럽의 경우 그린수소 생산을 위해 풍력에 가장 많이 투자한다"면서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을수록 전력 사용으로 인한 탄소배출량이 낮아져, 이를 생산 과정에서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산업계의 경우 탄소국경세 대응에 효과적인 방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