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28일 오전 경기 과천시 정부과천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28일 오전 경기 과천시 정부과천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법무부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업무보고가 하루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폐지 문제와 관련된 논란이 여전히 가라앉지 않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박범계 법무부 장관 간의 입장 차이가 뚜렷한 만큼, 업무보고 또한 원만히 마무리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박 장관은 이미 여러 차례 법무부 장관 수사지휘권 폐지 등 윤 당선인의 사법개혁 공약에 대해 반대한 바 있다. 박 장관은 지난 14일 뉴스1과의 인터뷰에서 “수사지휘권을 폐지한다고 해서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수사의 공정성이 담보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폐지는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지난 23일 박 장관이 “장관의 수사지휘권이 필요하다는 입장은 여전하다”며 기존 입장을 재확인하자, 인수위는 불쾌감을 표하며 24일 예정된 업무보고를 취소해 갈등이 극에 달했다. 이후 박 장관이 “업무보고가 될 수 있도록 조치해주시면 좋겠다”며 한발 물러서자 29일로 다시 일정이 잡혔지만, 양 측의 갈등은 전혀 봉합되지 않은 상태다. 

◇ 찬성 측, "검찰 중립성 보장하려면 장관 수사지휘권 폐지해야"

법무부 장관 수사지휘권 폐지는 윤 당선인의 사법개혁 공약의 핵심 중 하나다. 윤 당선인의 공약집에는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에게 행사하는 구체적 사건에 관한 수사지휘권을 폐지하여, 검찰의 중립성과 정치적 독립성 훼손을 방지하겠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법무부 장관 수사지휘권 폐지는 이미 법조계에서 오래전부터 논의되어온 문제다. 검찰청이 행정부 소속인 만큼한 법무부 장관에게 최고감독권을 부여하고 지휘체계를 확립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장관이 구체적 사건에 대해서까지 수사를 지휘할 경우 자칫 정부·여당의 이해를 위해 검찰을 도구화할 위험이 있다. 이 때문에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은 극히 제한적으로 사용돼왔다. 실제 문재인 정부 출범 이전 법무부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행사한 적은 2005년 천정배 전 장관이 강정구 전 교수의 불구속 수사를 요구한 사례 하나 뿐이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세 차례나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이 발동되고 ‘추-윤’ 갈등이 심화되면서, 남용을 방지할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기 시작했다. 실제 김성룡 경북대 로스쿨 교수는 지난 2020년 대한변호사협회와 한국형사소송법학회가 공동주최한 학술대회에서 “검찰총장을 정무직이 아닌 장기 임명직으로 하고, 구체적 사건에 대한 법무부 장관의 지휘권을 폐지하는 것이 유러피언 스탠더드이자 글로벌 스탠더드가 지향하는 방향”이라고 말했다. 

김종구 조선대 법대 교수 또한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을 규정한 검찰청법 제8조에 대해 “검찰의 독립성 보장을 위한 것이지, 법무부장관의 적극적인 지휘·감독권의 근거를 규정한 게 아니다”라며 “검찰은 행정기관인 법무부 소속이지만 준사법기관의 독립적 성격을 부여해야 한다는 면에서, 폐지까지는 아니더라도 제한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여권 및 시민단체도 과거 법무부장관의 수사지휘권 폐지가 필요하다며 목소리를 낸 적이 있는 만큼, 윤 당선인의 사법개혁에 반대하는 것은 ‘반대를 위한 반대’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1996년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의 전신 국민회의 소속 의원 112명은 법무부장관 수사지휘권 폐지 등의 내용이 담긴 검찰청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당시 여당이었던 국민의힘 전신 신한국당의 반대로 입법화에 실패했다. 

참여연대 또한 지난 2001년 법무부 장관이 구체적 사건에 관여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의 입법청원을 시도했다. 원일희 인수위 수석부대변인 또한 지난 24일 브리핑에서 “2001년 참여연대의 입법청원 역시 ‘법무부 장관은 구체적 사건에 대해 검찰총장만을 지휘 감독한다’, 바로 이 조항을 없애자는 것이었다”며 해당 사실을 언급하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사법개혁 관련 공약 중 일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사법개혁 관련 공약 중 일부. 자료=국민의힘

◇ 반대 측, "검찰 견제장치 없는 尹 사법개혁안은 반쪽짜리"

반면 윤 당선인의 사법개혁안이 검찰의 중립성 보장을 강조하면서, 검찰에 대한 견제와 감시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과거 검찰청법 개정안을 입법청원했던 참여연대는 지난 25일 논평을 내고 “당시 입법청원에는 구체적 수사지휘권 폐지만 담긴 것이 아니다”라며 “검찰총장을 정점으로 하는 피라미드 구조인 검사동일체의 원칙을 해체하는 등 검찰의 조직과 활동에 대한 다양한 민주적, 시민적 통제 방안을 담고 있었다”고 강조했다. 

참여연대는 당시 입법청원에 대해 “검찰활동에서의 시민의 참여와 감시를 보장·강화하고,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 장치를 충분히 도입하고 보장하는 가운데 당시까지 음성적으로 활용되어온 법무부장관의 검찰총장에 대한 구체적 수사지휘권 폐지를 고려한 것”이었다며 “윤석열 당선인이 제시한 ‘수사지휘권 폐지’ 공약은 민주적 통제 방안에 대한 제안 없이 검찰의 조직적 독립성만을 일방적으로 강조한 것으로 ‘검찰공화국으로의 회귀’와 다를 바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 윤 당선인의 공약집에는 검찰 조직의 민주적 개혁과 관련된 구체적 공약은 빠져 있다. 윤 당선인은 지난달 14일 사법공약 발표 기자회견에서 관련 내용에 대한 질문을 받자 “법무부장관의 검찰총장 수사지휘권을 두고 있는 나라는 독일과 일본 우리나라뿐인데, 두 나라는 모두 사문화 됐다”라며 “중요한 것은 국민과 언론이 검찰이라고 하는 공권력을 감시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답했다.

민주당의 전신인 국민회의가 법무부 장관 수사지휘권 폐지를 주장했던 맥락도 현재와 다르다는 지적이 나온다. 1996년 당시 국민회의가 검찰청법 개정안을 발의한 배경에는 검찰총장이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의혹을 받고 있음에도, 법무부 장관에게 수사지휘권이 있다는 이유로 국회 출석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시 발의된 개정안에는 검찰 인사 및 예산에 대한 견제 장치를 마련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이 사실상 사문화됐다는 독일에서도 지난 2015년 수사지휘권이 발동된 바 있다. 당시 독일 인터넷 탐사보도매체 ‘넷츠폴리틱’(Netzpolitik)은 헌법수호청(BfV)이 온라인 감시 관련 예산을 확대하려 한다는 내용의 내부기밀문서를 입수해 보도하자, 하랄트 랑게 당시 독일 검찰총장은 해당 매체 소속 기자 2명을 국가반역죄 혐의로 수사하겠다고 나섰다. 그러자 검찰이 언론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비판이 국내외에서 빗발쳤고, 결국 하이코 마스 당시 독일 법무부 장관이 랑게 총장을 해임하면서 사태가 마무리됐다.

랑게 총장과 독일법관협회 등은 검찰의 독립성이 훼손됐다며 반발했으나, 국내외 여론은 마스 장관의 편이었다. 도이치벨레(DW)는 2015년 8월 5일 기사에서 “랑게 총장은 이번 논란을 정치와 법치 사이의 헌법적 투쟁으로 묘사했지만, 이는 사실과 달랐다”며 “다수의 논평가들은 그가 검찰총장이 헌법적 역할을 의도적으로 곡해했다고 비판했다”고 말했다. 

한편 법무부는 오는 29일 인수위에 다시 업무보고를 할 예정이다. 박 장관은 28일 오전 기자들과 만나 “수사지휘권 폐지 등과 관련해 인수위 보고자료에 ‘반대’ 이렇게 적어놓진 않았다”며 “(인수위가) 들으실 만하게 부드럽게 보고할 수 있도록 표현했다”고 말했다. 윤 당선인의 사법개혁안을 두고 악화된 법무부와 인수위 간의 갈등이 이번 업무보고를 통해 해소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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