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장 벤처기업에게 복수의결권을 허용하는 벤처기업법 개정안이 지난 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제동이 걸렸다. 사진은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 모습. 사진=뉴시스
비상장 벤처기업에게 복수의결권을 허용하는 벤처기업법 개정안이 지난 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제동이 걸렸다. 사진은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 모습.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비상장 벤처기업에게 복수의결권(차등의결권) 주식을 발행하는 벤처기업법 개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제동이 걸리면서 벤처업계가 불만을 표하고 있다. 반면 시민단체에서는 해당 법안이 결국 '재벌특혜법'이 될 거라며 폐기를 주장하고 있어 논쟁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벤처기업법 개정안은 비상장 벤처기업 창업주에게 1주당 2~10주의 의결권을 보장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상법상 ‘1주=1의결권’이 기본 원칙이지만, 벤처기업의 경우 대규모 투자 유치 과정에서 창업주의 경영권 방어가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창업주가 보유 주식보다 많은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면, 외부 자본에 휘둘리지 않고 혁신적인 경영을 계속할 수 있다. 

실제 구글의 지주회사 알파벳은 2004년 상장 당시 주당 10개의 의결권을 부여하는 ‘클래스B’ 주식을 발행해 창업자들이 나눠 보유했다. 현재 구글 창업자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보유한 지분은 약 6% 정도지만 50%가 넘는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어, 다른 대주주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로운 경영활동이 가능하다. 

벤처기업법 개정안은 이처럼 혁신적인 벤처기업의 자유로운 경영활동을 보장하자는 취지에서 발의됐지만 시민단체는 해당 법안이 재벌 특혜를 위한 법이 될 거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실제 참여연대, 금융정의연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시민단체들은 개정안이 법사위에 상정된 지난 8일 논평을 내고 “벤처기업법은 실제 벤처기업의 육성보다는 결국에는 재벌들의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법이 될 가능성이 높다”며 “어떠한 명분도 실익도 없는 복수의결권주식 도입을 위한‘지배주주특혜법’인 벤처기업법 도입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시민단체들은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결국 벤처기업뿐만 아니라 일반 기업, 특히 재벌에게도 복수의결권을 허용하자는 주장이 제기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실제 전국경제인연합은 법사위 전날인 지난 7일 ‘모범회사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제안했는데, 이 법안에는 “회사 필요에 따라 다양한 종류주식 발행을 허용하여 기업 자금조달 지원 및 투자자의 다양한 선택권 보장한다”는 내용이 명시돼있다. 복수의결권을 벤처기업뿐만 아니라 일반 기업도 발행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시민단체들은 “(벤처기업) 상장 후에는 사실상 기존 상장기업과 동일한 대우를 받기에 재벌을 포함한 여타 기업 또한 복수의결권주식을 허용해달라는 움직임이 일어날 것 또한 쉽게 예상할 수 있다”며 “이번 전경련의 ‘모범회사법’ 제정 요구는 그런 예상이 단순히 시민단체의 과민 반응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현존하는 위험임을 웅변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시민단체들은 이어 “지금도 한국 재벌대기업 총수들은 적은 지분으로 막강한 지배력을 가지고 그룹 전체의 경영을 좌지우지하고 있다”며 “복수의결권 주식 발행은 현 경영진에 대한 과도한 권한집중을 발생시킬 수 있어 사익추구의 위험이 확대되고, 의결권이 희석된 기존주주 및 소수주주의 권리를 약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벤처기업들은 시민단체의 우려가 과도하다는 입장이다. 벤처기업협회·코리아스타트업포럼·한국벤처캐피탈협회·한국여성벤처협회 등은 9일 공동 입장문을 내고 “현재 국회에 상정된 복수의결권 허용법안은 복수의결권주식제도가 재벌 대기업의 편법 경영권 승계수단으로 활용될 수 없도록 차단하고 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시민단체와 일부 여당에서 제기한 향후 악용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로 인해 벤처업계의 필요와 염원이 묵살되는 현실에 대해 벤처·스타트업계는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또한 현행 상법상 의결권이 없는 주식 발행으로도 지배권 방어는 충분히 가능하다는 시민단체의 주장에 대해서도 “무의결권 주식 발행은 상식적으로 자본 투자 후 대상기업의 경영을 파악해야하는 벤처투자자가 동의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며 의결권배제주식은 자본시장에서 수요가 없어 실제로 발행되지 않고 있다”며 시장 논리와 맞지 않는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벤처기업들은 복수의결권이 허용되지 않을 경우 국내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이 약화될 것이라 우려하고 있다. 벤처기업 단체들은 이날 입장문에서 “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전환이 급격히 이뤄지는 환경 속에서 국내 정책의 혁신을 이루지 못해 글로벌 경쟁에서 낙오되는 교각살우의 잘못을 범해서는 안 될 것”이라며 “이번 복수의결권 도입방안이 국회에서 조속하게 통과되기를 촉구한다”고 말했다. 

혁신적인 벤처 스타트업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복수의결권을 허용해야 한다는 벤처업계의 요청과, 복수의결권이 결국 재벌에게까지 확대 적용될 것을 우려하는 시민단체의 반대 사이에서 21대 국회가 어떤 결론을 내릴지 관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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