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비파, 백두대간, 한지에 다색 목판화, 120*37cm, 2017.
정비파, 백두대간, 한지에 다색 목판화, 120*37cm, 2017.

 

하늘부터 출발한 바람이면 가능하겠다
당신의 반짝이는 이마를 닮은 산마루는.

좀 더 거친 바람이면 가능하겠다
당신의 콧등을 닮은 능선은.

흘끗 곁눈질하는 바람이면 가능하겠다
당신의 쇄골 닮은 계곡은.

가늘고 따스한 바람이면 가능하겠다
당신의 허리선을 닮은 산길은.

지평을 달려온 바람이면 가능하겠다
당신의 아랫배를 닮은 들녘은.

바다와 강을 건너온 바람이면 가능하겠다
당신의 비옥한 샅을 닮은 숲은.

속삭이는 바람이면 가능하겠다
보고 싶다 보고 싶다 당신의 목소리를 닮은 내 탄식은.

이 시의 제목이 ‘지리산’이 아니더라도 괜찮습니다. ‘남산’도 ‘도봉산’도 ‘태백산이라도 괜찮습니다. 바람 부는 모든 산은 이런 상상이 가능하겠지요.

산에서 바람을 맞으며 바람이 그려내는 산의 모양에서 그 사람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다다를 수 없는 ‘속삭이는 바람이면 가능하겠다 / 보고 싶다 보고 싶다 당신의 목소리를 닮은 내 탄식.’ 같은 쓸쓸한 내 마음도 읽었습니다.
 

 김용국(金龍國) 시인 약력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1984년 『한국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해 30년 넘게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작품으로는 『타악기풍으로』, 『생각의 나라』, 『다시 나를 과녁으로 삼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두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당신의 맨발』 등이 있으며 동인지 『비동인 (非同人)』으로 활동했다. 월간 『베스트셀러』에서 제정한 제1회 베스트셀러 문학상을 수상했다.

저작권자 © 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