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금융감독원
자료=금융감독원

코로나19로 금융권의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고 있는 가운데, 과도한 대면 영업창구의 감소로 인한 금융취약계층의 소외가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인터넷·모바일뱅킹 접근성이 낮은 고령층을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지난 14일 발표한 ‘2021년 상반기 국내은행 점포 운영현황’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국내은행 점포 수는 총 6326개로 전년말(6405개) 대비 79개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은행이 점포를 폐쇄하고 대면 창구를 축소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디지털 전환이 은행의 화두로 떠오르면서 모바일 뱅킹에 자원을 집중하는 대신 유지비가 높은 점포는 축소해 경영을 효율화하려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게다가 코로나19 확산 이후 대면 영업이 더욱 어려워지면서 이러한 경향은 점차 가속화되는 분위기다. 

금감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7년 312개의 은행 점포가 문을 닫은 뒤 2018년 23개, 2019년 57개로 감소폭이 둔화됐으나, 코로나19가 시작된 2020년에는 무려 304개의 점포가 영업을 종료하면서 감소세가 다시 빨라졌다. 올해는 79개로 감소폭이 지난해보다는 덜하지만 상반기 기준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연말 기준 감소폭은 100개 이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은행의 점포 축소는 기술 발전에 따른 불가피한 흐름이지만, 이로 인해 고령층 등 금융취약계층이 소외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부작용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60대 이상의 모바일뱅킹 이용 비율은 13.7%에 불과했다. 인터넷뱅킹 이용률 또한 60대 14%, 70대 4.3%로 매우 낮았다. 노인 8명 중 7명은 모바일·인터넷뱅킹이 익숙치 않아 오프라인 점포를 방문해야 한다는 것. 이런 상황에서 은행 점포가 축소되는 것은 이미 낮은 고령층의 금융접근성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

 

영국에 설치된 기업 금융 공동점포 '비즈니스 뱅킹 허브'의 모습. 사진=내셔널 웨스트민스터 은행 홈페이지 갈무리
영국에 설치된 기업 금융 공동점포 '비즈니스 뱅킹 허브'의 모습. 사진=내셔널 웨스트민스터 은행 홈페이지 갈무리

문제는 은행권의 디지털 전환 흐름을 막을 수 없는 상황에서 금융취약계층을 보호할 방안을 어떻게 마련하느냐다. 특히 인구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경영 효율화만을 주장하며 대안 없는 디지털 전환을 계속하는 것은 고령층의 금융소외를 방관하겠다는 것과 다름 없다. 게다가 고령층이 보유한 금융자산 비중을 고려하면, 이들의 금융접근성을 높이는 것은 은행 입장에서도 필수 과제다. 

해외에서는 은행 간 협력을 통해 이러한 문제에 대응하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다. 권용석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원은 지난 13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은행) 영업점 수 감소의 결과, 고령층과 장애인, 농어촌 지역 고객 등 일부 취약계층의 금융접근성이 하락하자 각국 금융당국은 점포 폐쇄 관련 규제를 강화했다”며 “글로벌 은행들은 협업 기반의 공동점포를 운영하며 금융접근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영국에서는 은행들이 지난 2019년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 대상의 공동점포 ‘비즈니스 뱅킹 허브’를 연 데 이어, 올해 4월부터는 일반 고객을 대상으로 2개 지역에서 ‘뱅킹 허브’를 시범 운영을 시작했다. 치열한 경쟁해왔던 시중은행들이 점포 축소에 따른 금융접근성 악화와 그로 인한 금융당국의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공동으로 운영하는 점포를 연 것이다. 

일본에서도 지방은행인 치바은행이 다이시·무사시노은행 등과 협약을 체결하고 공동 점포를 열었다. 치바은행은 공동점포 운영을 통해 지역사회의 금융접근성을 유지하는 한편, 도심 내 점포 임차비용을 낮추는 효과도 거두고 있다. 

 

영국 캠버슬랭 우체국에 설치된 일반 고객 대상 은행 공동점포 '뱅킹 허브'의 모습. 사진=캠버슬랭 커뮤니티 카운슬 홈페이지 갈무리
영국 캠버슬랭 우체국에 설치된 일반 고객 대상 은행 공동점포 '뱅킹 허브'의 모습. 사진=캠버슬랭 커뮤니티 카운슬 홈페이지 갈무리

반면 국내에서는 금융당국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금융접근성 유지를 위한 대응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앞서 금감원은 지난 2월 ‘은행 점포폐쇄 관련 공동절차’를 발표하고 점포 폐쇄 전 사전영향평가를 강화하는 한편, 점포 폐쇄의 대안으로 은행 간 창구업무 제휴 및 이동점포 운영 등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이동점포 운영은 쉽지 않은 일이 됐다. 당장 대부분의 시중 은행은 귀성객의 편의를 위해 매년 운영해왔던 이동점포를 올 추석에는 운영하지 않기로 했다. 

이런 상황에서 공동점포는 저비용으로 대면 채널을 운영하면서 금융접근성을 유지할 수 있는대안이 될 수 있다. 실제 하나은행과 산업은행은 지난 8월 업무협약을 맺고 영업점·ATM을 공유하기로 했다. 하지만 아직 은행권 전반으로 이러한 경향이 확산되지는 못하고 있다. 점포에서 문제가 발생할 경우 책임 소재가 모호한 데다, 자칫 공동점포 입점 은행간 상품 비교로 출혈경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권 연구원은 “오프라인 영업점 수 감소는 온라인 기반으로 금융 환경이 재편되는 과정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으나, 고령층 등 디지털 소외계층의 금융서비스 이용에 불편이 심화될 우려가 있다”며 “향후 국내은행들은 점포 효율화 흐름 속에 비용 절감과 금융소비자 편의를 함께 실현하는 공동점포 운영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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