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진. 떠도는 삶. 켄트지 위에 연필. 30*21cm
박용진. 떠도는 삶. 켄트지 위에 연필. 30*21cm

 

음력 삼월의 땅 위로 
보리는 삐죽삐죽 솟았지만 

우리들의 얼굴 
늙은 탱자처럼 부황이 올라 있었다. 

우리는 양 떼 같은 초식동물 
산과 들은 우리 거였고 우리는 
아직 녹지 않는 겨울을 
즐겁게 밟았다. 

지천으로 널려 있는 푸른 잎들을 
턱뼈가 아프게 씹었지만 
늘어져 있는 우리의 배 속에 
푸르게 푸른 봄은 오지 않았다.
 
산 너머 검정 고무신 같은 제비가 날아오고 
하얀 구름 사이로 날던 종달새 
붉은 진달래 울음 울면 
종달새알은 최고인 우리의 성찬 
어디론가 울며 종달새도 날아가고,
보릿고개 우로 
보리가 누렇게 벙글고 있었다. 

전근 간 여선생님을 얘기하는 하학 길 
우리는 깜부기를 먹으며 더욱 까매졌고 
어른들은 사랑방에 화투를 놓고 
바쁘게 들녘에 나갔지만 
사랑 같은 우리의 식욕은 줄지 않았다. 

아야 / 뛰지 마라 / 배 꺼질라 / 가슴 시린 보릿고개 길 / 주린 배 잡고 / 물 한 바가지 / 배 채우시던 / 그 세월을 / 어찌 사셨소. /(하략)’

가수 진성이 부른 ‘보릿고개’라는 노래를 들고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환갑쯤은 되겠지요. 지금 아이들과 젊은 사람들은 보릿고개라는 말이 무슨 뜻인 줄도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진성의 ‘보릿고개’를 들으며 나는 오래전에 쓴 ‘초식시대’라는 시를 기억했습니다. 무엇이든 부족했던 가난과 결핍 시대, 육식이야 특별한 명절이나 가능했던 그때는 대부분 사람들에게 ‘초식시대’였습니다. 먹을 것도 별반 없었지만 먹어도 먹어도 배고팠던 곤궁의 ‘보릿고개’였지요.

‘음력 삼월의 땅 위로 / 보리는 삐죽삐죽 솟았지만 / 우리들의 얼굴 / 늙은 탱자처럼 부황이 올라 있었다.’ 

김용국(金龍國) 시인 약력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1984년 『한국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해 30년 넘게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작품으로는 『타악기풍으로』, 『생각의 나라』, 『다시 나를 과녁으로 삼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두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당신의 맨발』 등이 있으며 동인지 『비동인 (非同人)』으로 활동했다. 월간 『베스트셀러』에서 제정한 제1회 베스트셀러 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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