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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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칼의 유상증자를 금지해달라는 KCGI의 가처분 신청을 법원이 기각하면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통합 작업에 속도가 붙게 됐다. 하지만 산업은행의 한진칼 지원을 ‘재벌 특혜’라고 비판하는 여론의 목소리가 여전히 높아 남은 과정이 순탄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앞서 지난 1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이승련 수석부장판사)는 KCGI 산하 투자목적회사 그레이스홀딩스가 한진칼을 상대로 낸 신주발행 금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KCGI는 산업은행이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지원하기 위해 한진칼의 3자 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것은 사실상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경영권을 방어해주기 위한 것이라며 반발해왔다.

반면 재판부는 “한진칼의 신주 발행은 아시아나항공 인수와 통합 항공사 경영이라는 경영상 목적 달성을 위해 필요한 범위에서 이뤄진 것”이라며 “현 경영진의 경영권·지배권 방어라는 목적 달성을 위해 신주를 발행하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한 유상증자로 지분구성이 변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산은이 조 회장의 우호주주라고 하더라도 지분율이 과반에 이르지 않는다는 점도 강조했다. 

◇ 큰 산 넘었지만 갈 길 먼 통합항공사 출범

두 항공사의 통합 작업에 가장 큰 분수령이었던 이번 재판이 사실상 조 회장과 산은의 승리로 마무리됐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특히, 거대 항공사의 합병인 만큼 독과점 문제에 대한 공정위 및 해외 각국의 승인이 필요하다. 

두 항공사의 국내선 점유율을 더하면 독과점 기준인 50%를 상회하지만 공정위가 인수 무산 시 아시아나항공의 회생이 어렵다고 판단해 예외로 인정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해외 기업결합심사다. 앞서 현대중공업의 경우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위해 지난해 7월 우리나라를 비롯해 유럽연합(EU)과 일본, 중국, 싱가포르, 카자흐스탄 등 6개국에 기업결합심사를 신청한 바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 승인을 낸 곳은 카자흐스탄과 싱가포르 등 두 곳뿐이다. EU는 이미 코로나19 등의 이유로 심사를 세 차례나 유예했고, 국내 공정위마저 공정거래법상 규정된 심사기간인 120일을 훌쩍 넘긴 상태다. 

다만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 건과 달리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건은 해외 기업결합심사가 상대적으로 순조로울 것이라는 낙관론도 나온다. 심사기준이 까다로운 것으로 알려진 EU조차 지난 30년간 접수된 7311건의 기업결합 중 93%인 6785건이 일반심사에서 승인됐다. 심층심사에서도 191건이 승인됐으며 불승인된 것은 33건에 불과했다.

하지만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건이 93%에 포함될지는 아직 확신하기 어렵다. EU가 이미 두 차례나 항공사 간의 인수합병에 퇴짜를 놓은 전례가 있기 때문. 앞서 EU는 지난 2007년 아일랜드의 라이언에어-에어링구스 합병, 2011년 그리스 올림픽항공-에게안항공 합병을 불허한 바 있다. 설령 EU가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에 대해 긍정적인 결론을 내린다 하더라도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의 사례와 같이 예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시민단체, “산은, 한진칼에 혈세 먼저 넣지 말라”

시민단체들은 여전히 산은이 한진칼의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특히 향후 통합 절차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됨에도 산업은행이 서둘러 한진칼에 자금을 투입하는 이유에 대해 의구심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다.

참여연대는 지난달 30일 “산업은행이 개입한 두 회사 인수합병 방식에는 각종 재벌특혜 등으로 볼 수 있는 많은 문제점과 풀리지 않은 의문점이 산적해 있다”며 산업은행에 공개질의서를 전달했다. 

참여연대는 “두 회사가 합병하려면 한국 공정위 뿐만 아니라 EU, 미국, 일본 등 세계 각국 공정위의 기업결합심사를 통과해야 한다”며 “일반적인 기업결합심사는 선 계약서 체결 후 자금 투입 순서를 따르지만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합병 건은 국민 혈세를 선 투입하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참여연대는 이어 “국내 및 해외 기업결합심사 통과 가능성 및 그 기간을 누구도 담보할 수 없는 상황에서 1조원에 달하는 국책은행의 자금투입이 선행되고 승인이 부결될 경우 투입된 자금을 돌려받을 수 있는 방법은 전무하다”며 “그동안 아시아나항공의 경영은 누가 책임지는 것이며, 또 기업결합심사가 부결됐을 경우에 어떤 대책을 준비하고 있는지 산업은행은 낱낱이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제개혁연대는 산업은행의 한진칼 유상증자 참여를 내년 초로 미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제개혁연대는 2일 논평을 내고 “오늘 예정되어 있는 5천억원의 산업은행 대상 제3자 배정 유상증자는 내년 3월로 계획되어 있는 대한항공의 주주배정 유상증자 때까지 아무런 사용처가 없다.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신주인수는 그보다 더 늦은 내년 6월 30일”이라며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위한 단계적 계획을 볼 때 굳이 현 시점에서 산업은행이 한진칼 유상증자에 참여할 필요가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라고 말했다.

경제개혁연대는 이어 “(산업은행이) 전혀 급하지 않은 한진칼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굳이 주주명부가 폐쇄되는 올해 말 이전에 추진하여 2021년 정기주주총회에서 약10%의 의결권을 확보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 의문”이라며 “산업은행이 한진칼 경영권 분쟁에 개입할 의사가 진정 없다면, 지금이라도 한진칼 유상증자 참여 시점을 내년 초로 미루는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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