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현대자동차그룹 신임 회장으로 선임된 정의선 회장. 사진=현대자동차그룹
지난 14일 현대자동차그룹 신임 회장으로 선임된 정의선 회장. 사진=현대자동차그룹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신임 회장이 공식 취임하면서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던 지배구조 개편 문제가 다시 부각되고 있다. 특히, 정 회장이 과거 약속했던 현대글로비스 지분 기부 약속이 향후 경영권 승계 과정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앞서 현대차그룹은 지난 2006년 정 회장과 부친 정몽구 명예회장 등 부자가 보유한 현대글로비스 주식 전량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검찰이 정 명예회장의 비자금 사건을 수사하기 시작하자, 비자금 조성 과정의 핵심 계열사인 글로비스의 지분을 기부하기로 한 것. 

당시 정 명예회장과 정 회장 부자는 보유한 글로비스 지분은 각각 28.1%, 31.9%으로 지분 가치는 약 1조원에 달했다. 정 명예회장은 이후 횡령·배임 등의 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으며, 글로비스 및 이노션 지분 등을 자신이 설립한 ‘정몽구 재단’에 기부했다.

반면 부친과 함께 지분을 기부하기로 했던 정 회장은 여전히 글로비스 지분 23.29%를 쥐고 있다. 14년이 지나도록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 이유는 글로비스 지분이 정 회장의 경영권 승계에 핵심적인 자원이기 때문이다.

현재 현대차그룹은 국내 10대 그룹 중 유일하게 현대모비스(21.4%)→현대차(33.9%)→기아차(17.3%)→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정 회장은 지난 2018년 모비스의 A/S 부품 및 모듈 사업부를 분할해 글로비스와 합병하고, 모비스 존속법인을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두는 형태의 지배구조 개편을 시도한 바 있다. 정 회장이 합병법인 지분을 매각해 존속법인 지분을 확보함으로서 모비스(존속)→현대차→기아차로 지배구조를 단순화하겠다는 계획이었다. 

당시 엘리엇 등 기관투자자와 의결권 자문사들이 모비스 지분가치가 저평가됐다며 반대해 지배구조 개편안이 실제로 추진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순환출자 해소와 지배구조 개편은 정 회장의 가장 무거운 숙제로 남아있어, 향후 모비스·글로비스 합병안이 재추진되거나 다른 형태의 지배구조 개편안이 발표될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어떤 형태의 개편안이던 정 회장이 보유한 글로비스 지분이 핵심적인 역할을 맡게 된다는 것이다. 현재 정 회장이 보유한 현대차그룹 지분은 현대차 2.62%, 기아차 1.74%, 현대글로비스 23.29%, 현대위아 1.95%, 현대오토에버 9.57% 등이다. 지배구조 개편 시 그룹 최상위에 위치할 모비스 지분은 불과 0.3% 수준이다.

향후 정 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모비스 지분 확보가 핵심인 만큼 글로비스 지분은 이를 위한 핵심 재원으로 활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만약 정 회장이 보유한 글로비스 지분이 없어진다면 모비스 지분 확보도, 순환출자 해소도 불가능한 과제일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정 회장이 경영권 승계에 결정적인 지분인 글로비스 주식을 14년 전의 약속대로 기부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현대차그룹 또한 기부 문제에 대해서는 "개인적인 판단의 영역"이라며 구체적인 답변을 피하는 모양새다.

2006년 현대차그룹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윤리적 의무를 다하기 위해 그동안 경영권 승계 관련 의혹이 제기됐던 개인 보유 글로비스 주식 전량을 조건 없이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혔다. 물론 기부 선언에 법적인 강제력은 없지만 경영권 승계를 위해 14년간 약속을 미루는 모습은 여론의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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