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수지 추이. 자료=기획재정부
재정수지 추이. 자료=기획재정부

코로나19에 따른 확장적 재정정책으로 인해 상반기 재정적자가 약 111조원까지 불어나면서, 재정건전성 악화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나라 곳간이 바닥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오히려 지속적인 경기부양책 추진을 조언해 눈길을 끈다.

기획재정부가 지난 11일 발표한 ‘월간 재정동향’에 따르면, 상반기(1~6월) 통합재정수지(총수입-총지출)는 90조원 적자를 기록해 전년동기대비 적자폭이 51조5000억원 늘어났다. 통합재정수지에서 4대 보장성 기금을 제외한 관리재정수지 적자폭은 지난해보다 51조원 늘어난 110조5000억원이었다. 

이는 지난해보다 51조원 늘어난 것으로, 2011년 통계 작성 이후 상반기 기준 역대 최고 수치다. 재정적자가 늘어난 것은 코로나19에 대응한 세 차례의 추경과 긴급재난지원금 및 고용보험기금 지출 등으로 인해 총지출(316조원)이 지난해보다 31조4000억원 늘어난 반면, 종합소득세 세정지원 및 근로장려금 반기 지급 등으로 총수입(226조원)은 오히려 20조1000억원 감소했기 때문이다.

국가채무 또한 증가하는 추세다. 6월말 기준 국가채무는 764조1000억원으로 전월 대비 2000억원 감소했지만,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기 전인 지난해와 비교하면 65조1000억원이 불어났다. 

◇ 111조 재정적자, OECD와 비교한 한국 상황은?

재정수지 악화가 통계수치로 나타나다 보니 재정건전성 악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다시 높아지고 있다. 특히, 오랜만에 여야가 공감대를 형성하며 추진해온 4차 추경 논의 또한 유보되는 모양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나라살림이 거덜난다”는 우려와 달리 일관된 확장적 재정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재정건전성이 국가 운영의 절대적 목표가 아닐뿐더러, 현재 한국의 재정여력은 추가적인 지출을 감당하기에 충분한 수준이라는 것.

실제 OECD는 지난 11일 발표한 ‘한국경제보고서’에서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기존 –1.2%에서 –0.8%로 상향 조정하며 한국의 경제상황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OECD는 한국 정부의 재정정책에 대해 “양호한 재정건전성을 바탕으로 실시한 확장적 재정정책은 위기 대응에 적절했다”며 “대규모 재정지원 등으로 재정적자가 발생하겠으나 재정을 통한 경기 뒷받침 지속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OECD가 이렇게 판단한 이유는 한국의 재정건전성이 여전히 다른 국가보다 양호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지난 6월 3차 추경을 반영해 발표한 국내총생산(GDP) 대비 통합재정수지 비율은 –3.9%, 국가채무 비율은 43.5%였다. 당시보다 통합재정수지 적자가 소폭 늘어난 점을 고려하면 GDP 대비 재정수지는 약 –4% 중반 수준. 지난해(–0.6%)와 비교하면 재정건전성이 약화되고 있다는 것이 확연히 드러난다.

OECD가 11일 발표한 한국경제보고서 내용 중 일부. 왼쪽은 GDP 대비 재정수지 비율 예측치, 오른쪽은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빨간색이 한국). 자료=OECD
OECD가 11일 발표한 한국경제보고서 내용 중 일부. 왼쪽은 GDP 대비 재정수지 비율 예측치, 오른쪽은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빨간색이 한국). 자료=OECD

하지만 다른 국가와 비교하면 이 수치는 생각보다 ‘건전’한 편에 속한다. 나라살림연구소가 7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 이전 OECD가 예측한 35개국의 GDP 대비 재정수지는 평균 –3.3%였으나, 코로나19 이후 –11.1%로 크게 낮아졌다. 3차 추경을 반영한 한국의 예측치는 –4.0%로 전체 회원국 중 노르웨이(-1.4%)에 이어 두 번째로 양호한 수치다. 이번 기재부 발표를 반영해 수치를 조정해도 한국보다 GDP 대비 재정수지 비율이 높은 나라가 늘어나지는 않는다.

국가채무 비율도 마찬가지다. OECD가 예측한 회원국의 GDP 대비 부채 비율은 코로나19 이전 평균 110.3%에서 코로나19 이후 126.6%로 상향 조정됐다. 한국의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도 코로나19 이전 43.8%에서 코로나19 이후 3차 추경을 반영해 47.5%까지 상승했지만 순위는 8위에서 5위로 오히려 개선됐다. 코로나19 이전 한국보다 국가채무 비율이 낮았던 호주, 뉴질랜드 등의 국가는 코로나19 이후 비율이 악화되면서 한국보다 순위가 아래로 내려갔다. 

◇ 4차 추경 논의, 시의적절한가

코로나19로 인해 한국의 재정건전성이 빠르게 악화되고 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보면 코로나19 위기를 겪고 있는 다른 국가에 비해 사정이 나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소수의 국가를 제외하면 한국의 재정건전성 관련 지표는 꽤 양호한 편이다.

이 때문에 역대 최고 수준의 재정적자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재정정책이 여전히 소극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재정지표가 급격히 좋아졌다는 것은 재정여력을 확보했다는 긍정적 측면과 재정이 적극적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지 못했다는 부정적 측면을 동시에 시사한다”며 “정부는 OECD 국가들과의 비교 등을 통해 코로나19 이후, 변화된 국가 재정 역할의 올바른 방향성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당정이 4차 추경 논의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것 또한 꼭 재정적자에 대한 부담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11일 MBC ‘뉴스데스크’에서 집중호우 피해 지원을 위한 4차 추경 필요성에 대해 “정부가 확인한 피해액 규모로 보면 기존 예산과 예비비, 지자체의 자금으로 감당이 가능한 수준”이라며 “신속하게 피해지원을 해야 하는데, 추경은 효과는 클지 몰라도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설명했다. 

한편, 더불어민주당과 정부, 청와대는 12일 국회에서 고위 당정 협의회를 열고 피해 복구 비용은 현재 재정으로 감당 가능한 상황이라며 추경 편성은 추후에 다시 판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복되는 재정건전성 논란 속에서 정부의 재정정책 기조가 어떤 방향으로 정해질지 관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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