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분명한 지주사-계열사 간 브랜드 사용료 산정기준으로 인해 금융업계 내부에서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과다지급하면 사익편취, 과소지급하면 계열사 부당지원으로 비난을 받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금융당국과 업계가 함께 명확한 기준을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 메리츠증권·미래에셋대우, 브랜드 사용료 차이

코로나19 사태로 금융시장 변동성이 커지면서 수익성 또한 악화되고 있지만, 금융지주사들은 여전히 계열사로부터 거액의 브랜드 사용료를 받으며 쏠쏠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

특히, 증권사 중에서는 메리츠증권이 타사 대비 상대적으로 많은 브랜드 사용료를 내고 있어 눈길을 끈다. 매년 100억원대의 사용료를 부담해온 메리츠증권은 지난해 영업이익(5332억원)이 전년 대비 20% 가량 상승하면서 총 193억5700만원의 브랜드 사용료를 메리츠금융지주에 지급했다. 매출 규모가 메리츠증권의 두 배에 가까운 미래에셋대우가 매년 약 80억원의 브랜드 사용료를 미래에셋자산운용에 지급하는 것에 비하면 상당이 높은 수치다.

금융그룹에 따라 브랜드 사용료가 서로 다른 것은 산정하는 기준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브랜드 사용료는 기준금액에 브랜드 사용요율을 곱하는 방식으로 결정된다. 제조업계의 경우 보통 매출액이 기준금액으로 사용되지만, 증권업계의 경우 영업수익, 또는 영업수익에서 판관비 등을 제외한 금액이 사용된다. 사용요율 또한 기업마다 0.1%~0.5%까지 다양하다. 

경제개혁연구소에 따르면, 메리츠증권의 경우 영업수익에 0.245%의 사용요율을 곱한 금액을 지주사에 지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미래에셋대우의 경우 0.542%를 적용한다. 미래에셋대우의 매출 규모와 사용요율 모두 메리츠증권보다 두 배가량 높지만 브랜드 사용료는 오히려 더 적은 이유는 다른 증권사와 달리 기준금액으로 ‘순영업수익’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개혁연구소는 지난 2월 발표한 '특수관계인간 상표권거래와 관련된 법률적 쟁점' 보고서에서 "미래에셋자산운용의 경우 0.542%의 사용료율을 적용하고는 있으나, 다른 회사와 달리 순영업수익을 기준으로 하고 있어 사용료율이 단순히 높다고 볼 수는 없으며, 상표권 계산의 기준값이 상이하므로 단순비교는 어려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 기준 없는 브랜드 사용료, 논란만 키워

지주사가 계열사로부터 브랜드 사용료를 받는 것은 법적으로 문제가 될 것이 없다. 문제는 브랜드 사용료에 대한 업계 공통의 명확한 산정기준이 없기 때문에 적정성을 검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브랜드 사용료를 받는 지주사에 대한 총수일가의 지분율이 높은 경우, 높은 브랜드 사용료는 오너의 사익편취를 위한 편법 행위로 비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메리츠금융지주의 경우 조정호 회장이 약 70%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데다, 계열사로부터 수취한 브랜드 사용료 총액이 기업집단 중 10위권에 속할 정도로 높아 반복적으로 사익편취 논란에 휘말리고 있다. 

또한, 브랜드 사용료 과다지급은 계열사의 재무건전성을 악화시키고 주주들의 피해를 초래한다는 비판도 받는다. 당장 한화손해보험의 경우 지난해 206억원에 이어 올해 221억원의 브랜드 사용료를 지주사에 지급해 금감원으로부터 지적을 받았다. 코로나19 등으로 인해 보험업계 업황이 좋지 않은 가운데, 과다한 브랜드 사용료까지 더해져 계열사 수익성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는 것.

반면, 사익편취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브랜드 사용료 규모를 과다하게 줄이거나 아예 받지 않으면, 역으로 ‘계열사 부당지원’ 논란에 휘말리게 된다. 실제 국세청은 지난 2010년 우리금융지주가 우리은행으로부터 브랜드 사용료를 받지 않은 것은 부당지원이라며 900억원의 법인세를 추징한 바 있다. 

◇ 당국도 기준 오락가락, 명확한 기준 마련돼야

더 큰 문제는 국세청과 금융당국, 공정위 등 관계기관도 브랜드 사용료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세우지 못한 채 갈팡질팡 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세청은 지난 2013년 신한은행이 신한금융지주에 브랜드 사용료를 내고 비용 처리한 것에 대해, ‘신한’이라는 브랜드 가치는 은행이 창출한 것이므로 지주사가 브랜드 사용료를 수취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1600억원을 추징했다. 국세청은 이후 우리금융 때와 기준이 다르다는 이의가 제기되자 자체 심의를 통해 해당 결정을 취소했다. 

이처럼 기준이 불분명한 상황에서는 브랜드 사용료가 총수일가의 사익편취 수단으로 악용될 위험을 감시하기 어렵다. 공정위는 지난 2018년부터 대기업집단에게 매년 5월 브랜드 사용료를 공시할 의무를 부과해 업계가 자율적으로 적정 기준을 세우도록 유도하고 있다. 하지만 해당 기준에 속하지 않는 기업집단의 경우는 여전히 브랜드 사용료의 적정성을 검증하기 어렵다. 앞서 언급한 메리츠금융지주 또한 지난해 비금융 계열사인 메리츠비즈니스서비스를 매각하면서 금융전업집단으로 분류돼 공시대상에서 제외됐다. 

기업 입장에서도 자체적으로 산정한 브랜드 사용료를 거래하다 보니, 규모에 따라 많으면 사익편취, 적으면 부당지원 논란에 휘말리는 상황이 부담스러울 수 있다. 금융당국과 업계가 머리를 맞대고 명확한 기준을 마련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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