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비영리단체 평가기관 체리티네비게이터 기준으로 본 정의연 효율성

11일 오전 서울 마포구 인권재단 사람에서 정의기억연대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부금 관련 논란에 관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11일 오전 서울 마포구 인권재단 사람에서 정의기억연대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부금 관련 논란에 관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의기억연대(이하 정의연)를 둘러싼 논란이 거세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으로 시작된 논란은 전임 이사장인 윤미향 더불어시민당 당선인을 비롯한 정의연 관련 인사의 기부금 유용 의혹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이코리아>는 정의연이 다른 공익 법인에 비해 과도한 운영비를 지출하고 피해자 지원사업에는 소홀했는지, 오해에 불과한지 국세청 자료 등을 통해 사실 관계를 따져봤다.

◇ 정의연, ‘효율적인’ 공익 법인인가

지난 2018년 시행된 ‘공익법인 회계기준’에 따르면 공익목적 사업비용은 사업수행비용과 일반관리비용, 모금비용 등으로 구분된다. 사업수행비용은 공익 법인이 추구하는 본연의 임무를 달성하기 위해 사용되는 비용으로 정의연의 경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지원하고 관련 교육·홍보·추모사업을 진행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이다. 일반관리비용은 인사·재무·기획·감독 등의 관리활동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의미하며, 모금비용은 모금 행사 및 홍보 등에 드는 비용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건전한 비영리단체에게 요구되는 사업수행비용의 비율은 대략 80%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의 비영리단체 평가기관 ‘채리티 네비게이터’는 “가장 효율적인 자선단체는 예산의 75% 이상을 사업비용으로 쓰고, 25% 이하를 모금 및 운영비로 사용한다”고 설명한다. 

채리티 네비게이터는 재단의 기부금 사용 방법, 프로그램과 봉사의 지속 가능성, 거버넌스의 효율성 및 개방성 등의 요소를 종합적으로 반영해 평가한다. 

그렇다면 정의연은 채리티 네비게이터의 기준에 부합할까? 국세청에 공시된 자료를 살펴보면 정의연의 2016~2019년 4년간 기부금 지출 대비 모금·운영비 비중은 평균 31.3% 수준이다. 채리티 네비게이터의 기준으로 보면 가장 효율적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 수준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평균의 함정’이 숨어있다. 연도별로 보면 2017년만 유일하게 20.1%일 뿐 2016년 58.1%, 2018년 48.4%, 2019년 32.7%로 모두 4년 평균보다 높은 수치다. 2017년은 ‘한·일 위안부 합의’ 발표 후 일본 정부의 위로금 수령을 거부한 피해자들을 돕기 위해 ‘100만 시민 모금’ 운동이 진행된 해다. 당시 정의연은 이렇게 모금된 기부금을 이용수 할머니를 포함한 피해자 8명에게 1인당 1억원씩 여성인권상금으로 전달했다. 이 때문에 2017년 사업비용이 크게 늘었고 상대적으로 모금·운영비 비중은 줄어들었다. 

물론 단순히 모금·운영비 비중이 높다고 해당 단체를 비난할 수는 없다. 사업의 특수성에 따라 운영비 비중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론을 의식해 운영비를 절약하는데 집착하면 자칫 사업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울 수 있다. 결국 핵심적인 문제는 공익법인이 추구하는 사업에서 얼마나 높은 효과를 달성하느냐다.

자료=국세청
2016~2109년 정의기억연대 전체 기부금 지출 대비 운영비 및 모금비 비중. 자료=국세청

◇ 피해자지원사업 비중, 2017년 빼면 2년 평균 5% 

정의연을 둘러싼 논란의 핵심도 여기에 있다. 정의연은 피해자 지원 외에도 교육과 대외홍보, 장학사업 등을 수행하며, 따라서 사업지출 또한 피해자 지원에만 집중될 수 없다. 하지만 다수의 국민들은 정의연이 피해자들을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라 생각하고, 그들의 복지를 최우선으로 고려하기를 기대한다. 따라서 외부에서 정의연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초점은 실제 사업지출 중 피해자 복지에 얼마만큼이 쓰였는가에 맞춰져 있다. 

정의연은 지난 11일 기자회견에서 2017~2019년 3년간 총 기부수입 약 22.2억원 중 41%에 해당하는 약 9.1억원을 피해자지원사업비로 집행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또한 평균의 함정이다. 정의연이 공개한 자료에서 ‘100만 시민모금’이 있었던 2017년을 제외하면 2년간 평균은 5% 수준이다. 

물론 2017년 상당한 액수를 피해자지원사업에 지출했기 때문에 2018~2019년 관련 지출 규모를 줄였을 수 있다. 하지만 2017년 이전에도 피해자지원사업에 소요된 비용은 그다지 많지 않다. 2016년 피해자 지원이 쓰인 비용은 불과 270만원으로 전체 기부금 지출(7571만원) 대비 3.5%에 불과하다. 

정의연 출범 이전에는 어땠을까? 정의연은 지난 2016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와 정의기억재단이 통합하면서 출범했다. 이중 피해자 지원을 담당한 정대협의 2014~2015년 국세청 공시 자료를 살펴보면, 기부금 지출 대비 피해자지원사업 비용은 2년간 3.9%에 불과하다. 반면 인건비·행정비 비중은 전체 기부금 지출의 49.5%에 달한다. 수치적으로만 보면 피해자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 비중은 낮고 운영비 비중은 높은 ‘비효율적 단체’에 해당한다.

정대협, 정의연 총 기부금 지출 대비 피해자 지원사업 비용 비중. (정대협 2014~2015년, 정의연 2016~2019년) 자료=국세청
정대협, 정의연 총 기부금 지출 대비 피해자 지원사업 비용 비중. (정대협 2014~2015년, 정의연 2016~2019년) 자료=국세청

◇ 정의연 “정기적 현금 지원이 단체 목적 아냐”

반면, 정의연은 11일 기자회견에서 “정의연의 피해자지원사업은 후원금을 모아 할머니들께 전달하는 사업이 아닌 할머니들의 건강치료지원, 인권과 명예회복 활동지원, 정기방문, 외출동행 등 정서적 안정 지원, 비정기적 생활물품지원, 쉼터운영 등의 내용으로 수행되고 있다”며 반박했다.

정의연은 또한 1993년 정부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게 생활안정지원금을 지급하기 시작한 뒤로는 정기적인 지원보다는 특정한 사건이 발생한 경우 모금활동을 통해 피해자들에게 현금을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정의연 이사장을 맡고 있는 이나영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12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국가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께 국가가 일정 부분 생활안정지원금을 드린다”며 “그리고 정의연은 그 외에 할머니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서 운동하실 때 비용을 대고, 필요할 때마다 또 지급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정한 목적에 따라 모금된 기부금을 피해자들에 대한 현금 지원으로 사용하기 어렵다는 입장도 밝혔다. 이나영 이사장은 “정의연에는 나비기금, 송신도희망기금, 김복동 평화기금, 길원옥 여성평화기금, 세계평화기금, 김복동센터기금 등 목적기금이 있다”며 “목적기금에 맞게 기부금이 들어오는 것이고 이 돈은 저희도 움직일 수가 없다. 예를 들어 나비기금에 들어온 돈을 다른 데 쓸 수 없다”고 말했다. 

◇ 이나영 이사장 "외부 감사 부적절"

결국 이번 논란의 핵심은 정의연의 낮은 피해자 직접 지원 비중이 정당한지, 피해자 직접 지원 비중을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며 추진해온 다른 사업들에 확실한 명분과 효과가 있었는지 여부다.

정의연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해 설립된 단체이지만, 정기적인 생활비 지원이 아니라 피해자들의 대외활동지원 및 다양한 교육·홍보·추모 사업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외부에서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못하다. 일본의 공식적인 사과와 피해자들의 안정된 삶을 바라며 수요집회와 소녀상 건립 등 정의연의 뜻깊은 활동을 지지해온 국민들에게 '총 지출 대비 피해자지원사업 비율 5~8%'라는 수치는 의문일 수밖에 없다.

이번 의혹 제기는 정의연 외부가 아닌 내부, 그것도 피해 당사자인 이용수 할머니에 의해 제기됐다. 이를 고려할 때, 정의연은 국민에게 그동안 추진해온 다양한 사업들의 필요성을 설득하고 회계와 관련한 의문들을 해소해야 할 입장에 서게 됐다. 

다만 정의연은 이미 적법한 감사 절차를 거쳤다며, 세부적인 기부금 사용 내역 공개 및 외부 감사는 과도한 처사라는 입장이다. 이나영 이사장은 외부 감사 계획에 대한 질문에 “저희는 법적 절차에 따라서 변호사 한 분과 회계사 한 분의 회계감사를 받고 있으며, 그걸 다 공시하고 있고 보고하고 있다”며 “저희가 왜 그런 식으로까지 의혹에 몰려서 외부 회계감사를 받아야 되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나영 이사장은 이어 “(정의연이 외부 감사를 수용하는 것은) 한국 사회에 있는 모든 시민단체들에게 악영향을 끼치는 행동”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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