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종로경찰서에서 '박사' 조주빈이 검찰로 송치되는 가운데 경찰서 앞에서 텔레그램 성착취자의 강력처벌을 요구하는 시민들이 손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 3월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종로경찰서에서 '박사' 조주빈이 검찰로 송치되는 가운데 경찰서 앞에서 텔레그램 성착취자의 강력처벌을 요구하는 시민들이 손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뉴시스

20대 국회가 임기 종료 전 ‘n번방 방지법’ 통과를 위해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달 29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데 이어, 지난 6일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여가위를, 7일에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과방위를 통과했다.

텔레그램 n번방 사태의 재발을 근절하기 위해 도입된 일련의 법안 패키지에는 불법 촬영물의 제작·유포와 관련된 처벌을 강화하고, 인터넷 사업자에게 음란물 유통 방지의 책임을 지우는 등 다양한 방안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해당 법안 패키지의 내용을 두고 여론은 다양한 방향에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n번방 방지법’이 과도한 규제로 다수의 범죄자를 양산할 수 있다고 우려하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실질적인 재발 방지책이 되기에는 사각지대가 너무 많다며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코리아>는 ‘n번방 방지법’이 실효성을 담보하고 있는지 검증해봤다. 

지난달 29일 국회를 통과한 성폭력처벌법 개정안 내용 중 일부. 자료=국회의안정보시스템
지난달 29일 국회를 통과한 성폭력처벌법 개정안 내용 중 일부. 자료=국회의안정보시스템

◇ 과도한 범죄화? ‘불법촬영물’에 대한 오해 

‘n번방 방지법’과 관련해 가장 많이 제기되는 우려는 단순히 음란물을 내려받거나 소지하고 있는 경우에도 범죄자로 취급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 지난달 29일 국회를 통과한 성폭력처벌법 개정안에는 “불법 성적 촬영물 등을 소지·구입·저장 또는 시청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한다”는 조항이 포함돼있다.

해당 법안을 비판하는 측에서는 ‘불법 성적 촬영물’의 범위가 모호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불법 촬영물에 해외 성인물 제작업체에서 만든 성인용 영상물, 소위 ‘야동’이 포함된다면 이를 시청하거나 소지하고 있는 다수의 성인들도 처벌될 수 있다는 것. 이 때문에 반대 측에서는 ‘n번방 방지법’이 개인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하는 법안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이는 과도한 우려로 보인다. 실제 성폭력처벌법 개정안에는 처벌 대상인 불법 성적 촬영물을 “카메라나 그 밖에 이와 유사한 기능을 갖춘 기계장치를 이용하여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사람의 신체를 촬영대상자의 의사에 반하여 촬영한 것”이라고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이는 촬영대상자 본인이 촬영 및 유포에 동의했는지가 처벌 여부를 결정하는 기준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다르게 말하면, 적법한 제작 환경에서 배우가 촬영과 유통에 동의한 영상물의 경우 ‘n번방 방지법’의 적용 대상은 아니라는 것. 단순 ‘야동’ 소지만으로 범죄자가 될 수 있다는 우려는 법 조문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지난 7일 과방위 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상민 의원과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 간의 질의 내용. 자료=국회의안정보시스템
지난 7일 과방위 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상민 의원과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 간의 질의 내용. 자료=국회의안정보시스템

◇ 해외사업자는? 규제 사각지대 논란

개인의 사생활을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우려와는 달리, 오히려 ‘n번방 방지법’에 지나치게 구멍이 많다며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가장 대표적인 문제는 해외에 서버를 두고 음란물을 유통하는 역외 사업자를 어떻게 규제할 것이냐는 것이다.

지난 7일 과방위를 통과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은 정보통신서비스 사업자에게 불법촬영물 유통방지에 관한 책임과 피해자 보호의무를 부여하고, 신속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과징금과 손해배상을 부과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해당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웹하드업체뿐만 아니라 SNS나 블로그, 메신저 앱 등을 서비스 중인 국내 업체들은 모두 자사 플랫폼에서 불법 촬영물이 유통될 경우 책임을 지게 된다. 

문제는 다수의 불법 촬영물이 해외에 서버를 둔 해외사업자에 의해 유통되는 상황에서 국내사업자에 대해서만 규제가 적용될 경우 반쪽짜리 법안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국내사업자에게만 규제가 적용될 경우 역차별이라는 논란도 제기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처음 발의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에는 ▲국외에서 이루어진 행위도 국내 시장 또는 이용자에게 영향을 미칠 경우, 관련법을 적용하도록 하고 ▲해외사업자의 국내대리인의 업무에 불법촬영물 등 유통방지 책임자 업무, 투명성 보고서 제출 업무를 추가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하지만 해당 조항이 추가됐다고 해서 해외사업자의 불법촬영물 유통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 지난 7일 과방위 회의에서는 관련 문제에 대한 질의가 이어졌으나 속시원한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이날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은“해외 사업자에 대한 제재가 미치지 못하고 실효성이 반감된다라는 점은 동의하느냐”는 더불어민주당 이상민 의원의 질의에 대해 “저희도 인식을 같이 하고 있다”고 답했다.

한상혁 위원장은 “(해외사업자 규제를 위한) 역외 규정을 둔다고 하더라도 선언적 의미의 의무규정일 수밖에 없다”며 “그것들이 구체적으로 현장에서 집행이 될지는 행정적인 집행력이 미치느냐 문제”라고 밝혔다. 

한 위원장은 이어 “이런 불법물의 유통에 대해서 국내대리인을 통해서 유통을 방지할 수 있는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지만 이마저도 불확실하다. 국내대리인 지정 제도는 해외사업자에 개인정보 보호의무를 부과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로, 지난해 3월부터 시행되기 시작했다.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국내대리인을 통해 해외사업자의 불법촬영물 유통에 제재를 가할 수 있다. 

문제는 제도 시행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해외사업자가 국내대리인을 지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해 10월 더불어민주당 변재일 의원이 방통위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9월 30일 기준 국내대리인을 지정한 해외사업자는 13곳, 미지정한 해외사업자는 42곳으로 큰 차이를 보였다. 애플, 구글, 페이스북 등 주요 사업자들은 국내대리인을 지정했지만 개인정보 관련 고충처리 과정이 부실했다. 

결국 이번 n번방 사태의 진원지였던 ‘텔레그램’은 ‘n번방 방지법’이 통과된다고 하더라도 사실상 규제할 방법이 없다고 볼 수 있다. 20대 국회 임기 만료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에서, 관련 문제를 해결할 획기적인 대안을 고민하는 부담은 21대 국회에 넘어가게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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