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일 취임 3주년 기념연설에서 질병관리본부를 청으로 승격시키겠다고 밝혔다.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갈무리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일 취임 3주년 기념연설에서 질병관리본부를 청으로 승격시키겠다고 밝혔다.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갈무리

“질병관리본부를 질병관리청으로 승격하여 전문성과 독립성을 강화하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코로나19 대응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고 있는 질병관리본부를 ‘청’으로 승격시키겠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지난 10일 취임 3주년 기념 연설에서 이같이 말하며 “전문인력을 확충하고 지역체계도 구축해 지역의 부족한 역량을 보완하겠다”고 덧붙였다.

◇ 질병관리청, 지역본부 두고 감염병 대응 총괄

질본을 청으로 승격시키는 방안은 지난 4·15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 등이 이미 공약으로 제시한 내용이다.

‘청’은 행정각부의 소관사무 중 독자성이 높고 전국적인 업무를 독자적으로 관장하기 위해 설립되는 중앙행정기관으로, 질본이 청으로 승격될 경우 기존 대비 강화된 독립성과 전문성을 보장받게 된다.

질본이 청으로 승격되면서 뭐가 달라질까. 첫째 지역본부 신설이다. 국세청·경찰청·소방청 등은 지역본부를 두고 각 지역에서 발생하는 세무·치안·방재업무 등을 총괄하고 있다. 반면 방역업무의 경우 질병관리본부가 대책을 수립해도 지역별 실무는 지자체와 소속 보건소가 맡고 있어 통합적인 코로나19 대응이 어려웠다. 

문 대통령이 직접 언급한 것은 아니지만, 향후 구체적인 질본 역할 강화 방안에 지역본부 설립에 대한 논의가 포함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민주당은 지난 총선 공약으로 “6개 권역에 질병관리본부 지역본부를 설치하고 5개 검역사무소를 추가 설치”하는 방안을 제안한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 21대 총선 공약집 중 감염병 관련 내용. 자료=더불어민주당
더불어민주당 21대 총선 공약집 중 감염병 관련 내용. 자료=더불어민주당

 

◇ ‘본부’→‘외청’, 인사·예산권 강화 

인사·예산 등에 대한 재량권도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질병관리본부는 지난 2003년 사스 사태 당시 국립보건원에서 본부로 승격된 뒤, 2015년 메르스 사태 후 차관급 조직으로 재차 승격했다. 이를 통해 외형적으로는 질병관리본부장이 예산과 인사에 대해 어느 정도 재량권을 가지게 됐지만, 여전히 보건복지부의 영향 아래 놓여있다는 평가다. 실제 5급 이상인 국장급을 비롯해 과장급 인사의 과반수는 감염병 전문가나 의사가 아닌 복지부 출신이 맡고 있는 실정이다.

6급 이하는 본부장이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지만 이마저도 완전하지 않다. 질본이 차관급 조직으로 격상된 뒤인 지난 2016년 2월~2017년 7월 재임한 정기석 전 질병관리본부장은 지난 3월 동아일보를 통해 “규정은 6급 이하 인사는 소속 기관의 장이 한다고 돼있지만 실제는 달랐다. 복지부가 안 놔준다”며 “사전 의논 없이 일방적으로 정한다. 복지부 장·차관과 가까우면 살짝 이야기해주지만 체계화된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질본이 청으로 승격되면 보건복지부 산하기관에서 ‘독립외청’으로 분리되면서 인사·예산과 관련해 상대적으로 자율성을 보장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이 브리핑 자료를 들고 이동하는 모습. 사진=뉴시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이 코로나19 브리핑 자료를 들고 이동하는 모습. 사진=뉴시스

◇ 질병관리청 자율성 보장 여부가 관건

일각에서는 이름만 질본에서 질병관리청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권한을 강화하는 방안이 논의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행 정부조직법상 각 청은 소관사무를 총괄하고 소속 공무원을 지휘·감독할 권한을 가지지만, 국무회의에 직접 의안을 제출하거나 소관사무에 대한 직접적인 법규명령을 제청할 수 없다.

정은경 본부장이 질병관리청장으로 승격되면 국무회의에 출석해 발언할 권한이 생기지만, 관련 의안은 여전히 보건복지부 장관을 통해 국무회의에 제출해야 한다. 

이수영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는 지난 2014년 발표한 ‘우리나라 청 조직의 권한과 한계에 대한 소고’ 논문에서 “청 조직은 전통적인 정책집행 기능에 정책형성 및 결정 기능까지 수행하고 있지만, 새로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자율성이나 신축성은 상대적으로 많이 모자란 상태”라며, 청 조직에 대한 ▲법령제정권 부여 ▲국무회의 의안제출 건의권 부여 ▲인사 및 예산권 대폭 위임 등의 개선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당청은 질병관리청의 위상과 역할을 크게 강화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아직 구체적으로 밝혀진 내용은 없다. ‘팬데믹’의 위험이 상존하는 ‘뉴노멀’의 시대에, 질병관리청이 진정한 감염병 컨트롤타워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게 될지 관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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