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용인시 66번 확진자 관련 소식을 전하면서 '성적 지향'을 과도하게 부각시킨 국내 언론의 보도 행태가 여론의 비판을 받고 있다. 사진=네이버 홈페이지 갈무리
지난 7일 용인시 66번 확진자 관련 소식을 전하면서 '성적 지향'을 과도하게 부각시킨 국내 언론의 보도 행태가 여론의 비판을 받고 있다. 사진=네이버 홈페이지 갈무리

경기도 용인시 66번 확진자와 관련해 언론의 보도 행태가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특히 방역조치에 필수적이지 않은 성적 지향을 비롯해 신상을 특정할 수 있는 자세한 개인정보도 공개돼 인권침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 다수 매체, 확진자 ‘성적 개인 정보'에 초점 

용인시 및 방역당국에 따르면, 지난 6일 양성 판정을 받은 용인시 거주자 A씨는 지난 5월 1일~2일 연휴 기간 이태원 소재 클럽 5곳을 방문한 것으로 밝혀졌다. A씨가 방문한 클럽 중 한 곳은 SNS를 통해 확진자 방문 사실을 알리며 “확진자에 대한 추측성 소문 및 신상 공개 등은 자제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이후 다수의 매체가 해당 클럽이 성소수자들이 모이는 장소라는 사실을 부각시키며 A씨의 신상을 특정할 수 있는 개인정보 및 동선을 경쟁적으로 보도하기 시작했다. 특히, 국민일보는 “단독/이태원 게이클럽에 코로나19 확진자 다녀갔다” 기사를 통해 확진자의 성적 지향에 초점을 맞춰 보도했다. 해당 기사에는 거주지와 직장을 특정할 수 있는 정보를 비롯해 자세한 동선이 공개됐으며, ‘게이클럽’이라는 용어도 두 차례 사용됐다.

문제는 확진자의 성적 지향이 방역조치에 필수적인 정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일부 매체에서는 ‘게이클럽’이라는 자극적인 소재에 초점을 맞춘 보도를 내놨다는 것이다. 일부 온라인매체들은 제목에 ‘게이클럽’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으며, 그렇지 않은 매체들도 기사 본문에 해당 표현을 사용한 경우가 많았다.

특히 이러한 경향은 경제지를 중심으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뉴스빅데이터 분석시스템 ‘빅카인즈’를 통해 지난 7일~8일 보도된 주요 일간지 및 경제지, 지역지 등 54개 매체를 조사한 결과, 국내 주요 언론 중 기사 제목에 ‘게이클럽’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경우는 한국경제가 6건으로 가장 많았으며, 아주경제와 매일경제가 각 2건, 헤럴드경제가 1건으로 뒤를 이었다. 

해당 표현을 제외하더라도 관련 기사의 제목이나 내용에서 확진자 및 성소수자에 대한 배려를 발견하기는 어려웠다. 한국경제가 8일 보도한 “호기심에? 킹클럽·트렁크·퀸… 게이클럽 골라 찾은 용인 확진자” 기사는 방역 이슈보다는 A씨의 성적 호기심을 집중적으로 부각시켰다. 특히, 기사 본문에서는 “지인 소개로 호기심에 방문했다”는 A씨의 해명을 전하면서도 “하지만 당초 A 씨가 밝힌 것보다 많은 게이 클럽, 게이 바를 방문한 사실이 역학조사를 통해 드러나면서 해명의 신뢰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고 반박해 A씨가 성소수자일 가능성에 초점을 맞췄다.

주요 일간지 및 통신사들도 제목에 ‘게이클럽’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을 뿐, 관련 기사에서 A씨의 성적 지향에 대해 언급한 것은 마찬가지다. 실제 연합뉴스·뉴스1·뉴시스 등 주요 통신사들은 A씨가 방문한 클럽이 성소수자들이 방문하는 ‘게이클럽’이라는 내용의 기사를 보도했으며, 특히 뉴스1과 뉴시스는 제목에도 같은 표현을 사용했다. 

자료=국민일보 홈페이지 갈무리
국민일보가 지난 7일 단독 보도한 용인시 66번 확진자 관련 기사. 현재는 제목에서 '게이클럽'이라는 표현이 삭제됐다. 자료=국민일보 홈페이지 갈무리

 

그렇다면 A씨의 성적 지향이나 그가 방문한 클럽이 성소수자들이 모이는 장소라는 사실이 코로나19의 확산을 억제하는데 필수적인 정보일까? 이에 대한 전문가들의 일관된 답변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7일 YTN 라디오 ‘이동형의 뉴스 정면승부’에 출연해 “성소수자가 다니는 클럽이냐 아니냐 자체를 공개하는 게 사실 큰 의미는 없다”며 “그 부분을 언론에서 주로 다루는 것이 오히려 역학 조사위원들에게 방해될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참여연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시민단체들도 지난 3월 성명을 내고 “정부와 언론은 확진자의 관계나 신원에 대한 관심보다는 감염병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 자체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으며, 공개되는 개인정보가 최소화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해외 유입 확진자의 경우, 신원을 특정할 수 있는 국적 등의 정보보다는, 확진자가 입국 전 방문한 국가 목록을 공개하는 것이 나을 수 있다. 

실제 질병관리본부는 인권 침해를 우려해 두 차례나 확진자 동선 등 정보공개 지침을 수정한 바 있다. 해당 지침은 확진자 동선 공개 시 개인을 특정하는 정보, 거주지 세부주소 및 직장명 등을 공개하지 않도록 권고하고 있다. 또한 시간적, 공간적으로 감염을 우려할 만큼의 확진자와의 접촉이 일어난 장소 및 이동수단을 공개하되, 개인을 특정할 수 있는 정보를 제외하고 가능한 범위 내에서만 공개하도록 했다. 또한, 확진자와 접촉한 사람들을 모두 파악한 경우 해당 동선을 공개할 필요는 없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사진=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홈페이지 갈무리
사진=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홈페이지 갈무리

◇ 언론, 코로나19 보도준칙 준수해야

문제는 정부가 아니라 언론이 나서서 경쟁적으로 확진자의 동선을 보도하면서, 불필요한 개인정보를 유출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언론계 또한 지난 2월 자체적인 코로나19 보도 준칙을 제정했다. 해당 준칙은 “인권 침해 및 사회적 혐오·불안 등을 유발할 수 있는 자극적 보도 및 방송을 자제하고, 이를 요구하는 지시가 이뤄지지 않도록 해달라”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용인시 66번 확진자 관련 보도에서 언론계가 스스로 정한 규칙은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다.

무분별한 동선 보도 경쟁 속에서 피해를 받는 것은 결국 성소수자들이다. A씨가 사회적 거리두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해 감염 위험을 높인 점은 비판받을 수 있으며, 실제 A씨도 SNS를 통해 자신의 부주의함에 대해 사과했다. 하지만 A씨는 자신의 성적 지향에 대한 언론의 관심을 수용하거나, 그에 대해 변명해야 할 이유는 없다. A씨 관련 보도로 인해 도매금으로 '혐오'의 대상이 된 성소수자들도 마찬가지다. 

개선되지 않는 언론의 코로나19 보도 행태에 자성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는 7일 성명을 통해 “확진자의 성적 지향을 공개하고 질병과 아무 상관 없는 정보를 캐는데 혈안이 된 언론의 태도는 한국사회에 만연해온 소수자 혐오에 질병에 대한 낙인을 더하는 것”이라며 “혐오를 바탕으로 여론을 선동하는 것은 질병을 음지화할 뿐 예방과 방역에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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