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5차 비상경제회의'에서 코로나19 지원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5차 비상경제회의'에서 코로나19 지원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정부가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3차 추가경정예산 편성에 나섰다. 특히, 3차 추경에서는 대규모 적자국채 발행을 통해 재원을 마련할 것으로 보여, 정부의 재정정책 기조가 적극적으로 바뀐 이유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2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5차 비상경제회의’에서 “기간산업의 위기와 고용 충격에 신속히 대처하고, 국민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한 특단의 대책을 결정했다”며 코로나19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한국판 ‘뉴딜’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문 대통령이 발표한 한국판 뉴딜 정책에는 ▲40조원 규모의 기간산업 안정기금 조성 ▲긴급고용안정대책에 10조원 투입 ▲금융지원책 100조원→135조원 확대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 앞서 지난 4차 비상경제회의까지 발표된 지원대책 규모는 약 150조원. 5차 회의에서 문 대통령이 발표한 지원책의 필요한 재원은 총 85조원으로 앞서 발표된 지원책 규모의 절반이 넘는다.

GDP의 10%에 달하는 재정지출에 나선 미국·일본과 달리 문재인 정부의 코로나19 재정정책은 상대적으로 소극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경제 회복을 위한 재정정책의 효과성에 초점을 맞춘 미국 등 주요국과는 달리, 문재인 정부의 기존 재정정책은 정부부채와 재정관리에도 신경을 쓰는 등 ‘재정건전성’에 방점을 두고 있었기 때문. 

실제 정부는 최근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대상을 소득 하위 70%에서 전 국민으로 확대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유보적인 태도를 보인 바 있다. 이미 1차 추경에서 10조3000억원 규모의 적자국채를 발행했는데, 재난지원금을 확대 지급하기 위해 약 3조원의 적자국채를 추가로 발행할 경우 재정건전성이 악화된다는 이유에서다. 22일 100% 지급안을 추진하는 방향으로 당정 갈등이 봉합됐지만, 정부가 재정건전성을 현 수준으로 유지하는데 무게를 두고 있다는 점은 명확했다.

하지만 22일 문 대통령이 85조원 규모의 추가 지원책을 발표하면서 정부의 재정정책 기조에 변화의 조짐이 드러났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2일 “3차 추경 편성은 불가피하다”며 “규모는 상당할 것으로 보이며 대부분 적자국채 발행을 통해 충당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재난지원금 확대 지급에 필요한 3조원 규모의 국채 발행에도 소극적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정부의 재정정책 기조가 상당히 공격적으로 바뀐 셈이다.

◇ 文정부, ‘재정관리’보다 ‘위기극복’에 초점

이는 정부가 재정정책의 축을 ‘재정건전성’보다는 위기 극복의 ‘효과성’으로 옮기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정부는 고용안정 특별대책을 위한 예산 9조3000억원을 대부분 적자국채로 충당할 뿐만 아니라, 40조원 규모의 기간산업 안정기금 재원도 국가보증채권을 통해 조달할 계획이다.

키움증권 김유미 연구원은 23일 정부 발표에 대해 “한국판 양적완화의 형태인 동시에 정부가 국가부채의 증가를 어느 정도 용인하겠다는 신호”라고 평가했다. 현재 한국은행이 직접 매입 가능한 대상은 정부가 보증한 채권으로 한정되며, 산업금융채권 등 기금채는 직접 매입할 수 없다. 정부는 기간산업 안정자금 조성을 위해 국회 동의를 얻어 기금채를 국가보증채권으로 하겠다고 밝혔는데, 이는 한은이 기금채를 매입할 수 있도록 해 시장에 유동성을 직접 공급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문제는 기금채가 국가보증채권으로 전환되면 국가채무에 포함되기 때문에, 국가부채 비율이 악화될 수 있다는 것. 김 연구원은 “그 동안 정부가 재정건전성을 이유로 자금 지원 등에 다소 보수적인 스탠스를 취해왔음을 감안한다면 이번 기금 채권의 국가보증 동의안 추진 계획은 부채 증가를 일부 용인할 수 있다는 신호로도 볼 수 있다”며 “재정건전성의 고삐를 다소 늦춘 정부의 스탠스 변화 가능성은 주목할만한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 S&P “한국, 우수한 재정건전성이 높은 신용도 배경”

정부가 국가부채 증가를 감수하고 공격적인 재정정책을 펴게 된 배경에는 재정건전성에 대한 자신감이 놓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1차 추경을 반영한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약 41.2%로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상당히 낮은 편이다. 실제 오랫동안 균형예산을 추구해온 독일의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도 60%를 상회한다. 하지만 독일이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지출한 재정은 GDP 대비 1.8%로 한국(0.9%)의 두 배다. 

해외에서 바라본 한국의 재정상황도 안정적이다. 앞서 국제 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지난 21일 한국의 장기 국가신용등급을 'AA',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으로 유지한다고 밝혔다.

S&P는 “한국 정부의 우수한 재정건전성이 국가신용도를 뒷받침하는 요인”이라며 “코로나19가 소강상태에 접어들면 정부의 재정건전성이 개선되고 문재인 대통령의 잔여 임기 동안 경기가 회복되면서 정부 예산도 점진적으로 균형을 찾아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는 한국이 코로나19로 인한 단기적 재정적자 확대를 감수할 여력이 충분하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 코로나19 지원책 ‘현금지원’→‘일자리 창출’로 이동

정부가 현금지원에 이어 기간산업 안정 및 일자리 창출 등 고용에 초점을 맞춘 것도 주목할만한 부분이다. NH투자증권 안기태 연구원은 “(정부 재정정책이) 이전에는 정부부채와 재정관리에 방점을 두었다면, 지금은 고용창출에 좀더 방점을 두고 있다”며 3차 추경은 고용안정을 위한 보조금 지급이 중심인 중국의 재정정책과 유사하다고 설명했다. 

이는 긴급재난지원금이 일시적 효과는 낼 수 있지만 경제회복을 위한 근본적인 대안이 될 수는 없다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 한국의 경우 가계저축률이 높아 지원된 현금이 소비가 아닌 저축에 활용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만약 현금지원이 기대만큼의 소비 활성화 효과를 내지 못한다면, 경제 회복을 촉진하기 위한 추가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안 연구원은 “하위 70% 계층을 겨냥한 현금지급만 할 경우, 예비적 목적의 저축성향이 높은 사람들은 소비를 하지 않고 저축만 하게 될 수 있다. 이 경우 하위 계층의 일자리를 보전하는 것이 재정승수가 높을 것”이라며 “(고용안정 특별대책의) 규모가 충분하지는 않지만, 정책 방향은 긍정적”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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