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의당 회의실에서 열린 중앙선대위 해단식에 참석해 발언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의당 회의실에서 열린 중앙선대위 해단식에 참석해 발언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21대 총선에서 거대양당을 중심으로 한 ‘표 쏠림’ 현상이 심화되면서, 처음 시도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실험은 사실상 실패로 귀결됐다. 이에 따라 21대 국회가 선거법 재개정에 나설 것인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비례성 강화 무색, 소수정당 입지 더 좁아져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15일 치러진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시민당(180석)과 미래통합당·한국당(103석)을 제외한 나머지 정당 및 무소속 후보자가 확보한 의석은 총 17석으로 전체 의석의 5.7%에 불과하다. ‘비례성’ 강화를 목표로 도입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처음 도입됐지만, 병립형으로 치러진 지난 선거보다 오히려 소수 정당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비례성’을 높여 국회 내의 정치적 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다. 기존 병립형에서는 비례의석이 지역구 의석보다 비중이 작아, 정당 득표율이 의석 수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문제가 있었다. 반면 연동형은 지역구 의석이 정당 지지율보다 모자랄 경우 비례의석으로 충원하는 방식이다. 정당에 대한 지지가 실제 의석수와 100% 연동되는 구조이기 때문에 소수 정당 입장에서는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 치러진 첫 연동형 실험은 결국 실패로 끝났다. 더불어시민당과 미래한국당이라는 위성정당을 통해 거대양당이 비례의석 손실을 전혀 보지 않게 됐기 때문. 지역구 후보는 내지 않고 비례후보만 내는 비례위성정당을 통해 양당이 확보한 의석은 비례의석(47석) 전체의 76.6%인 36석에 달한다. 열린민주당까지 더불어민주당의 의석으로 포함시키면, 소수정당(정의당, 국민의당)이 확보한 의석(9석)은 한 자릿수에 불과하다.

선거제 개혁 논의 당시 위성정당 문제는 기우로 치부됐지만, 막상 선거가 가까워지자 눈 앞의 현실이 됐다. 선거를 두 달 앞둔 지난 2월 5일 미래한국당이 창당하자, 맞대응을 고심하던 여당도 결국 한 달 뒤인 3월 8일 더불어시민당을 창당했다. 선거제 개혁에 가장 적극적으로 앞장섰던 정의당은 원칙을 강조하며 양당을 비판했지만, 위성정당을 막을 제도적 장치가 부재해 상황을 반전시키는데 실패했다. 

◇ 독일, 지역구와 비례의석 동일하게 적용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첫 도전이 위성정당이라는 암초를 만나 좌초한 것은, 지난해 국회를 통과한 선거법 개정안에 이를 막을 제도적 장치가 전혀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장 단순한 방법은 비례의석 비중을 크게 확대하고 연동률 100%를 적용하는 것이다. 독일 연방의회는 지역구와 비례의석이 각각 299석으로 동일하며, 연동률도 100%를 적용하고 있다. 지역구와 비례의석이 253:47인 데다, 연동률이 50%인 한국식 선거제도와는 큰 차이가 있다. 

21대 총선이 독일처럼 지역구와 비례의석이 1:1이고 연동률이 100%인 조건에서 치러졌다면, 더불어민주당은 더불어시민당을 창당했을까? 독일식 셈법을 대략 적용해보자면, 21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정당득표율 33.35%에 따라 확보할 의석 수는 총 100석이다. 더불어민주당의 지역구 당선률(64.4%)를 적용하면, 더불어민주당이 확보할 지역구 의석은 총 150석 중 97석. 100석을 채우기 위해 모자란 3석은 비례의석으로 보충된다. 이런 조건이라면 더불어민주당이 굳이 비판을 감수하며 더불어시민당을 창당할 동기가 부족하다. 

하지만 지역구가 비례의석의 5배에 달하는 현재의 구조에서 거대정당은 거의 항상 지역구 의석수가 정당득표율에 따른 의석수를 초과하게 되며, 위성정당을 통해 손실을 메울 유혹을 뿌리치기 어렵다. 

이 밖에도 거대정당의 위성정당 창당을 막을 제도적 수단은 더 있다. 예를 들어 비례의석을 전국 단위가 아닌 권역별로 배분하는 방식을 적용할 경우, 위성정당을 창당할 동기를 일부 약화시킬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 모두 상대적으로 약세인 지역에서 비례의석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근소한 차이로 탈락한 지역구 후보에게 비례의석을 배당하는 석패율제도 위성정당을 막을 방안으로 논의됐지만, 결국 최종 개정안에는 빠지게 됐다. 

◇ 연동형 실험 뒤 선거법 개정, 해외 사례는?

사실상 한국식 연동형 비례대표제 실험이 실패로 귀결되면서 조만간 선거법이 다시 개정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 위성정당에 대한 대책 없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했던 국가들은 대부분 비례대표 비중을 높이는 방향으로 선거제도를 변경했다. 

대표적인 사례는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적용된 2005년 알바니아 총선이다. 알바니아 의회는 지역구 100석, 비례 40석으로 구성되며 비례의석은 전국단위 정당득표율에 따라 배분된다. 이러한 선거제도 하에서 치러진 2005년 총선에서 거대정당인 민주당과 사회당은 각각 4개, 6개씩 총 10개의 위성정당을 창당했다. 결국 거대양당이 비례의석 40석 중 36석을 차지하는 결과를 낳았고, 결국 알바니아는 2008년 선거제 개편을 통해 전체 140개 의석을 광역 단위별 비례대표로 채우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했다. 

베네수엘라 또한 2005년 선거에서 집권당인 ‘제5공화국운동’이 위성정당을 창당하자 야권이 선거를 보이콧하는 등 연동형으로 인한 홍역을 치렀다. 다만, 베네수엘라의 선택은 알바니아와 달랐다. 당시 선거에서 의회를 장악한 우고 차베스 정권은 연동형 선거제도를 폐지하고 20대 총선까지 한국에서 쓰였던 병립형 선거제도를 도입했다. 

현행 선거제도 변경의 키는 이번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더불어민주당이 쥐고 있다. 실제 이해찬 대표는 지난달 13일 비례연합정당 참여를 선언하며 “21대 국회에서는 선거법의 미비한 점을 보완해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박주민 최고위원 또한 17일 BBS라디오 ‘이상휘의 아침저널’에 출연해 “선거에 들어가기 전 몇 차례 선거법 개정 필요성에 대해 피력한 바 있다. 여건이 조성되면 당연히 그렇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민주당이 생각하는 선거법 개정의 청사진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정국의 주도권을 쥐게 된 민주당이 알바니아와 베네수엘라 중 어떤 길을 택할지 관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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