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글로벌 리더십을 두고 미국과 중국의 경쟁이 격화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17년 미국 플로리다주 마라라고 비치에서 만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모습. 사진=ABC뉴스 방송화면 갈무리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글로벌 리더십을 두고 미국과 중국의 경쟁이 격화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17년 미국 플로리다주 마라라고 비치에서 만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모습. 사진=ABC뉴스 방송화면 갈무리

코로나19 사태가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견고했던 미국 중심의 패권 구도에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동맹국과의 협력과 지원에 소극적인 미국의 리더십이 흔들리는 가운데, 중국이 틈새를 노리고 외교적 영향력을 확장하는 모양새다.

◇ 중국, 의료지원으로 외교 강화

런던정경대(LSE) 케유 진 교수는 지난달 31일(현지시간) CNBC와의 인터뷰에서 “코로나19 사태는 중국이 국제적 이미지를 재구축하고 신뢰를 쌓을 수 있는 세기의 기회다. 중국은 이런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진 교수는 이어 “중국은 이전의 여러 경제위기에서도 유럽 채권 시장 지원 등을 통해 (외교적) 관계를 강화해왔다”며 “중국은 필수적인 의료장비 지원 등을 통해 도움이 필요한 국가, 특히 개발도상국을 도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중국은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고립주의적 행보를 보이고 있는 미국의 빈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해외 원조 등을 통해 외교적 영향력을 확장해왔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아프리카로, 2017년 기준 중국의 대아프리카 직접투자 규모(360억 달러)는 미국(3억6000만 달러)의 100배에 달한다.

이처럼 미국과 대등한 국제사회의 리더로 부상하고자 노력해온 중국에게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진 교수의 말처럼 ‘세기의 기회’일 수 있다. 코로나19가 처음 발생한 데다 관련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는다며 비난을 받아온 중국은 안정 단계에 진입하자 의료인력 및 장비 등을 다른 나라에 지원하며 이미지 쇄신을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이란·이라크·이탈리아 등의 국가에 의료진과 장비를 지원하는 한편, 최근 가파른 확산세를 보이는 스페인에도 물자 지원을 약속했다. 캄보디아·파키스탄 등 의료인프라가 부족한 인근 국가에 진단키트를 기증하는 한편, 상대적으로 확산세가 느린 한국과 일본에도 마스크 등의 물품을 지원했다.

◇ 美, 글로벌 리더십 정당성 ‘흔들’

중국이 외교적 공세를 펼치고 있는 반면, 미국은 국제적 협력이 필요한 코로나19 사태를 맞아서 패권 국가다운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19의 급격한 국내 확산에 대처하느라 해외 의료지원에 소홀한 데다, 국제적인 협의 없이 독단적으로 입국 금지 조치를 단행해 동맹국의 비난까지 듣고 있는 상황. 실제 유럽연합(EU)은 지난 13일 성명을 통해 “EU는 여행 금지를 부과한 미국의 결정이 일방적으로, 협의 없이 이뤄졌다”며 트럼프 정부의 결정을 비판한 바 있다.

오히려 미국은 뒤늦은 코로나19 확산과 부족한 준비로 인해 다른 국가들의 지원을 요청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 중국은 지난달 29일 N95 의료용 마스크 13만개, 일반 마스크 180만개와 의료용 장갑 1000만개, 체온계 및 보호복 등 총 80톤 규모의 의료용품을 미국에 지원했다. 지난달 2월 미 국무부가 18톤 규모의 의료용품을 중국에 지원하겠다고 밝혔을 당시와는 상황이 반전된 셈이다. 

미국 내에서도 트럼프 정부의 고립주의적 외교 노선으로 인해 흔들렸던 국제적 위상이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중국에 역전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오바마 정부에서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를 역임한 커트 캠벨과 중국 전문가인 러시 도시 예일대 교수는 지난 18일 외교 전문매체 ‘포린 어페어스’에 공동 기고한 글에서 “지난 70년간 유지된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은 오직 부와 권력에서만 나온 것은 아니다”라며  “미국 리더십의 정당성은 ▲미국의 국내 정치 ▲국제사회에 대한 공공재 지원 ▲국제적 위기 대응을 조율하는 능력과 의지에서 나온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코로나19 사태는 미국 패권을 정당화하는 세 가지 요소를 모두 검증하는 사건이지만 미국은 시험에 통과하지 못했다”며 “중국은 미국의 실수로 생겨난 공백을 메우고 코로나19 대응에서 글로벌 리더로 부상하기 위해 신속하고 능숙하게 움직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 미영, 중국에 코로나사태 책임론 제기

다만, 중국의 노력이 실질적으로 G2 패권 구도를 뒤바꿀 수 있을지는 아직 확신하기 어렵다. 코로나19의 최초 발생지로서 전 세계를 위협에 빠뜨린 데다 관련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 영국 매체 데일리메일은 지난달 29일 고위공직자 발언을 인용해 영국 정부는 중국 정부가 코로나19 관련 허위 정보를 유포했다고 보고 있으며, 사태 종식 후 외교관계를 전면 재고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중국 정부가 여전히 국제사회에서 투명성과 신뢰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어, 적극적인 의료지원의 의도에 대한 의구심이 높은 것도 문제다. 게다가 지원된 의료장비 일부에서 불량품이 발견되면서, 의료지원이 오히려 역효과를 내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 체코·스페인 등 일부 국가에서는 수입한 중국산 진단키트의 오진율이 너무 높아 제조사에 반환을 요청했다. 

결국, 코로나19로 인해 글로벌 패권 구도가 어떻게 변화할 지는 사태 종식 이후까지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빈틈을 노려 국제적 위상을 제고하려는 중국의 시도가 성공할지, 아니면 여전한 미국의 패권을 재확인시켜주는 데 그칠지 귀추가 주목된다. 

저작권자 © 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