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푸레나무 열매.<사진=국립산림과학원 제공>

산림자원학과에 갓 입학했던 2001년 대학 새내기 시절의 일이다. 선배들의 지도 아래 식목일 행사를 맞이하여 수원역 앞에서 시민들에게 나무 나누어주기 행사에 참여하게 되었다. 나누어주는 나무들에는 밤나무, 소나무와 같이 잘 알려진 나무도 있었지만 생소한 나무들도 있었다. 그때 내가 담당한 나무가 물푸레나무였다. 인생에서 처음 ‘내 책임’이 된 나무, 그렇게 처음 만난 물푸레나무의 첫인상은 나무젓가락처럼 가느다랗고 곧은 나무 묘목에 3-5장의 작은 잎이 서로 마주보며 돋아나고 있는 여린 모습이었다. 첫 만남은 작은 묘목이었지만 다 자라면 10m까지 자라는 큰 나무다. 물푸레나무는 나뭇가지를 물에 담가 놓으면 물이 하늘빛처럼 푸르게 변한다고 해서 물을 푸르게 하는 나무, 물푸레나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세월이 지나 나무를 공부하고 연구하면서 물푸레나무가 이름만 예쁜 것이 아니라 용도도 다양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선 물푸레나무는  잘 휘는 목재이면서도 힘이 좋고 단단하여 고목이 잘 남아 있지 않을 정도로 사랑받은 좋은 목재다. 최고의 원목인 애쉬(Ash)가 이 물푸레나무로, 현재는 야구방망이와 같은 운동기구 및 고급 가구재 등으로 널리 사용된다. 그뿐만 아니라 나무껍질은 秦皮(진피)라 하여 장염, 기관지염 등을 치료하는 약재로 쓴다고 한다. 산림청의 조림 권장 수종의 하나이기도 하다.

물푸레나무 꽃(수꽃)<사진=국립산림과학원 제공>

같은 물푸레나무속의 사촌격인 나무로는 들메나무가 있다. 오래전 들메나무의 껍질은 질기기로 유명하여 신발이 벗겨지지 않도록 끈으로 발에 동여매는 데 쓰였다고 한다. 들메나무는 강원도를 비롯한 백두대간 지역에서 주로 만날 수 있다. 하늘로 높게 뻗은 나무는 물푸레나무와 비슷하게 여러 장의 잎이 겹잎으로 마주달리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들메나무는 나무가 곧게 자라 조림수종으로도 활용되고 목재로도 물푸레나무 못지 않게 우수한 재료다. 또 향이 좋아 나물로도 가치가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들메나무는 이른 봄 새순을 나물로 먹을 수 있는데 흔히 들미순이라고 부른다. 지리산 지역에서는 들미순을 팔아 자녀들 학비를 마련하고 대신 두릅나무 순을 사먹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나물 중의 나물로 여긴다고 한다. 이처럼 들메나무는 다방면으로 가치도 있는 매우 소중한 우리나무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들메나무 새순.<사진=국립산림과학원 제공>

그리고 이 물푸레나무와 들메나무의 이름을 반반 사이좋게 나눠받은 물들메나무는 지리산물푸레나무라고도 부르는 우리 고유의 수종이다. 지리산의 성삼재에서 노고단을 오르는 길에 보면 밝은 회색의 곧게 자라는 멋진 물들메나무를 만날 수 있다. 과거에는 들메나무의 한 종류 또는 들메나무와 물푸레나무의 잡종이라고 생각했으나 최근 DNA를 이용한 분석을 통해 전혀 새로운 종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그래서 학명 또한 Fraxinus chiisanensis(프락시누스 지이산엔시스)로 지리산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이 나무는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에만 자라는 특산종으로 밝혀져 그 가치가 높다. 

이 세 수종을 구분할 때 가장 쉽게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겨울눈이다. 물푸레나무는 뿔이 달린 바이킹투구 모양의 회색빛이 도는 긴 겨울눈을 가지고 있고, 들메나무는 겨울눈이 검은 초콜릿색의 겨울눈을 가지는 것이 특징이다. 반면 물들메나무는 갈색의 긴 겨울눈을 가지고 있으며 자세히 들여다보면 겨울눈의 위쪽에 사슴뿔처럼 깃털모양의 어린잎이 드러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물푸레나무3형제 겨울눈 (좌)물푸레나무, (중간)들메나무, (우)물들메나무.<사진=국립산림과학원 제공>

이처럼 물푸레나무 3형제는 벚나무처럼 화려한 꽃도, 밤나무처럼 맛있는 열매도 맺지 않아 우리들에게 친숙한 나무는 아니지만 목재와 약재, 나물 등 다양한 자원으로서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 푸른 산을 닮은 물푸레나무는 늘 우리 곁에서 함께 해왔던, 우리를 닮은 나무다. 여름 숲이 더 푸르게 느껴지는 건 아마 이 물푸레나무 3형제들이 있어서가 아닐까. 우리 물푸레나무 3형제를 숲 속에서 만난다면 반가운 모습으로 맞이해 보기를 바라본다.

[필자소개] 

임효인 박사·국립산림과학원 산림생명정보연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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