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 네거리에서 열린 갑질금지법 시행 맞이 캠페인에 설치된 판넬 앞을 시민들이 지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 16일 직장 내 괴롭힘을 근절하기 위한 개정 근로기준법이 시행됐다. 기존에도 근로기준법, 민법, 형법, 남녀고용평등법 등을 통해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규율이 이뤄져 왔다. 하지만 개정법에는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조항을 신설해 명확한 정의 및 사용자의 예방 노력 및 사후 조치 의무, 관련 취업규칙 작성 의무 등을 규정했다.

◇ 직장 내 괴롭힘, 기준은?

개정법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은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여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로 정의된다. 문제는 직장 내 괴롭힘의 양태가 다양해 규정만으로는 판단이 쉽지 않다는 것.

실제 고용노동부가 지난 2월 배포한 ‘직장 내 괴롭힘 판단 및 예방·대응 매뉴얼’에는 승진·보상의 차별, 신체·언어적 폭력 외에도 과도한 감시, 회식 참여 강요, 업무용 비품 지급 거부 등도 직장 내 괴롭힘에 포함될 수 있다고 명시돼있다. 다만 고용노동부는 지난 15일 발표한 설명자료를 통해 “괴롭힘에 해당하는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는 행위는 △그 행위가 사회 통념에 비추어 볼 때 업무상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거나, △업무상 필요성은 인정되더라도 그 행위의 양태가 사회 통념에 비추어 볼 때 상당하지 않다고 인정되는 행위”라고 설명했다.

결국 ‘업무상 필요성’과 ‘사회 통념’이라는 기준에 따라 직장 내 괴롭힘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것. 따라서 사례 별로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

◇ 고용노동부가 꼽은 두 유형의 사례 

# 의류회사에서 디자인팀장을 맡고 있는 A씨는 신상품 발표회를 앞두고 소속 팀원 B씨에게 디자인 시안을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B씨가 수차례 시안을 보고했지만 A씨는 신상품 컨셉에 어울리지 않는다며 보완을 요구했다. B씨는 반복된 보완요구와 늘어난 업무량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 시중 은행 지점장 C씨는 실적 목표 달성을 위해 매일 행원들의 성과를 점검해왔다. 하지만 16일 개정 근로기준법 시행 이후에는 성과점검이 자칫 직장 내 괴롭힘으로 여겨질 수 있다는 생각에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위 두 사례에 대해 모두 직장 내 괴롭힘으로 볼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전자의 경우 A씨와 B씨 사이에 직급 상 위계가 존재하지만, 성과향상을 위해 부서원의 업무를 독려하고 보완을 요구하는 것은 업무상 필요성이 인정된다. 또한, 디자인 시안을 수정하라고 지시하는 과정에서 사회통념을 벗어날 정도의 부적절한 행위를 한 것이 아닌 이상, 단순히 B씨가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이를 괴롭힘의 범주에 포함할 수 없다는 것.

후자에 대해서도 고용노동부는 “성과점검이나 업무 독려도 사회적 통념에 따라 행해진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괴롭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근무시간 외 업무지시나 성과점검, 타부서 업무지원 지시, 업무 독려 등이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지시 과정에서 사회 통념을 벗어난 위협, 폭언, 폭력 등이 발생해야 한다. 일단 업무상 적정범위에 포함되는 행위이기 때문에 그 과정을 살펴야 한다는 것.

◇ 사적 용무 지시, 사생활 질문, 직장 내 괴롭힘 대상

다만, 업무상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는 사적인 지시는 직장 내 괴롭힘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아 사용자 및 상급자들은 주의할 필요가 있다. 

# 한 중소기업 대표 D씨는 직원들에게 본래 업무뿐만 아니라 개인 운전기사 및 수행비서의 역할까지 수행하도록 했다. 또한, 개인 농장에서 키우는 옥수수를 수확하고 판매하는 과정에서도 직원들을 동원해 원성을 샀다.

# E씨는 해외에서 학교를 다닌 신입사원 F씨를 따로 불러, 매일 회의실에서 자신에게 영어를 가르쳐 줄 것을 요구했다. E씨는 F씨에가 영어과외에 대한 사실을 다른 직원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하며, 400쪽 분량의 영어교재를 스캔하도록 지시했다.

# G씨는 저녁이나 주말 술을 마신 뒤 부서 단체채팅방에 개인 사정을 하소연하는 나쁜 버릇이 있다. 부서원들은 근무시간이 지나 올라오는 G씨의 하소연을 모른 척하고 싶지만, 대답이 없으면 화를 내는 G씨의 주사가 두려워 밤늦게까지 단체채팅방을 확인해야 했다.

회사 대표의 사적인 용무에 직원들을 동원하는 것은 업무상 필요성을 인정 받을 수 없는 행위다. 게다가 본래 업무와 무관한 일에 직원들을 동원한 것은 근무환경을 악화시킨 것으로 판단될 수 있다. 위 사례들과 같은 경우 업무와 전혀 상관없는 일을 지시한 것이기 떄문에 직장 내 괴롭힘에 포함된다. 또한, 사적용무 지시뿐만 아니라 사생활에 대한 질문 등도 업무상 적정범위 외의 행위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직장 내 괴롭힘에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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