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 김제동씨. <사진=뉴시스>

김제동씨의 ‘고액강연료’ 논란이 화제가 되고 있다. 김씨는 오는 15일 대전 대덕구 한남대학교 성지관에서 지역 중·고등학생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사람이 사람에게’라는 주제로 약 두 시간동안 특별 강연을 할 계획이었다. 대덕구청이 김씨를 섭외하면서 책정한 강연료는 1550만원. 

구체적인 강연료가 알려지자 대덕구의회 자유한국당 소속 의원들은 지난 5일 “재정자립도가 16%로 열악한 대덕구가 김제동에게 높은 강연료를 주는 것은 비상식적”이라며 “김제동이 시간당 775만원을 받을 만큼 대덕구 청소년들에게 귀감이 되는 인물인가”라고 비판했다.

그렇다면 김씨가 받을 예정이었던 1550만원은 과연 일반적인 강연료에 비해 과도하게 높은 것일까? <이코리아>는 김제동 고액강연료 논란의 진위를 알아봤다.

◇ 연예인 강연료, 일반 강사와 단순 비교 어려워…

강연 에이전시 ‘오간지프로덕션’의 오상익 대표는 7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김제동씨의 경우는 강연업계 내에서도 이례적으로 금액이 높은 케이스”라고 밝혔다. 오 대표에 따르면 연예인이 아닌 일반 강연자 중 소위 ‘탑급’에 속하는 경우 보통 300~500만원 선에서 강연료가 결정된다. 김씨의 강연료는 탑급 강연자의 약 세 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조선일보, MBN 등 국내 언론들의 보도에 따르면 김미경, 혜민 등 대덕구청이 이전에 초청한 ‘스타 강사’의 경우 김씨의 절반 수준인 약 700만원 정도의 강연료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오 대표는 “강연업계에서는 이미 김씨의 강연료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며 “업계 사정을 아는 사람은 대부분 김씨가 높은 강연료를 받는 것을 이해한다”고 설명했다. 오 대표는 “연예인이 강연자로 나설 경우 강연 내용에 관심이 있어 찾아오는 분들도 있지만, 연예인을 직접 보고 싶어서 오시는 분들도 많다”며 대덕구가 책정한 1550만원에 대해 “강연료가 아니라 연예인 행사비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다른 사례지만 유명 가수의 경우 대학 축제 등의 무대에서 두세 곡을 부르고 수천만원의 행사비를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름이 알려진 연예인들이 강연자로 나서는 경우, 단순 강연이 아닌 연예인 초청 행사에 가까워 그만큼 비용도 증가한다는 것. 오 대표는 “김제동, 설민석 등 연예인이거나 방송 출연이 잦은 유명 강연자의 경우 일반 강연자보다 훨씬 높은 강연료가 책정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강연료는 대체 어떻게 책정되는 것일까? 오 대표는 “강연 에이전시에서 강연자들의 급을 나누거나 기준을 세워 가격을 책정하는 경우는 없다”며 강연료는 오로지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결정된다고 설명했다. 강연을 요청하는 단체나 기관에서 책정된 예산, 또는 강연자들이 자체적으로 책정한 금액이 기준이 되지만, 기본적으로는 수요가 많은 강연자의 강연료는 오를 수 밖에 없다는 것. 물론 강연자의 인기가 떨어지거나 물의를 빚은 경우, 수요가 줄면서 자연스럽게 강연료도 낮아지게 된다. 

다만 오 대표는 “강연자가 잘 알고 있는 단체나 지인이 강연을 요청한 경우, 또는 봉사·자선 등 강연의 취지가 좋은 경우 강연자가 ‘재능기부’의 차원에서 강연료를 낮추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 오바마, 40만 달러 월가 강연에 ‘뭇매’

해외는 어떨까? 강연 시장이 활성화된 미국의 경우 유명 강연자들의 강연료는 국내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싸다. 뉴욕포스트 등 미국 현지언론에 따르면,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2017년 9월 뉴욕의 피에르 호텔에서 열린 미디어 기업 'A&E 네트웍스'의 홍보 행사에 참석하고 그 대가로 40만 달러, 현재 환율로 약 4억7200만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또한 지난 2014년 네바다대학재단 기금모금 행사에서 22만5000달러(2억6600만원)를 받고 강연을 하기로 한 계약서가 지역 언론에 의해 공개되기도 했다.

대통령, 또는 대선 후보급 정치인이 아니더라도 유명 강연자들의 강연료는 ‘억’ 소리가 나는 수준이다. 피터 드러커, 톰 피터스와 함께 경영학 3대 ‘구루’로 꼽히는 마이클 포터 교수의 경우 이미 10년 전 강연료가 회당 15만 달러에 달했다. 톰 피터스 또한 당시 시간당 10만 달러 정도의 강연료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수성가로 무일푼에서 백만장자가 된 브라이언 트레이시는 1회 강연료가 8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해외에서는 이같은 고액 강연료에 대한 비난 여론이 없을까? 물론 있다. 다만 강연자가 공적인 책무를 맡고 있거나 사회적 발언을 해온 경우다. 클린턴 전 장관의 경우 지난 2016년 당내 경선 과정에서 고액 강연료가 문제가 돼 곤욕을 치른 바 있다. 당시 CNN 등은 클린턴 부부의 2001년~2016년 강연료로 벌어들인 수익을 추산해 회당 강연료가 약 21만795달러(약 2억4000만원)라고 보도한 바 있다. 이는 경쟁 후보였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버몬트)이 2014년 신고한 연 소득 20만 달러(약 2억1000만원)를 웃도는 금액이다. 특히 클린턴 전 장관은 월가 개혁을 공약으로 내세워놓고 강연 대부분을 대형 금융사에서 한 것으로 알려져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재임 시절 월가를 비판하고 복지개혁을 추진했던 오바마 전 대통령 또한 퇴임 후 월가 금융사에서 고액의 강연료를 받은 사실로 비난을 받았다. 결국 오바마 전 대통령은 지난 2017년 5월 자신의 정치적 고향인 시카고의 여름 일자리프로그램에 200만 달러를 기부하기로 하면서 논란을 잠재웠다.

◇ 김제동, “받는 만큼 돌려드린다”

김씨의 경우 유명인이지만 전직 대통령이나 정치인처럼 공적 책임을 졌던 '공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점에서 고액강연료를 문제삼기는 어렵다.오 대표의 설명처럼 강연 시장 내에서 높은 인기를 얻고 있는 김씨가 수요공급의 법칙에 따라 고액의 강연료를 받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이번 논란에서 책임을 물어야 한다면, '없는 살림'에도 불구하고 고액강연료를 지급하기로 한 대덕구청의 판단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다만 대덕구는 대덕구민 아카데미 참여 구민 대상 설문조사에서 김씨가 초청하고 싶은 강사 1위로 뽑혔다며 "작년 8월 정부 공모 사업으로 선정된 혁신교육지구사업 예산(약 1억 5000만원)의 일부를 쓰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김씨가 고액강연료 논란에 휩싸인 배경에는 계층갈등과 청년실업 등 사회문제에 망설임 없이 목소리를 높여왔던 그의 과거 행보가 놓여 있다. 월가 개혁을 주장한 오바마가 월가에서 40만 달러 짜리 강연을 했다가 비난을 받았던 것처럼, 김씨 또한 학생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공공행사에 고액 강연료를 고집해야만 했나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가질 수 있다. 좋은 취지의 강연인데 ‘에누리’없는 강연료를 받는 모습이 그의 평소 언행과 모순돼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김씨는 이번 논란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그는 아직 이번 논란에 대해 공식 입장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과거 비슷한 논란에 대해 반박한 바 있다. 지난해 KBS노동조합이 김씨가 ‘오늘밤 김제동’의 회당 출연료로 받는 350만원이 지나치게 높다고 지적하자, 그는 “나는 받는 만큼 베풀기 때문에 당당하다. 세금 제대로 내는 것은 기본이고 재해 기부금, 미얀마 학교 짓기 등 다양한 활동에 기부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실제 정확한 집계는 어렵지만 김씨의 누적 기부액은 약 4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 강연료, 시장 원리 따라 결정돼

오히려 김제동 고액강연료 논란으로 검증해봐야 할 진짜 문제는 강연 시장에 과연 거품이 끼어있는가다. 강연은 듣는 이에 따라 전혀 다르게 평가될 수 있으며, 그 가치 또한 관점에 따라 다를 수 밖에 없다. 질문해야 할 것은 "김씨가 너무 많은 돈을 받는 것이 아닌가"라기보다는 "강연 시장의 가격은 시장원리에 따라 결정되고 있는가"이다. 김씨의 강연료가 시장의 왜곡에 의해 결정된 것이라면 강연 시장 자체를 되돌아봐야 한다. 

오 대표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몸은 하나인데 찾는 곳이 많으면 값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며 “찾는 곳이 줄어들면 강연자가 스스로 몸값을 낮춘다”고 설명했다. 잠깐의 거품은 있을 수 있지만 결국 강연자의 몸값은 시장의 냉정한 평가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 김씨의 강연료 1550만원은 강연 시장 내부의 경쟁을 통해 결정된 금액이다. 김씨 개인에 대한 호불호는 갈릴 수 있겠지만, 탈세 논란도 없이 기부를 실천해온 그에게 시장이 내린 평가를 문제 삼아 비판하기는 어려워보인다. 

한편 김씨는 논란이 불거지자 강연을 취소하기로 결정했다. 대덕구는 6일 보도자료를 통해 "김제동씨 측과 행사 진행과 관련해 논의한 결과 현재 상황에서 당초 취지대로 원활하게 진행하기 어렵다는데 공감하고 행사를 취소키로 했다"고 밝혔다. 다만 김씨는 행사 여부와는 상관없이 지역 청소년을 위한 후원을 이어나갈 생각이다. 대덕구에 따르면 김씨는 "항상 청소년을 지원하는 데 노력해 왔는데 예기치 못한 주변 상황으로 행사를 취소하게 돼 대덕구 청소년에게 미안하다"며 "행사 취소와는 별개로 대덕구 청소년을 위한 후원은 대덕구와 논의해 진행해 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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