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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新역사기행] 제주 돌담의 매커니즘
  • 남국성(여행가)
  • 승인 2019.06.07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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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돌담

제주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는 없는 게 바로 돌이다.

제주도는 온통 검은색 돌의 세상이다. 오래 전 화산이 폭발해 흘러넘친 용암이 식으면서 만들어진 현무암이다. 돌은 거무튀튀한 색깔에다 바람 빠진 구멍까지 숭숭 뚫려있어 보기에도 그렇고 쓸모도 없을 것 같다. 거기다가 매끈한 곳이 단 한 곳도 없이 거칠고 제멋대로 생겨 정이 가질 않는다. 섬 전체가 그러다 보니 빗물은 땅속으로 스며들어 식수조차 구하기 힘들고 토양도 거칠어 농작물 재배도 어렵다.

안무어사로 제주도에 왔던 김상헌의 『남사록』 〈풍물편〉의 기록에는 ‘제주의 백성은 곤궁한 자가 많다. 이 땅에는 바위와 돌이 많고 흙이 덮인 것이 몇 치에 불과하다. 흙의 성질은 부박(浮薄)하고 건조하며 밭을 개간하려면 반드시 소나 말을 달리게 해서 밟아줘야 한다.’고 적혀있다.

조선 세종 때는 제주도민에 대해 세금을 면제해야 한다는 기록도 나온다. 그 근거가 삼재(三災)라 하여 ‘산 높고 골 깊으니 물의 재앙이요[山高深谷水災], 돌 많고 땅이 부박하니 가뭄의 재앙이요[石多浮土旱災], 사방이 큰 바다 되니 바람의 재앙[四面大海風災]’이 그것이라는 거다.

밭과 밭 사이를 나누어 주는 밭담

그러나 ‘굽은 나무가 선산 지키’듯, 어디로 보나 애물단지였던 제주의 ‘돌’은 꿋꿋이 제주를 지키며 제주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벼농사를 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제주는 밭농사 위주의 작물을 재배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한 치 땅을 파도 온통 돌투성이’인 데다가 사방이 뻥 트인 바다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은 밭농사마저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제주인들은 사방에 널려있는 돌을 골라 밭을 일구고, 골라낸 돌로 담을 쌓아 바람을 막아낸다. 그뿐만이 아니다. 산소 주변에 돌을 쌓은 ‘산담’으로 방목하는 가축으로부터 봉분을 보호한다. 밭 한가운데나 오름 중턱을 보면 여기저기 볼 수 있다. 산담은 그러니까 죽은 이를 지키는 담장이다. 그 담장 좌우측 귀퉁이는 트여있다. 죽은 사람의 영혼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한 신문(神門)이 있다. 십월(十月)을 시월이라 부르듯 신문을 시문이라고 부른다. 밭과 밭 사이를 돌로 경계를 지어 분쟁을 막거나 방목하는 가축으로부터의 피해를 막는 ‘잣담’을 구축하기도 한다.

방목하는 가축으로부터 산소를 보호해 주는 산담

바닷가에서는 돌로 사방을 막아 해녀들이 쉬는 ‘불턱’도 만들고 밀물과 썰물의 차이를 이용해 고기를 가둬잡는 ‘원담’을 만들기도 한다. 이렇게 돌은 제주인들에게 요긴한 생활도구로 자리잡게 되었다.

비행기가 착륙하기 전 아래를 내려다 보면 밭과 밭을 잇는 밭담은 다시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고 그것은 마침내 제주를 하나로 만들어주는 거대한 고리가 되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이웃과의 경계를 표시하기 위한 돌담이 실은 이웃과의 관계를 맺어주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까 제주의 돌은 제주인을 하나의 공동체로 만들어 내는 기막힌 요술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하늘에서 내려다볼 때 만들어지는 또 하나의 이벤트. 하양과 노랑과 초록의 꽃과 채소가 만들어내는 빛깔의 향연이 그것이다. 그 사이에 돌담이 있다.

몬드리안의 〈빨강·파랑·노랑의 구성>은 그저 직선을 수직과 수평의 대비를 통해 추상화하고 있다. 그것에 비해 제주의 밭담에는 직선이 없다. 가우디는 작품의 모티브를 자연에서 얻었다고 했다. “자연은 신이 만들어 준 교과서이다. 교과서에는 직선이 없다.” 그의 유명한 말이다. 그의 말에 공감한다면 제주의 돌담은 신과 인간이 만들어낸 하모니의 극치라는 말에도 공감할 것이다. 밭과 밭 사이를 경계짓는 검정색의 구부러진 돌담. 시뻘겋게 솟아올랐다 식으면서 시커멓게 변해버린 돌덩이 현무암을 빼놓고 제주의 아름다움을 얘기하기 곤란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설퍼 보이지만 과학적 원리가 숨어있는 제주의 돌담

어설퍼 보이는 돌담을 가까이 가 살펴보면 또 다른 매커니즘을 발견하게 된다.

큰 돌은 아래에 놓고 작은 돌은 차례로 위로 쌓는데 특별히 가공하지 않은 돌이라 틈새가 벌어진다. 그러나 모가 난 돌끼리 틈새를 맞추다 보면 그 녀석들은 어느덧 제 자리를 찾아 견고한 담을 만들어낸다. 큰 놈은 큰 놈대로 작은 놈은 작은 놈대로 제 자리가 있다. 그러니까 모양이나 크기가 제멋대로이어서 쓸모가 없어 보이지만 이것들이 모이면 비대칭적 균형감이 외려 안정감과 편안함을 제공한다. 거기다가 돌과 돌 사이에는 적당한 만큼의 틈이 나 있다.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의 기세를 누그러뜨리기 위한 조치다. 그 틈으로 빠져나가는 바람은 갈기갈기 찢겨 한결 부드럽게 변한다. 그러기에 돌담이 만들어내는 그늘 아래서 두 다리를 펴고 잠시 쉬어도 결코 불안하지 않다. 서로 같지 않은 것들이 모여서 역설적이게도 전체의 균형잡힌 가지런함을 이루어내는 미학. 이게 제주 돌담의 매커니즘이다.

둥글다는 것. 거기에는 얼핏 원만해 보이는 포장 속에 견고한 이기주의와 안일주의가 숨어있는지도 모른다. 똑같이 한 목소리를 내는 것은 단합된 힘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위태로움의 극단에 놓이게 된다. 그러기에 거칠고 제멋대로인 돌과 그것이 만들어내고 있는 제주의 돌담이 내는 경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는 것은 어떨까.

남국성(여행가)  e-kore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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