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1일 '레이와(令和)'가 새 연호로 결정됐다고 발표하고 있다. <사진=NHK 방송화면 갈무리>

오는 5월 1일 새 일왕으로 즉위하는 나루히토 일왕 시대의 연호가 레이와(令和)로 정해졌다. “희망의 꽃을 피운다”는 뜻으로 알려진 새 연호가 결정되면서, 나루히토 시대에 경색된 한일관계가 회복될 수 있을지에 대한 기대도 높아지고 있다.

일본 정부 대변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1일 나루히토 새 일왕 즉위를 한 달 앞두고 열린 임시 각의(국무회의)에서 기존 연호인 헤이세이(平成)를 이을 새 연호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레이와는 일본 역사상 최초로 중국 고전이 아닌 일본 시가집 ‘만요슈’의 매화꽃 노래에서 인용한 연호다. 아베 신조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새 연호에는 사람들이 아름답게 마음을 맞대고 문화가 태어나 자란다는 뜻이 담겨있다”며 “추위 끝에 봄을 알리며 멋지게 피어나는 매화꽃처럼 한사람 한사람의 일본인이 내일에 대한 희망과 함께 각자의 꽃을 크게 피워낼 수 있는 일본이 되길 바란다는 마음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당초 일본에서는 새 연호에 아베 총리의 성씨 (安倍) 첫글자인 ‘安’이 포함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최근 일본공영방송 NHK 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安’이 포함된 연호가 상위 1~7위를 싹슬이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우경화된 아베 내각이 장기집권 야망이 여론조사에 투영된 것 아니냐는 음모론이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날 회의에서는 아베 총리의 이름과 상관없는 새 연호가 결정됐다. 아베 총리는 지난 2월 28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노동통계 부정사건’에 대해 해명하던 중, 이 문제가 국가위기로 확대될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 “국가 위기 여부를 물었는데 내가 곧 국가다”라고 말해 여론의 비난을 받은 바 있다. 이날 레이와를 새 연호로 결정한 것도, 연이은 실언으로 지탄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총리의 성씨가 새 연호에 포함될 경우 발생할 논란을 의식한 것으로 분석된다.

한편 새 일왕의 즉위가 한 달 뒤로 다가오면서 경색된 한일관계가 개선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현 아키히토 일왕의 장남인 나루히토 왕세자는 차남인 후미히토 친왕과 달리 상대적인 친한파로 알려져 있어, 역사에 대한 반성과 동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개선을 염원한 선대의 뜻를 이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나루히토 왕세자는 지난 2015년 55세 생일을 앞두고 가진 기자회견에서 “앞선 전쟁으로 일본을 포함한 세계 각국에서 많은 이들이 소중한 목숨을 잃었고 많은 사람이 고통과 큰 슬픔을 겪은 것을 매우 마음 아프게 생각한다”며 “전쟁의 기억이 흐려지려고 하는 오늘날, 겸허하게 과거를 돌아보고 전쟁을 체험한 세대가 전쟁을 모르는 세대에게 비참한 경험이나 일본이 밟아온 역사를 올바르게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는 여러 차례 일제 침략 피해를 입은 국가들에게 사과의 뜻을 밝혀 온 아키히토 일왕과 나루히토 왕세자가 유사한 역사인식을 공유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퇴위를 앞둔 아키히토 일왕은 중국과 동남아 국가 등을 방문해 사죄의 뜻을 밝힌 바 있으며, 1998년에도 방일 중인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나 침략 문제를 사과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아베 내각의 계속된 우경화 드라이브에 나루히토 왕세자의 일왕 즉위가 제동을 걸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만약 나루히토 왕세자가 즉위 후 한국을 방문할 수 있다면, 위안부 합의 및 역사왜곡 교과서 문제 등으로 경색된 한일관계도 한층 개선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실제 나루히토 왕세자는 지난해 3월 브라질에서 열린 세계 물 포럼에서 이낙연 국무총리와 만나 방한 계획 등을 논의한 바 있다. 이 총리가 한일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과 왕세자의 한국 방문을 부탁하자, 나루히토 왕세자는 “양국 간에 좋은 환경이 만들어지길 바란다”며 “한국 음식을 참 좋아한다. 비빔밥과 황태를 좋아한다”고 긍정적으로 답변했다.

아베 총리와 전혀 다른 역사인식을 가진 나루히토 왕세자의 즉위로 인해 새 연호처럼 한일 관계에 희망의 꽃이 필 수 있을 지 관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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