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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제, 좌파적 정책실험에 불과할까
  • 임해원 기자
  • 승인 2019.02.25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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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서울시가 청년기본소득제를 검토 중이라는 소식이 알려지자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해당 정책에 반대하는 청원글이 다수 올라왔다.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갈무리>

“앞으로 살 날도 많고 일할 날도 많은 청년들에게 왜그렇게 돈을 퍼주는건가요? 차라리 그 돈으로 노인복지나 한부모 가정, 장애인, 독립 유공자님 들께 드리는게 현명하지 않나요?”

“서울에 사는 청년들에게 구분없이 수당을 주면 돈이 9조정도 빠져나간다고 하는데 누구의 돈으로 주는겁니까?”

“우린 미칠듯 일만하면서 아껴가면서 살아가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청년들에게 지원금으로 50만원?”

위의 글들은 지난 20일 서울시에서 모든 청년에게 매월 50만원의 ‘기본소득’을 지원하는 정책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진 뒤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반대 청원들이다. 아직 실효성에 대한 논란이 많은 기본소득을 청년 대상으로 시행한다는 소식에 ‘혈세 낭비’, ‘선심성 보여주기 정책’, ‘비현실적 탁상공론’ 등의 비판 여론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채웠다.

결론적으로 해당 정책은 실제 검토 단계가 아니라 서울시 산하 연구기관에서 제한한 일종의 사회적 실험으로 밝혀졌다.  21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서울시 복지정책과 이해선 과장은 “서울연구원과 랩2050에서 청년 기본소득에 관한 정책실험을 제안을 해놓은 상태이고 서울시가 할지 말지 어떻게 할지 이런 부분에는 별도로 결정한 것이 없다”라고 해명했다.

서울시가 실제로 19~34세 청년 전체에 대해 매월 50만원의 수당을 제공하는 '통큰' 정책을 시행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이러한 방식의 복지정책이 실효성이 있을 지 과학적 실험을 통해 미리 검토해보자는 제안을 받았다는 설명이다. 해당 연구기관은 2400명의 청년을 월 50만원을 무조건 지급받는 집단, 근로 및 사회참여 활동과 연계해 지급액이 조정되는 집단, 미지급 집단 등 세 집단으로 나눠 2년 뒤 결과를 비교하는 방식의 정책실험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려하는대로 수 조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것이 아니라 최대 약 200억원의 예산이 필요한 정도다.

기본소득제는 상당히 논란이 많은 복지제도다. 반대 측에서는 이미 일부 선진국에서 시도했으나 실패로 결론난 정책을 굳이 실험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실제 핀란드는 지난 2017년 1월부터 2년간 실업부조 지급대상자를 대상으로 매달 560유로의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정책실험을 지급했다.

핀란드의 실험은 어떤 결론을 도출했을까? 2017년도 데이터만 분석한 1차  결과 발표에 따르면 유의미한 고용 증대 효과는 발견되지 않았다. 기본소득을 지급받은 실험집단은 통제집단에 비해 5000유로 가량의 지원을 더 받았지만 연간 근로일수는 각각 49.64일과 49.25일로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반대론자 입장에서 이 결과는 '실업문제 해결에 효과가 없는 것으로 드러난 기본소득제 실험을 굳이 국내에서 시행할 이유가 없다'는 주장의 근거로 쓰일 수 있다.

핀란드 정부가 지난 8일 발표한 기본소득제 실험 예비 결과. 2년 간의 실험 데이터 중 1년차(2017년) 데이터만 우선 분석한 결과다. <사진=핀란드 사회보험원(KELA) 홈페이지 갈무리>

하지만 핀란드 기본소득제 실험의 내막을 들여다보면 이번 예비결과가 반대 근거로만 활용되기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실험의 취지는 실업급여 중단을 두려워해 단기적 일자리 취업을 기피하는 실업자들에게 무조건적 실업급여를 지급함으로서 구직 활동을 촉진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좌파적 정책실험이라고 알려진 것과는 달리, 실업자의 재취업을 촉진해 과도한 사회복지비 지출을 줄여보고자 했던 우파적 정책실험이라는 것. 국민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노정호 교수는 지난해 3월 발표한 논문에서 해당 실험에 대해 “관리비용이 적은 기본소득이 근로유인을 늘리는 지 또는 줄이는지 알아보고자 하는 실험”이라며 다분히 우파적인 성향을 띤다고 평가했다.

고용효과가 없다는 결과에 대해서도 이견이 존재한다. 가천대학교 유종성 교수는 25일 프레시안에 기고한 글에서 “2년의 실험이 끝나갈 무렵이었던 설문조사 당시(2018년 10월-12월)의 고용 상태에 대한 질문이 있었는데, 실험집단에 속한 이들의 취업률이 통제집단보다 현저히 높아 고용효과가 있었음을 보여주었다”고 지적했다. 유 교수가 인용한 설문 결과에 따르면 당시 기본소득을 지급받는 실험군의 취업률은 31%로 통제군(25%)에 비해 6% 가량 높았다. 다만 풀타임과 파트타임 취업자의 비중은 두 집단에서 큰 차이가 보이지 않았다.

주된 실험 목적인 고용효과에 대한 판단은 아직 어렵지만 기본소득을 지급받은 경우 삶의 질이 향상됐다는 결과도 주목할만 하다. 실험을 주관한 핀란드 사회보험원(KELA)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기본소득을 받은 실험군은 스트레스, 주관적 건강상태, 집중력 등에서 통제군보다 나은 모습을 보였다. 간단히 말해 기본소득이 사람을 더 행복하게 해준다는 것. 또한 기본소득을 받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향후 취직 가능성에 대한 희망이나 일자리 제안에 대한 수용 가능성도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기본소득제는 아직 결론을 내기에는 이른 문제다. 점차 불안정해지는 고용상황에 대처할 유일한 방법이라는 찬성론과 구직자들의 근로의욕을 감소시키는 비현실적 정책이라는 반대론도 뚜렷하게 대립하고 있다. 하지만 이견이 뚜렷한 만큼 정책 자체의 효과를 과학적으로 검증하고자 하는 시도는 더욱 필요하다. 새로운 정책적 시도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대보다는 과학적 실험과 면밀한 검토를 위한 충분한 논의가 더욱 필요한 시점이다.

임해원 기자  champr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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