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의 그 유명한 미라보 다리 위에서 앞을 보지 못하는 한 남자가 구걸을 하고 있었다. 그의 더러운 목에는 그의 행색만큼이나 꼬질꼬질한 팻말이 걸려 있었는데 거기에는 맞춤법도 제대로 맞지 않는 조악한 글씨로 ‘저는 태어날 때부터 장님입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그를 거들떠도 안 봤고, 당연하게도 그의 유일한 밥벌이 수단인 깡통은 늘 비어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앞을 지나가던 한 남자가 문득 발걸음을 멈추고는 그에게 구걸을 해서 버는 수입이 하루에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다. 그는 혹시나 남자가 돈이라도 줄까 싶어 아주 불쌍한 음성으로 하루에 10프랑도 벌지 못한다고 얘기를 했다. 그러자 남자는 그의 기대와는 달리 돈을 주기는커녕 그의 목에 걸려있던 팻말을 뒤집더니 자신의 펜을 꺼내 뭐라고 적어놓고는 휭하니 사라져버렸다. 앞을 보지 못하는 걸인은 도대체 남자가 무슨 글을 썼는지 궁금했지만 알 수가 없었는데...

그로부터 얼마 후, 그 걸인의 깡통은 늘 동전과 지폐로 가득 차있게 되었다. 걸인은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날마다 늘어나는 수입 아닌 수입에 기뻐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한 달 전쯤 자신에게 하루에 얼마를 버느냐고 물었던 그 목소리의 남자가 다시 말을 걸었다. 남자는 걸인에게 요즘은 하루에 얼마를 버는 지를 물었고 걸인은 대번에 그 음성의 주인공이 바로 그 남자인 것을 알았다. 걸인은 대뜸 남자의 두 손을 움켜잡고 무척이나 고마워하며 남자가 다녀간 뒤부터 수입이 늘더니 지금은 하루 평균 50프랑도 넘는다며 그 이유가 뭔지 무척이나 궁금하다고 물었다. 그러자 남자는 별거 아니라는 듯 빙그레 웃으며 걸인에게 ‘원래 당신의 팻말에 쓰여 있던 글 대신에 제가 다른 글을 써놨을 뿐입니다.’라고 대답을 했다. 남자가 쓴 다른 글이란 ‘저는 태어날 때부터 장님입니다.’란 글 대신 ‘봄이 오건만 저는 그것을 볼 수 없답니다.’ 라는 글이었다.

멋들어진 그 글귀를 쓴 사람이 프랑스의 시인인 로제 카이유라고도 하고 이 이야기가 같은 프랑스 시인인 앙드레 브르통이 1920년대 겨울, 미국 뉴욕에 갔을 때의 일화라고도 전해진다. 누구의 이야기가 되었든 공통적인 사실은 어느 시인의 한 줄의 멋진 글이 한 사람의 삶을 바꾸어 놨다는 것이다. 결국은 같은 내용이지만 하나의 수식어가 혹은 조금은 다른 관점에서 풀어 쓴 글이 다른 사람의 감정을 움직일 수 있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바꾸며 이는 곧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라 하겠다. 그만큼 글이란, 시란 우리의 삶에 있어 중요한 수단이자 삶을 보다 윤택하게 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될 수 있다. 우리 누구나 시를 쓸 수 있고 또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다. 다만 그 시가 다른 이의 마음을 움직이고 감동을 주기 위해서는 좋은 시를 많이 접하고 많이 보고 많이 듣고 많이 느끼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올 겨울에 계간 ‘시인 수첩’의 주최로 2019년 1월 24일 (목) 17:00에 서울 대학로의 창조 소극장에서 열리는 ‘겨울 시콘서트’는 주목할 만하다 하겠다. 우리 시의 영토를 확장하고 대중화에 앞장서는 계간 ‘시인 수첩’ 출판사 및 관계자들과 읽는 시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 시로, 시에 대한 다양하고 색다른 재미를 안겨드리기 위해 아무런 사심 없이 참여를 하는 여러 시인들 및 출연진들의 진심은 지금까지 시에 대해 조금은 무심했던 분들에게 작은 떨림을 주기에 충분하다. 잡지 속의 시인들과 독자가 직접 만나 서로의 생각을 교감하는 무대는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영혼의 휴양지고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한 두터운 밑거름이 되기 때문이다. 더불어 ‘시’와 ‘연극, ‘영화’, ‘강연’, ‘음악’의 절묘한 조화는 자칫 멀게만 느껴졌던 ‘시’란 문학을 조금 더 가까이 다가올 수 있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한 줄의 시가 세상을 바꿉니다.’라는 어느 시인의 약속처럼 우리나라의 문화가 전 세계의 중심에 우뚝 설 그날을 위해 이런 뜻깊고 알찬 행사가 많이 열리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바이다.

 

(필자 소개)

한국을 대표하는 공포 미스터리 작가다. 이십대에 유니텔 등 각 PC통신사로부터 최고의 공포 미스터리 판타지 작가로 선정됐으며, 뉴시스에 공포 미스터리 소설 ‘악령의 추종자’를 연재했다. 어릴 때부터 글쓰기를 좋아하고 연극과 영화 보기를 즐겨했으며 현재는 작가 겸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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