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 정보기관에 의해 피살된 것으로 알려진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사진=CNN 방송화면 갈무리>

[이코리아] 사우디아라비아가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하지만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연관설은 부인해 국제사회의 비판이 예상된다.

사우디 검찰은 15일(현지시간) 기자회견을 열고 터키 이스탄불로 파견된 사우디 협상팀이 총영사관에서 카슈끄지를 살해했다고 발표했다. 협상팀은 카슈끄지에게 귀국을 요구하며 협상을 벌이다, 논쟁 끝에 약물을 주입해 카슈끄지를 살해하고 시신을 토막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사우디 검찰은 “카슈끄지 사건의 최고위 책임자는 사우디 정보기관의 2인자였던 아흐마드 알아시리"라며 빈 살만 왕세자의 연루설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아델 알주바이르 사우디 외무장관 또한 이날 성명을 내고 "왕세자는 카슈끄지의 죽음과 관련이 없다"며 "용의자들을 처벌하는 것과 사우디 정부가 책임을 지는 것은 별개"라고 말했다. 카슈끄지 피살사건이 왕세자나 사우디 정부와 연관없는 알아시리 개인의 독단적 행동이라는 뜻. 알주바이르 장관은 용의자들을 사우디 영토 내에서 처벌하겠다며 터키의 용의자 인도 요청에 대해서도 거절의 뜻을 명확히 했다.

한편, 미국 재무부는 이날 사건과 관련해 사우디 인사 17명에 대한 경제제재를 단행한다고 발표했다. 제재 명단에는 사우드 알 카흐타니와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총영사를 비롯해, 카슈끄지 살해를 지시한 것으로 의심받고 있는 빈 살만 왕세자의 측근들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미국 언론들은 이번 제재 조치가 오히려 트럼프 정부의 친사우디 성향을 입증하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15일 재무부의 보도자료가 사건의 책임소재를 불분명하게 만드는 표현들로 이루어져있다고 지적했다. 재무부는 보도자료에서 제재 대상들이 “카슈끄지 피살사건에서 ‘역할’을 담당했다”고 표현했으며, 특히 알 카흐타니에 대해서는 “카슈끄지의 죽음으로 ‘이어진’ 작전 계획 및 실행의 일부를 맡았다”고 묘사했다.

WP는 “역할”, “이어진” 등의 표현이 카슈끄지 죽음에 대한 제재 대상의 책임을 모호하게 만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WP는 “사우디 검찰은 카흐타니가 카슈끄지의 본국 송환계획에만 참여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며 재무부의 표현이 사우디 검찰 발표와 비슷한 뉘앙스라고 설명했다.

미국 온라인매체 복스(Vox) 또한 이번 제재명단은 트럼프 정부가 사우디에게 카슈끄지 사건에 대한 책임을 묻고 싶지 않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11일 “우리나라에 쏟아지고 있는 엄청난 규모의 돈줄을 멈추고 싶지는 않다”며 사우디와의 1100억 달러 무기계약 전망을 언급한 바 있다. 복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사우디로 인한 경제적 효과를 상실하는 위험을 감수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카슈끄지 사건으로 미국이 빈 살만 왕세자를 위협할만한 강력한 제재 조치를 취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복스는 이번 제재조치에 대해서도 트럼프 정부의 대외정책에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는 의회를 달래기 위한 시도일 뿐이라고 해석했다. 전직 미 재무부 직원 션 케인은 복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제재조치에 대해 “이것은 최소한의 조치이자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최대치”라며 “추가 제재가 뒤따르지 않는다면 사우디 정권의 행태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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