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4일 평양 순안공항에서 미겔 디아스카넬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을 영접했다. 뒤편 공항건물에 두 정상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사진=조선중앙TV 방송화면 갈무리>

[이코리아남북, 북미 대화의 재개로 북한 관련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졌지만, 여전히 북한은 베일에 싸인 국가다. 전문가들에게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일상적인 발언이나 사진, 슬로건이나 공연내용의 변화까지도 북한의 움직임을 읽어내기 위한 단서가 된다.

최근 전문가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북한 사회의 두 가지 변화가 주목받고 있다. 하나는 김 위원장의 초상화가 처음으로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 다른 하나는 집단체조 공연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의 얼굴이 연출됐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두 가지 사건이 북한 사회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을 넘어 국제사회에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 김정은 초상화, '계승자'에서 '지도자'로 이미지 변신

BBC 등 외신에 따르면, 조선중앙TV는 지난 4일 방북한 미겔 디아스카넬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을 김 위원장이 직접 영접하는 장면을 중계하면서 평양국제비행장(순안공항)에 걸려있는 두 지도자의 초상화를 공개했다. 김 위원장의 얼굴이 사진이나 영상이 아닌 대형 초상화로 전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초상화 속 김 위원장은 평소 즐겨 입는 인민복이 아닌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맨 모습을 하고 있으며, 안경을 쓰고 이빨을 보이며 크게 웃는 표정을 연출하고 있다. 이는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초상화와 거의 유사한 구도다. BBC는 그동안 ‘지도자’라기보다는 ‘계승자’로서의 이미지가 강했던 김 위원장이 선대와 유사한 초상화를 공개한 것은, 김 위원장의 역할 변화를 암시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북한전문매체 NK뉴스의 올리버 호담 기자 또한 BBC와의 인터뷰에서 김정은 초상화가 선대의 초상화를 떠올리게 한다며 “김정은 초상화는 북한 정권이 김 위원장 개인의 우상화를 시작했다는 사실에 대한 강력한 증거”라고 말했다.

초상화 공개 시점을 외국 지도자의 방북 시점으로 잡은 것도 의미심장하다. 김 위원장은 이전의 선군정치 노선에서 경제성장 노선으로 선회하면서 국제사회에서 인정받는 지도자 이미지를 구축하는데 노력해왔다. 디아스카넬 의장을 환영하는 장면에서 선대와 동일한 구도의 초상화를 공개한 것은 이러한 이미지를 강화하려는 의도로 해석될 수 있다. 호담 기자는 “외국 정상과의 8번의 회담을 통해 북한은 김 위원장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처럼 국제적으로 존경받는 지도자로 묘사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4일 '빛나는 조국' 공연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초상화가 연출된 장면. <사진=NK뉴스 홈페이지 갈무리>

◇ ‘빛나는 조국’ 시진핑 초상화, 미국에 던지는 메시지?

북한 전문가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또 다른 한 가지는 대집단체조 ‘빛나는 조국’ 공연 레퍼토리의 변화다. 5일 NK뉴스에 따르면, 지난 4일 평양에서 열린 ‘빛나는 조국’ 공연에서 시진핑 중국 주석의 초상화가 카드섹션을 통해 연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시 주석의 초상화는 공연 막바지 국제협력을 강조하는 순서에 연출됐으며, 공개된 사진에 따르면 중국 국기 배경 가운데 위치한 금색 테두리 안에 시 주석의 얼굴이 들어있는 모습이다. 이는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얼굴이 집단체조 공연에서 연출되는 방식과 동일하다.

정권수립 70주년 기념일인 지난 9월 9일 선보인 ‘빛나는 조국’은 문재인 대통령의 방북 당시에도 환영행사의 일환으로 공연된 적이 있다. 이후에도 ‘빛나는 조국’은 외국인관광객을 위해 정기적으로 공연돼왔지만, 공연 중 시 주석의 초상화가 등장한 것은 처음이다. NK뉴스에 따르면 시 주석의 초상화가 등장한 뒤 북중관계를 강조하는 “친근한 린방(이웃나라)”라는 슬로건과 함께 평양 개선문과 북경 자금성의 모습도 카드섹션을 통해 연출됐다.

호주 그리피스대학 산하 그리피스아시아연구소의 북한 전문가 안드레이 아브라하미안 박사는 NK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러한 종류의 연출은 김일성·김정일 부자에게만 허락된 것”이라며 “이는 시 주석에게 최대한의 존경심을 표하려는 시도”라고 설명했다. 아브라하미안 박사는 이어 “중국 대사관과 외교부 및 당 기구는 북한이 이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분명하고 긍정적인 신호를 이해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시 주석 초상화의 등장이 미국에 보내는 메시지라는 해석도 제기되고 있다. 북한 전문가인 김수 전 미 중앙정보국(CIA) 정보분석가는 6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빛나는 조국’ 공연에서 중국에 대한 지지를 공식적으로 표한 것은, 미국이 비핵화 협상에서 압력을 가할 경우 중국이 북한 편에 설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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