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0일 신라호텔에서는 '세계지식포럼'이 개최되었다. 이 포럼에서는 ‘케르스티 칼률라이드’ 에스토니아 대통령이 기조연설자로 나서, 에스토니아의 디지털 전략에 대하여 발표했다. 칼률라이드 대통령은 이날 오후 국회를 찾아 '디지털 국가혁신'에 대하여 연설했다. 필자는 에스토니아 대통령이 단아한 영어로 성공적인 혁신사례들을 하나씩 소개하는 것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에스토니아는 한국의 절반크기, 인구 130만명의 소국이다. 하지만 에스토니아는 유럽연합(EU)이 평가한 경제자유지수, OECD가 측정한 EU 조세경쟁력, 세계경제포럼이 조사한 기업가정신에서 모두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이미 95%의 시민들이 온라인으로 세금을 신고하고, 대부분의 행정업무는 디지털로 5분 이내에 처리된다고 한다. 이글에서는 다른 나라들의 모범이 되고 있는 에스토니아의 성공적인 디지털 혁신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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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토니아의 디지털신분증

에스토니아는 13세기 이후로 끊임없이 외국의 침입을 받아왔다. 수도인 탈린도 덴마크인들이 세운 도시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에스토니아는 1918년 독립을 선언했으나, 22년후인 1940년 소련에 점령당했다. 다행히 구소련의 해체로 1991년 에스토니아는 역사에 재등장하게 되었다. 구소련의 해체 전 동유럽의 계획경제에 등장한 ‘시장’이란 혁신적인 도구는 에스토니아가 공산주의로 회귀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시장경제에 대한 충분한 준비가 되지 않았던 에스토니아는 독립한 해에, 러시아의 원유공급 중단으로 국가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 14%로 낮아졌고, 인플레이션은 87.5%를 기록했다. 이러한 어려움 가운데, 신생 에스토니아는 혁신과 성장의 돌파구를 바로 ‘전자거버넌스’에서 찾았다.

에스토니아는 2000년 세계 최초로 "인터넷에 대한 접근은 인간의 권리"로 선언했고, 인터넷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았다. 다음 해인 2001년에는 정부기관들이 공공데이터를 공유하기 위하여 'X-Road'라는 기슬플랫폼을 만들었다.

그리고, 2002년 이 플랫폼에 기반을 두고 디지털신분증 제도를 만들었다. 디지털 신분증 제도가 등장한 후, 에스토니아의 아기는 태어나면 디지털 아이디를 획득하게 되고, 이 디지털신분증이 있으면 1,500개가 넘는 행정서비스를 손쉽게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에스토니아는 2005년 전국적인 선거를 온라인으로 진행하기도 했다. 현재 에스토니아에서는 결혼과 이혼, 부동산거래를 제외한 대부분의 거래를 디지털로 처리하는 것이 가능하다.

 

에스토니아의 전자영주권

자국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에스토니아의 복안은 전자영주권에서 나왔다. 한국의 경우 투자자유지역에 5억원 이상의 부동산을 투자하면 영주권을 받을 수 있다. 스페인과 뽀르뚜갈도 50만 유로 이상의 부동산에 투자하면 영주권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에스토니아는 자국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100유러를 지급한 외국인에게 전자영주권을 발급하기 시작했다. 전자영주권은 물리적인 거주권은 아니지만, 전자영주권이 있으면 에스토니아 정부로부터 온라인으로 경영이나 세무 등에 대한 자문을 받을 수 있다. 이 제도의 도입 후, 지난 10월 까지 이미 154개국가 33,000여명 이상이 전자영주권을 신청했다. 유럽 시장에서 새로운 사업을 희망하는 한국인들의 전자영주권 신청도 증가하고 있다.

에스토니아에서는 법인설립도 온라인으로 가능하다. 현재 5,033개 이상의 기업이 해외에서 온라인으로 법인을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필자는 캘리포니아주에서 법인설립 업무를 오랫동안 처리했는데, 에스토니아의 법인설립이 캘리포니아보다 특별히 용이하다거나 시스템이 편리하다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캘리포니아에서 법인설립을 위해서는 누구나 정관을 만들고, 캘리포니아 거주민의 주소를 기재한 신청서를 100달러의 비용과 함께 주서기에 제출하면 된다. 현재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3~4일 전 접수한 신청서를 처리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에서는 신청 후 1~2주일이면 주서기 '알렉사 파딜라'의 서명과 날인이 찍힌 정관을 받아볼 수 있다.

에스토니아 법인설립이 온라인으로 가능하다고 해도, 에스토니아 정부가 운영하는 시스템은 한국 정부의 시스템에 비하여 인터페이스가 뛰어나다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에스토니아의 유한책임회사에 적용되는 최저납입자본금도 또 다른 부담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에스토니아가 2003년에 EU에 가입한 점을 감안한다면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법인설립과 사업자등록은 유럽진출을 위한 교두보로 충분히 검토할 만하다.

 

에스토니아의 디지털 네트워크

필자가 예전에 체류했던 헬싱키 항에서는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에서 출항한 거대한 카페리가 자주 들어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북유럽을 코앞에 두고 있는 지리적인 이점도 에스토니아의 성장에 한몫했다고 본다. 에스토니아는 2002년 일찌감치 전국 무료와이파이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았고, 이점은 이웃국가 주민들이 부러워하는 것이 되었다.

에스토니아 정부는 일찍이 디지털 네트웍 구축에 힘써왔는데, 특별히 보안산업이 발전하게 된 것은 2007년 에스토니아 정부 네트웍에 가해진 D-DOS 공격 때문이다.

외부에서 진행된 공격 이후, 에스토니아는 2008년 이후 전자 의료보건 서비스 등을 도입하면서 강화된 보안기술과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하게 되었다. 에스토니아의 디지털 네트웍의 또다른 특징은 다양한 DB를 적절히 통합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아직 일부 화물자동차 관련 업무는 국토부와 지방경찰관서에서 별도로 허가를 받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DB를 적절히 통합한 에스토니아에서 국민이 정부에 한번만 요청하면 수많은 업무가 연계적으로 처리되고 있다.

 

에스토니아의 디지털교육

디지털 선진국으로 나아가기 위한 에스토니아의 노력은 교육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에스토니아의 IT교육은 '프로게 타이거'란 프로젝트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타이틀은 아시아의 역동적인 신흥 호랑이들을 본받자는 의미에서 붙여졌다. 호랑이 마스코트를 사용한 이 프로그램은 엔지니어링. 디자인과 정보통신을 학습하는 교육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의 도입으로 수많은 학생들은 초등학교부터 컴퓨터와 로보틱스를 배운다. 더 나아가, 고학년 학생들은 게임 프로그래밍이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까지 배우고 있다. 정부는 저학년 학생에게 디지털기기를 지급했고, 고학년 학생들은 자신들의 디지털기기를 학교에 가져가서 활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에스토니아의 학교 중 10%는 이미 3D프린터까지 갖추고 있다.

에스토니아 디지털 교육의 성과는 성공적인 일부 IT기업들의 등장으로 이어졌다. ‘택시파이’는 에스토니아 출신인 마르쿠스 빌리그가 2013년 창업한 기업이다. 그런데, 이 회사는 아프리카에서 우버를 뛰어넘은 240만명의 이용자를 보유하고 있다. 기업가치도 이미 1조원을 뛰어넘었다. 그들은 아프리카에서 오토바이 택시에 새로운 기회가 있는 것을 보았고, 우버보다 낮은 15%의 수수료와 현금결제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소련으로부터 독립하여 러시아의 재정적인 지원을 받을 수 없었던 에스토니아는 20년전 아시아의 4마리 호랑이를 본받아 디지털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았다. 그 결과 수많은 사람들이 인구 130만명의 에스토니아로 몰려들었고, 에스토니아 기업들도 성공적으로 해외로 진출할 수 있었다. 에스토니아의 IT기술이 결코 세계 최정상급은 아니다. 그렇지만 디지털 강국을 향한 그들의 노력은 에스토니아 경제를 크게 성장시켰고, 에스토니아가 교육강국의 명성을 쌓는데 크게 기여했다.

 

<필자약력>

-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 대우그룹 회장비서실

- 안양대학교 평생교육원 강사

- (주)명정보기술 산호세법인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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