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박근혜 전 정권 시절 벌어진 사법농단과 관련해 양승태 전 대법원장 및 당시 법원행정처장으로 일했던 고영한·박병대·차한성 전 대법관 등에 대한 압수수색이 시작됐다. 사법농단 수사 이후 최초로 시행된 전직 최고위 법관에 대한 수사로 국내 주요 언론들의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일부 보수언론에서는 삼권분립이 흔들릴 수 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 사법농단 수사 전환점 

재판거래 및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은 지난달 30일 양 전 대법원장의 차량을 비롯해 전직 대법관 3인의 주거지 및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그동안 검찰은 법원으로부터 압수수색 영장의 90% 가량을 기각당하며 수사에 제 속도를 내지 못했으나, 이번 압수수색으로 수사에 큰 진전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주요 언론들도 이번 압수수색 소식을 비중있게 다뤘다.  한국일보는 1일 “법조계선 양승태 사법처리 사실상 기정사실화”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사법농단의 핵심인 사법부 고위층에 대한 처벌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전망했다. 한국일보는 “사법농단의 실무책임자 역할을 한 것으로 의심받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소환 조사가 이루어지기 전에 윗선인 양 전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 출신의 전직 대법관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이 발부된 점은 의미심장하다”며 “검찰이 양승태 대법원 수뇌부들에 대한 범죄 혐의를 법원으로부터 상당 부분 인정받았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국민일보 또한 전직 고위 법관에 대한 압수수색에 대해 “검찰 수사에 법원이 결국 ‘백기’를 든 것”이라고 평가했다. 국민일보는 이날 “‘사법농단’ 정점 향하는 檢… 물적·인적 증거 확보한 듯”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검찰은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장 전원을 사법농단 수사에 투입해 총력전을 벌였고 그만큼 탄탄한 물적·인적 증거를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며 법조계 관계자를 인용해 “영장이 발부된 것은 결국 법원도 범죄 혐의가 소명됐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전했다.

국민일보는 이어 재경지법 판사를 인용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다. 이제 다른 관련자들에 대한 영장도 줄줄이 발부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하며, 사법농단 수사 속도가 빨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국민일보는 양 전 대법원장의 자택에 대한 영장은 기각된 것에 대해 “법원은 여전히 영장 집행 범위를 제한하는 방식으로 ‘어깃장’을 놓고 있다”고 지적하며 법원의 방어적인 태도를 우려했다.

◇ 조선일보, 압수수색 비판

이날 주요 언론 중 전직 고위 법관 압수수색에 대한 ‘돌직구’ 비난을 던진 것은 국내 주요 일간지 중 조선일보가 유일했다. 조선일보는 1일 “前정권 사법수장까지 적폐수사… ‘삼권분립 흔드는 선례 될 우려’”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고 “검찰의 이번 수사가 헌정사에 좋지 않은 선례가 될 수 있다”며 법조계 관계자들을 인용해 검찰 수사를 비판했다. 이날 조선일보 인터뷰에 응한 차진아 고려대 교수는 지난 30일 실시된 압수수색에 대해 “행정부가 사법부를 장악하는 수단으로 (이번 수사를) 이용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말했으며, 허영 경희대 교수 또한 “수사의 문을 열어준 김명수 대법원장 스스로 삼권분립을 허물었다”고 지적했다. 

조선일보는 이날 “전직 대법원장이 압수수색 당하는 나라”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서도 검찰의 사법농단 수사를 강도 높게 비난했다. 조선일보는 “검찰이 전직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을 상대로 강제 수사를 벌이는 것은 전례가 없을뿐더러, 사법부가 독립돼 있고 법치(法治)를 한다는 나라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라며 “검찰 수사가 정권의 사법부 장악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됐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이어 재판거래 의혹이 법원 자체조사를 통해 사실무근인 것으로 드러났다며 “근거가 박약한 의혹을 갖고 전직 대법원장을 적폐로 몰자 상상하기 힘든 일이 현실이 됐다”고 말했다.

이날 조선일보의 비판적인 논조는 중앙·동아일보 등 다른 보수 언론들이 모두 검찰의 압수수색에 대해 “할 일을 했다”는 평가를 내린 것과 대비된다. 중앙일보는 이날 “양승태, 전직 사법부 수장의 책임감과 품격 보여줘야”라는 제목의 사설을 내고, 중앙일보는 “그가 상고법원 설치라는 업적을 만들기 위해 여론의 반대를 무릅쓰고 법원행정처 소속 법관들을 동원해 정치권과 언론을 상대로 거래를 시도했던 의혹은 점차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며 “양 전 대법원장은 작금의 사법부 위기는 자신 때문에 비롯된 점을 인식하고 사태 해결을 위한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동아일보 또한 이날 사설에서 “사법부는 자료 제출 거부와 숱한 영장 기각으로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판을 자초한 바 있다”며 “수사 대상에 오른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사법부 역시 자성하는 마음으로 수사에 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 ‘형식적’ 압수수색 비판도…

한편 일각에서는 이번 압수수색 범위에서 가장 중요한 양 전 대법원장의 자택이 빠진 것을 두고 미흡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압수수색 영장이 발부된 양 전 대법원장의 차량 또한 재임 시절 타던 차량이 아니라 퇴직 후 사용 중인 것이어서 사법농단 사건 해결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차한성·박병대 전 대법관 또한 자택을 제외하고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만 발부됐다. 최근 퇴임해 사무실이 없는 고영한 전 대법관만 유일하게 자택 수색이 허가됐다.

한겨레는 “해당 장소에 (수사 대상) 자료가 있을 개연성이 부족하다”며 양 전 대법원장 자택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한 명재권 서울중앙지검 영장전담판사에 대해 “‘무죄 예단’을 드러내 비판을 받았던 기존 영장전담판사들과 동일한 논리”라고 지적했다. 핵심인 양 전 대법원장 자택을 뺀 채 생색내기 영장발부를 했다는 것.

서울신문 또한 법원의 영장발부 기준이 일관되지 않다고 지적하며, 이번 압수수색의 실효성이 떨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서울신문은 검찰 관계자를 인용해 “압수수색 영장은 기본적으로 사무실, 주거지, 차량을 한 묶음으로 청구한다. 일부는 내주고 일부는 기각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며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해선 본류인 주거지를 기각하면서 차량만 영장을 발부한 것은 예우 차원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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