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미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이 악수를 나누는 모습.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미국 국무부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방북일정 취소에 대한 입장을 표명했다. 국무부는 ‘취소’ 대신 ‘연기’(delay)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향후 협상 가능성에 대한 여지를 남겼다. 하지만 비핵화협상이 미중 무역협상의 영향 아래 놓이게 되면서 향후 협상 속도가 느려질 것으로 예상된다.

헤더 노어트 미 국무부 대변인은 28일(현지시간) 정례브리핑에서 “평양 방문 연기 결정에도 불구하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합의한 완전한 비핵화 약속을 이행할 용의가 있다면 미국도 협상에 임할 준비가 돼있다”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24일 트위터를 통해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에게 이번에 북한을 방문하지 말라고 요청했다. 한반도 비핵화와 관련해 충분한 진전이 있다고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다. 당시 미국 언론들은 '취소'(cancel)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비핵화 협상에 대한 부정적 전망을 제기했으나, 국무부가 다시 ‘연기’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협상이 지속될 것이라고 재차 확인한 셈이다.

‘연기’라는 표현을 선택한 국무부 발표에도 불구하고 북미협상은 난관에 봉착한 것으로 분석된다. 무엇보다 북한의 줄타기 외교술이 먹혀들지 않고 있다는 징후들이 발견되고 있다. 미국 언론에서 방북 취소의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는 ‘김영철 편지’가 그 중 하나다. 워싱턴포스트(WP)는 27일 보도에서 최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이 폼페이오 장관에게 전달한 편지에 대해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으나, 트럼프 대통령과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북한행을 취소할 정도로 충분히 적대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고 보도했다. CNN 또한 세 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김영철 편지’에 “미국이 평화조약 서명 등 북한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비핵화 협상이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고 보도했다.

미 국무부 관료로 일했던 오바 민타로는 28일 미국인터넷매체 복스(Vox)와의 인터뷰에서 ‘김영철 편지’에 대해 “비핵화 협상 방향에 대한 순수한 불만과, 이해관계에 따라 긴장을 고조시키기도 하는 북한식 협상전략이 복합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협상을 중단하거나 트럼프 대통령을 직접 공격하는 등의 과격한 의사표현 대신, 공격적인 내용의 편지로 현재의 협상 과정이 만족스럽지 않다는 점을 어필하려 했다는 것. 오바는 이어 “트럼프 대통령의 반응을 볼 때 북한이 보낸 편지가 바로 그런 역할을 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북한의 이러한 협상 전략은 오히려 역효과를 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다시 만날 날을 고대한다고 말했지만 북한에 대해서는 비핵화 진전이 없다며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일정을 취소시켜버리는 결단을 내렸다. 북한이 적대적인 편지로 협상 방향을 조절하려 한 것이 사실이라면 오히려 정반대의 결과를 낳게 된 셈이다.

또한 최근 국무부가 잇따라 북한의 핵물질 생산 의혹에 대해 인정하는 발언을 한 것도 협상 과정이 순탄치 않다는 증거다. 미 국무부 대변인실 관계자는 24일 미국의소리(VOA)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핵개발을 계속하고 있다고 지적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보고서에 대해 “북한의 핵 활동이 심각한 우려의 원인이라는 IAEA의 견해에 공감한다”고 밝혔다. 이는 북한이 진지하게 비핵화 협상에 임하고 있지 않다는 불만을 우회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방북 취소 결정을 밝히면서 중국의 개입에 대한 불편한 심경을 드러낸 것도 비핵화 협상에 있어서는 나쁜 소식이다. 북미 비핵화 협상이 미중 무역협상의 부속물이 될 경우, 무역갈등이 해소되기 전까지는 어떤 진전도 기대할 수 없기 때문. 트럼프 대통령은 24일 트위터에서 “폼페이오 장관은 중국과의 무역관계가 해소된 뒤 가까운 장래에 북한을 다시 방문하기를 기대하고 있다”며 “불편한 무역 관계로 인해 그들(중국)이 과거 유엔 대북제재 조치 때처럼 비핵화 과정을 돕지 않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비핵화 협상과정에서 중국의 소극적 태도가 협상을 더디게 만드는 원인이라며 중국 책임론을 주장해왔다. 23일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는 “무역전쟁을 미뤄온 이유는 북한이다. 중국의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이라며 “그렇지 않았다면 무역전쟁을 더 빨리 시작했을 것이다. 중국이 계속 협조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반도 비핵화는 무역갈등을 겪고 있는 미중 양국의 핵심적인 외교문제다. 미국과의 무역전쟁으로 궁지에 몰린 중국 입장에서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는 것은,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비핵화 진전이라는 정치적 성과를 원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압박하는데 효과적인 수단이기 때문.

북한으로서도 미국을 상대로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중국과의 관계를 지렛대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이 때문에 테드 포 공화당 하원의원은 지난 9일 미국의소리와의 인터뷰에서 “김정은은 중국 정권의 꼭두각시”라며 무역전쟁과 미국의 대만 지원으로 화가 난 중국이 북한에게 핵프로그램을 재개하도록 압박하는 방식으로 미국에 보복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협상을 미중 무역협상 뒤로 미뤄버리면서 중국과 북한의 노림수도 결국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정치적 위기에 몰린 트럼프 대통령이지만 중국과의 무역전쟁의 경우 초당적인 지지를 받고 있어 중간선거에 따른 압박이 상대적으로 덜하기 때문. 트럼프 대통령이 아쉬울 것 없다는 태도로 일관할 경우, 북한과 중국도 기존 전략을 수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일각에서는 결국 한국이 다시 중재자 역할로 나서야할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미중 무역갈등까지 얽힌 복잡한 비핵화 실타래를 풀기 위해서는 한국이 북미 양국의 협상과정을 조율할 필요가 있다는 것. 문재인 대통령의 9월 평양 방문이 정체된 비핵화 협상의 새로운 전환점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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