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진행된 대한민국 건국 70주년 기념 토론회에서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원장이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광복 73주년을 앞두고 ‘건국절’ 논란이 재발했다.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이 건국절과 관련해 끝장토론을 벌여보자고 제안한 것.

김 위원장은 지난 13일 국회에서 열린 ‘대한민국 건국 70주년 기념 토론회’에서 “역사에 있어서 해석을 획일화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건국일을 1919년이라하든, 1948년이라하든 한 번은 뜨겁게 논쟁을 해볼 일”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이어 “어떻게 보면 너무나 명백한 얘기 아니냐고 얘기할 수 있겠지만, 우리 사회에 다른 이견이 존재하고 그 이견이 세상을 뜨겁게 하고 있다”며 “건국일에 대한 논쟁이 국가 정체성을 분명히하고 국가 미래상을 설정하는데도 큰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 김병준, 두달 전 칼럼에선 건국절 비판

이날 김 위원장의 발언은 구체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명확히 밝힌 것은 아니지만, 주로 뉴라이트 및 보수진영에서 지지하는 1948년 건국설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김 위원장은 14일 오전 평화방송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김혜영입니다’에 출연해 “다수의 의견은 1948년”이라며 “김대중·노무현정부도 1948년 건국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1919년을 대한민국의 출발점으로 보는 시각에 대해서는 “최근에 와서 등장한 새로운 해석”이라며 “기본이 우리가 48년 건국이라는 설이 정돈이 돼있고, 그에 대해 이론이 있어 민심을 흔들고 있으니 토론을 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의 이같은 발언들은 과거에 보인 입장과는 상반된 것이어서 주목을 끈다. 김 위원장은 불과 두달 전인 지난 6월 21일 동아일보에 게재한 칼럼 “제1야당, 제대로 변하고 싶다면”에서 자유한국당에 대해 “‘1948년 건국’ 등이 옳다고 믿으면 이를 논리로 다툴 일이지, 국정교과서로 이를 강제할 일이더냐. 또 그것이 가능하기나 한 일이더냐”라고 강도높게 비판한 바 있다.

이 칼럼에서 김 위원장은 “싫든 좋든 역사는 다양성을 향해, 또 시장과 시민사회의 자율을 존중하는 쪽으로 흐른다”며 “이 거대한 흐름에도 불구하고 한국당은 집권당 시절 국민의 역사관까지 국가권력으로 통제하려 했다”고 지적했다. 1948년 건국에 무게를 둔 최근 발언과는 사뭇 다른 주장이다.

◇ 건국절·이승만 옹호, 당내 비판 회피용?

정계에서는 김 위원장의 갑작스러운 건국절 발언에 대해 불안한 당내 입지를 다지기 위한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1993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당시 민주당 최고위원)이 설립한 지방자치실무연구소의 소장으로 취임한 뒤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정책실장을 역임한 ‘원조 친노’로 불린다. 이 때문에 지난달 17일 홍준표 체제와의 차별화를 외치며 출범한 김 위원장 중심의 비대위 체제에 대한 당내 시각은 곱지 않다.

특히 보수색 강화에 집중했던 홍준표 체제와 달리 김 위원장은 취임 이후 당내 노선과 상당히 다른 모습을 보여 왔다. 지난달 26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은 “우리 정치의 가장 큰 모순은 국가주도주의, 패권주의, 표퓰리즘인데, 이 틀을 깨야 한다. 조국 근대화나 안보제일주의를 갖고 미래세대를 끌고갈 수는 없지 않은가”라며 “박정희 시대처럼 국가기획주의에 입각해 기업을 간섭하는 국가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따라올 수 없다”고 강조했다. 당 대표실에 걸려있는 이승만·박정희·김영삼 전 대통령 사진에 대해서는 “당 대표실에 저게 있어야 하는지 (주변에) 묻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심재철 의원이 비대위에게 건국절 관련 행사를 당 차원에서 주최할 것을 제안했지만 “소모적 논쟁보다 정책 경쟁이 중요하다”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제 막 출범한 김병준 비대위 체제가 보수노선을 두고 당내 중진들과 갈등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 9일에는 결국 한국당이 아닌 강효상 의원 주최로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의 재조명’ 행사가 열리기도 했다. 13일 토론회도 당 차원이 아닌 심 의원 주최로 열렸다.

결국 최근 한국당 내부에서 다시 불고 있는 건국절 논란은 김 위원장에게 노선을 명확히 하라는 내부의 압력으로 해석할 수 있다. 김 위원장의 건국절 토론 제안도 점차 높아지고 있는 당내 비판을 모면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지난 9일 강 의원이 주최한 행사에서도 “사상적 혼란이 일어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이 전 대통령의 업적은 폄훼되고 왜곡되어 그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불과 보름 전 이승만 사진이 왜 당 대표실에 걸려있어야 하냐고 묻던 것과는 정반대의 발언이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당내 비판에 직면해 태도를 바꾸면서도 “다수의 의견”이나 “토론이 필요하다”는 등의 표현을 사용하며 여전히 건국절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는 않고 있다. 뉴라이트 중심의 1948년 건국절 주장에 대해서는 여전히 강력한 반대 여론이 존재하는 만큼, 현 비대위 체제의 외연 확장 시도에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 당내 견제 극복과 보수정당 외연 확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앞에 둔 김 위원장이 건국절 논란 속에서 어떤 행보를 보일 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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