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2007년 4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생각에 잠긴 듯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코리아국민연금 인상 논란이 뜨겁다. 국민연금 4차 재정계산위원회에서 보험료를 인상하고 가입연령을 상향하는 방안을 논의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반발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청와대에는 국민연금 의무가입 조항을 폐지해달라는 등 관련 청원글이 지난 일주일간 약 1800 건 이상 올라왔다.

논란이 악화되자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12일 입장문을 내고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보험료 인상, 가입연령 상향조정, 수급개시 연장 등은 자문안에서 논의되고 있는 사항의 일부일 뿐, 정부안으로 확정된 것이 아니다”라며 진화에 나섰다. 박 장관은 국민 의견 수렴 및 관련 부처 협의 등 논의를 거쳐 9월 말까지 향후 연금 운영안을 마련한 뒤 10월 말에 국회에 제출할 계획도 함께 밝혔다.

국민연금 제도 개선은 이미 이전 정부에서도 여러 차례 시도했던 과제이지만 그때마다 여론의 강력한 반발에 밀려 성공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국민연금 보험요율은 지난 1998년 9%로 인상된 이후 20년째 같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비록 하락 중이기는 하지만 60%에 가까운 지지율을 가지고 있는 문재인 정부로서도 국민연금 보험요율 인상은 쉽게 추진하기 어려운 과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 국민연금 개선은 피할 수 없는 숙제라며 보험요율 인상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 유시민, “국민연금은 불효연금”

참여정부 시절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 유시민 전 장관은 보험요율 인상·소득대체율 인하 등을 골자로 하는 국민연금 개정안의 선봉장으로 활약했던 대표적인 연금 개혁론자다. 참여정부는 집권 초인 2003년, 2차 재정추계 이후 9%였던 보험요율을 무려 6.9%p 오른 15.9%로 인상할 것을 추진했으나 여야의 반대에 부딪혀 포기했다.

이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6년 유 전 장관을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임명하고 국민연금 개혁을 재추진했다. 당시 유 전 장관은 보험요율을 9%→12.9%로 인상하고 소득대체율을 60%→50%로 인하하는 완화된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들고 나왔다. 하지만 결국 국회 반발에 부딪혀 2007년, 보험요율을 동결하는 대신 소득대체율만 40%까지 점진적으로 인하하는 방안이 채택됐다. 유 전 장관은 국민연금 개혁 실패의 책임을 지고 그 해 5월 장관직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유 전 장관이 당시로서는 과감한 국민연금 개혁을 추진한 이유는 국민연금공단이 지난 2015년 발간한 ‘실록 국민의 연금’에서 찾아볼 수 있다. 유 전 장관은 이 책에서 국민연금에 대해 “불효막심하고 싸가지 없는 법”이라며 과격하게 비난했다.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 과도하게 낮은 보험요율과 높은 소득대체율을 특징으로 하는 한국의 국민연금 제도는, 현 세대가 적게 내고 많이 받기 위해 후세대를 착취하는 부도덕한 제도라는 것.

실제로 국민연금의 보험료 부담은 다른 나라의 공적연금에 비해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13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OECD 회원국들의 평균 보험료 부담 액수가 18% 정도로 우리의 두 배”라며 “이들 나라가 제공하는 국민연금의 급여 수준은 이론적인 소득 대체율이기는 하지만 40.6%다. 그런데 우리는 올해 기준으로 45%를 지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 세대에게 부담은 덜 지우고 인심은 후하게 쓰는 국민연금으로는 재정고갈을 피할 수 없다는 것.

국민들의 안전한 노후보장과 소득 재분배라는 도입 취지와 달리 역진성이 강한 것도 유 전 장관이 지적한 국민연금의 문제다. 실제로 유 전 장관은 재임 당시 국민연금의 대표적인 사각지대로 고령자 빈곤 문제를 꼽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국민연금 부담은 늘리는 대신 기초노령연금을 도입해 최소 생활비를 지원하자는 주장을 폈다. 하지만 국민연금 개정안은 무산된 반면 기초노령연금제만 도입이 돼 개혁안은 반쪽으로 끝나고 말았다.

또한 국민연금은 소득과 보험료가 완전히 비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상위 계층의 경우 높은 소득 대비 적은 부담을 지고 있다. 한국납세자연맹이 2017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4년 기준 상위 1% 근로소득자의 국민연금 부담비중은 겨우 1.9%에 불과했다. 현행 규정상 국민소득 보험료 상한액(월 근로소득이 468만원 이상인 경우 보험료 40만4100원)이 정해져 있기 때문. 게다가 취약계층의 경우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짧을 수밖에 없어 노후에 연금 혜택을 거의 받을 수 없다는 점도 국민연금의 역진성이 가진 한계로 지적받고 있다.

◇ 보험요율 인상안, 文정부 부담 이겨낼까

전문가들은 현재 국민연금 제도가 현 세대의 부담을 후세대로 넘겨주는데다 각종 사각지대가 존재하고 있어 손을 보는 것은 불가피하다는데 의견을 함께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여론의 반발이다. 국민연금 보험요율 인상은 당장 피부로 와닿는 부담이기 때문. 이 때문에 유 전 장관 또한 당시 정치인들에게는 성역으로 취급받았던 국민연금 개혁에 손을 대면서 엄청난 비난에 휩싸인 바 있다. 2007년 2월에는 시민단체들로부터 국민연금을 개악했다며 ‘최악의 복지부장관상’을 수상하는 불명예를 뒤집어쓰기도 했다.

하지만 연금 개혁에 대한 유 전 장관의 소신은 확고한 것으로 보인다. ‘실록 국민의 연금’에서 유 전 장관은 최악의 복지부장관상 수상 당시를 회상하며 “나는 꿇리지 않는다. 당당하다”고 말했다. 유 전 장관은 “우리 아버지 엄마는 팽개치고 가고, 우리 새끼들한테서 보험료 뜯어내서 내가 연금 받는다? 이건 굉장히 부도덕한 제도라고 생각한다”며 국민연금에 대해 “불효연금”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국민연금공단과 관련 부처가 여론의 눈치를 보지 않고 국민연금 대수술을 집도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현재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은 국민연금 폐지를 요구하는 분노에 찬 청원글로 가득 차 있다. 게다가 최근 여론조사 결과에서는 문 대통령과 여당 지지율이 몇 주 때 하락세를 기록하고 있다. 여론 반발이 분명한 상황에서 국민연금 개혁은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와 다를 바 없다.

유 전 장관은 2014년 JTBC 뉴스룸에 출연해 “합리적으로 따지면 공적보험의 보험료를 훨씬 더 많이 올리고 그리고 급여 수준을 높게 유지하는게 국가적으로 훨씬 바람직하다”면서도 “그런 주장을 하는 정치세력을 국민들이 선택을 안해준다”며 현실적인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높은 지지율을 바탕으로 논쟁적인 정책들을 강력하게 추진해온 문재인 정부가 유 전 장관이 달지 못한 방울을 고양이 목에 달 수 있을 지 궁금하다.

저작권자 © 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