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헌법재판소까지 견제하려한 정황이 드러났다.

검찰에 따르면 상고법원 도입계획을 주도한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실은 지난 2015년 10월 양형위원회와 함께 ‘헌재 관련 비상적 대처방안’이라는 문건을 작성한 것으로 밝혀졌다. 해당 문건은 상고법원 도입 과정에서 예상되는 헌재의 반발에 대한 ‘극단적 대처 방안’이 필요하다며 헌재의 존립근거 위협, 헌재 역량 약화, 헌재 여론 악화 등의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사법정책실은 해당 문건에서 대법원장이 가진 헌법재판관 3명 추천권을 활용해 헌재의 권위를 약화시킬 것을 제안했다. 헌법재판관이 되기 위해서는 15년 이상의 판사·검사·변호사 경력이 필요한데, 자격기준을 간신히 충족시키는 판사를 추천해 헌재 결정의 권위를 낮추자는 것. 해당 문건은 이를 헌재에 대한 ‘노골적 비하전략’이라고 명명했다.

대법관 임명제청권을 가진 대법원장이 헌법재판관 출신을 다시 대법관으로 임명하는 회유책도 제기됐다. 헌법재판관 출신들이 다시 대법관으로 임명될 길을 열어주면, 자리에 미련을 가진 고위 법관들이 헌재와 대법원의 갈등 상황에서 대법원을 지지하게 될 것이란 계산이다.

또한 헌재에 대한 여론을 악화시키기 위해 전·현직 헌재 소장들이 헌법연구관에게 개인 업무를 시켰다는 소문을 퍼뜨리거나 헌재에 비판적인 지하철 광고를 게재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문건에는 재심이 불가능한 헌재의 단심제 폐해를 부각시키고 통합진보당 소송 등 하급심 재판에 개입해 헌재를 역공하는 등의 내용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양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헌재를 타깃으로 삼은 것은 상고법원 도입을 둘러싼 갈등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대법원이 병렬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헌재에 대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상고법원을 도입하려 한다는 의견이 제기돼왔다. 상고법원 도입 시 대법원이 4심으로 승격되면서 상대적으로 헌재의 권한이 위축될 수 있기 때문. 대법관(2000~2006)과 헌재소장(2007~2013)을 모두 역임한 이강국 전 헌재소장은 상고법원 도입 논란이 불거졌던 2015년 “‘법률에 대한 위헌심판 기능’은 헌재에 배타적으로 부여돼 있다”며 “대법원은 그 이외의 제한된 범위 내에서 법률심에 주력해야 한다”고 반대 입장을 명확히 밝히기도 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3부는 해당 문건을 입수하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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