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7일 서울 중구 서울시 시민청에서 열린 인터넷 전문은행 규제혁신 현장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문재인 대통령이 인터넷은행에 대한 은산분리 규제 완화 방침을 시사하면서 찬반논쟁이 격화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7일 서울시청 시민청에서 열린 인터넷 전문은행 규제혁신 현장 간담회에서 “은산분리 대원칙을 지키면서 인터넷 전문은행이 운신할 수 있는 폭을 넓혀줘야 한다”며 “인터넷 전문은행에 한정해 혁신 IT기업이 자본과 기술투자를 확대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1982년 도입된 은산분리 규제는 비금융기업이 보유할 수 있는 은행 지분을 10%, 의결권은 4%로 제한한 것으로, 케이뱅크·카카오뱅크 등 인터넷은행에 대해서도 시중은행과 마찬가지로 적용되고 있다. 국내 인터넷은행의 주요 주주들은 엄격한 은산분리 규제로 인해 걸음마 단계인 인터넷은행이 자본을 확충할 수 있는 경로가 막혀있다며 이전부터 규제 완화를 요구해왔다. 이들은 또 다각적인 핀테크 사업 추진을 위해서도 4%로 제한된 의결권 상한선이 좀 더 높아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 시민단체와 학계 일각 '동양 사태 재현될 우려"

문 대통령이 업계의 은산분리 규제 완화 요구에 긍정적으로 응답하자 시민단체와 학계 일각에서는 강력한 반발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은행이 재벌의 사금고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도입된 은산분리 규제를 풀어줄 경우 과거 동양그룹 사태와 비슷한 상황에 재현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 동양그룹은 지난 2013년 경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금융계열사인 동양증권을 통해 사기성 CP(기업어음)를 대량 판매해 문제가 된 바 있다.

박상인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는 지난 7일 경실련, 참여연대 주최로 열린 ‘은산분리 규제 완화의 문제점 진단 토론회’에서 은산분리 규제를 완화할 경우 ▲비금융 계열사의 부실이 금융기관의 부실로 전이될 위험 ▲수탁자인 고객의 이해와 총수일가 이해의 충돌하는 문제 ▲재벌 계열사 동반 부실화의 매개 역할을 금융계열사가 수행하게 되는 등의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이어 “행위 규제와 감독만으로는 문제 해결이 불가능하다”며 사후 규제로 은산분리 규제를 대체하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현재 인터넷은행의 부실은 은산분리 규제가 아닌 금융당국의 무리한 정책 추진 때문이라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전성인 홍익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지난해 8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케이뱅크 예비인가에서 대주주 재무건전성과 관련한 BIS비율이 업계 평균을 충족하지 못했다”며 “그럼에도 금융위는 은행을 인가해 주며 은행법 시행령을 잘못 해석해 금융시장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금융위가 대주주인 우리은행의 재무건전성과 케이뱅크의 향후 자본확충 능력을 면밀히 검증하지 않은 채 인가를 내줬다는 것.

실제로 케이뱅크는 지난 1년 간 약 838억원의 손실을 내며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다. 전 교수는 이날 토론회에서도 케이뱅크 문제는 금융당국의 사전 검증 부실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며, 은산분리 완화는 인터넷은행 부실과 문재인 정부 금융정책의 실패를 은폐하기 위한 카드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 찬성 측, “핀테크 활성화 위해 규제 완화는 필수”

반면 찬성 측은 은산분리 규제를 완화하지 않을 경우 핀테크를 활용한 혁신적 금융모델인 인터넷은행이 경쟁력을 갖추기 어렵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주주인 비금융기업의 지분 상한을 10%로 제한할 경우 핀테크 활성화를 위한 자본을 확충하기 어려운데다, 4%의 의결권으로는 일관된 사업 추진에도 제약이 크기 때문이다. 이들은 인터넷은행 도입 취지가 기존 금융 패러다임에 변화를 주고자 하는 것인 만큼, 새로운 금융모델을 주도할 수 있는 ICT 기업 및 플랫폼 사업자들을 위한 정책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최훈 금융위원회 금융서비스국장은 지난해 초 참여연대 주최로 열린 ‘은산분리, 원칙인가? 족쇄인가?’ 토론회에서 시중 은행의 과점구도 하에서 핀테크 산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인터넷은행과 같은 새로운 참여자를 위한 유연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윤호영 카카오뱅크 대표이사 또한 같은 토론회에서 “카카오는 2014년부터 핀테크를 준비하기 위해 기존 은행에 접촉했지만 그들 입장에서는 제휴할 필요가 없었다”며 “거대한 4차 산업혁명 중에 핀테크 글로벌 이슈를 보고만 있어야하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비대면 업무 중심의 인터넷은행과 일반 은행의 성격 차이가 분명한 상황에서 동일한 규제를 적용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며, 사후 규제를 통해서도 충분히 문제를 예방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외환위기 이후 명목뿐이었던 금융당국의 감독기능이 크게 강화된 만큼 은산분리 규제 완화가 동양그룹 사태나 저축은행 사태로 귀결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것. 찬성 측 전문가들은 인터넷 은행이 대주주의 사금고로 전락할 가능성이 걱정된다면 대주주에 대한 신용공여한도를 강화하는 것도 한 방안이 될 수 있다며, 과도한 우려가 금융분야의 혁신성장에 제동을 걸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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