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오전 11시44분 강원 원주시 영동고속도로(강릉방향)에서 BMW 520d가 전소됐다.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BMW 차량 화재 사고가 연이어 일어나는 가운데, 원인 규명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BMW코리아와 국토부 측은 배기가스 재순환장치(EGR)의 문제라며 리콜을 발표했으나, 소비자들은 사측의 설명을 납득하기 못하고 있다.

올해 BMW 차량에서 발생한 화재 사고는 모두 28건으로 520d, GT 디젤, 420d, 745i 등의 차종이 포함된다. 이중 절반이 넘는 17건의 사고가 디젤 차량인 520d에서 발생해 해당 차종의 공통적 결함이 사고 원인인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었다.

BMW 측은 주로 디젤차에 장착되는 EGR모듈이 화재 사고의 원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EGR은 디젤차의 배기가스에 포함된 질소산화물(NOx)을 저감시키기 위한 장치로, 배기가스를 모듈 내로 빨아들여 NOx을 걸러낸 뒤 다시 배기가스를 냉각시켜 신선한 공기와 함께 엔진에 주입하는 역할을 한다. 배기가스를 재주입하는 장치여서 엔진 출력을 감소시키는 부작용이 있지만, 친환경 규제에 따라 배기가스 내 유해물질을 줄이기 위해 최근 차종에는 해당 장치가 추가되는 추세다.

BMW 측은 디젤 엔진에 장착된 EGR이 NOx을 걸러낸 고온의 배기가스를 냉각시키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EGR 냉각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누수가 생겨 400도가 넘는 배기가스가 흡기라인으로 유입되면서 차량이 과열돼 화재가 발생했다는 것. 이 때문에 BMW는 8월 진행될 리콜에서 EGR모듈 부품을 교체할 예정이다.

하지만 BMW 측의 설명을 그대로 신뢰하기는 어렵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BMW 측이 사고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는 EGR은 다른 업체의 차종에서도 사용되는 부품이지만, BMW와 같은 화재 사고가 발생한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해당 부품은 국내 하청업체가 제조한 것이지만 글로벌 BMW 디젤 차량에 모두 사용되는 것이며, 현대·기아자동차에도 납품되고 있다. 유럽이나 현대·기아차에서 EGR로 인한 과열 문제로 화재사고가 발생해 리콜이 시행된 경우는 없다.

이호근 대덕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3일 KBS와의 인터뷰에서 “국내 자동차 메이커도 같은 제품을 쓰는 EGR이 있는데, 그렇다며 그 제품들도 손상이 가야한다”며 “EGR가동률을 높이면서 배출가스를 상당히 저감시키는 BMW 고유의 프로그램 운용 방식에서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EGR 부품을 제조한 국내 하청업체의 문제가 아니라 해당 부품을 운용하는 BMW의 소프트웨어가 과부하를 초래했다는 것.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BMW가 국내 환경 규제 기준을 맞추기 위해 무리하게 EGR을 가동시키도록 프로그램을 설정한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반면 국토부에서는 BMW의 EGR모듈 관련 소프트웨어는 유럽의 높은 환경기준에 맞춘 것으로, 한국과 유럽이 동일한 설정을 적용하고 있다며 해당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BMW 측의 EGR원인설에 의구심이 가는 또 다른 이유는 디젤뿐만 아니라 가솔린 차량에서도 화재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지난달 4일에는 가솔린 차량인 BMW 미니쿠퍼가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도산대로 네거리 인근에서 불길에 휩싸이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 밖에도 올 상반기에는 BMW 528i, 428i, 740i 등 가솔린 차량에서 화재 사고가 발생한 바 있다.

현재 해당 차종들은 BMW와 국토부가 발표한 리콜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BMW 측은 가솔린 차량 화재 사고에 대해 “차량이 전소돼 원인을 확인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국토부는 “연간 자동차 화재가 5000여건 정도인데, 특정 브랜드의 가솔린 차량 3대가 불이 난 것은 평균적인 범주에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서울 강남구의 한 기계식 주차장 입구에 BMW 차량 주차를 금지한다는 경고문이 붙어 있다.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일각에서는 BMW가 화재 원인을 축소·은폐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현재 화재가 발생한 디젤 차량은 모두 2016년 11월 이전 제작된 EGR이 장착된 차량으로, BMW는 당해 12월부터 개량된 EGR을 사용해왔다. 이 때문에 소비자들은 BMW가 2016년 11월 이전 제조된 EGR 부품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숨기고 개량 조치를 취한 것 아니냐며 의구심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KBS가 이날 보도한 바에 따르면 BMW는 화재가 발생한 차량을 정비하면서 부품 교체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 삭제 조치까지 시행한 것으로 밝혀졌다. 사고 차량의 EGR 작동 과정을 추정할 수 있는 기록까지 삭제한 것은 BMW의 EGR 운용 소프트웨어에 문제가 있는 것을 숨기기 위한 조치로 보일 수 있다.

이처럼 BMW 측의 원인 설명이 설득력을 얻지 못하면서 여론도 점차 악화되는 분위기다. 지난 2일에는 서울 강남구의 한 건물의 기계식 주차장 입구에 “방문자 BMW 승용차는 절대 주차하실 수 없습니다”라는 경고문이 붙어있는 사진이 여러 온라인커뮤니티에 올라와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 누리꾼은 “기계식 주차장에서 화재사고가 발생하면 대참사로 이어질 수 있다”며 “BMW 차량을 거부한 건물주 판단이 현명한 것”이라며 말했다. 다른 누리꾼 또한 “BMW 이미지가 ‘폭망’했다”며 “갤럭시노트7도 이정도 속도로 터지지는 않았다”고 꼬집었다.

한편 국토부는 3일 BMW로부터 EGR을 원인으로 지목한 기술근거자료를 넘겨 받고 화재 사고에 대한 진상규명에 돌입할 예정이다. 국토부는 “관련기관과 민간 전문가를 다 참여시켜서 최대한 빠른 시일 내 규명하겠다”며 “이 과정에서 발견되는 문제에 대해서는 법적 절차에 따라 엄중하게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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