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 관련 증권선물위원회 긴급 브리핑 자료를 들고 있는 김용범 증권선물위원장.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금융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가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콜옵션을 공시하지 않은 것에 고의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분식회계를 통한 이익 부풀리기 의혹에 대해서는 금융감독원에 추가 감리를 요청했다.

김용범 증선위원장은 12일 오후 4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이같은 내용을 발표했다. 김 위원장은 “삼성바이오가 바이오젠에게 부여한 삼성바이오에피스 주식 콜옵션 등 관련 내용을 공시하지 않았다”며 “이 부분에 대해 회사가 명백한 회계기준을 중대하게 위반했고 그 위반 가능성을 인식하고도 고의로 공시를 누락했다”고 설명했다.

반면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지난 2015년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변경하는 과정에서 회계기준을 부당하게 변경해 이익을 부풀린 혐의에 대해서는 판단을 유보했다. 김 위원장은 “관련 회계기준의 해석과 적용과 구체적 사실관계에 대해 심도있게 논의했으나 (분식회계라는) 핵심적 혐의에 대한 금감원의 판단이 유보돼 있어 (금감원) 조치안이 정확성과 구체성의 측면에서 미흡하다고 판단했다"며 금감원에 추가 감리를 요청했다.

증선위가 사실상 공시누락 외의 혐의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상장폐지’라는 최악의 결과는 면하게 됐다. 유가증권시장 상장규정 시행세칙에 따르면 공시 누락은 상장적격성 실질심사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

하지만 업계에서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상폐 여부보다는,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정과의 연관성에 더욱 주목하고 있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삼성바이오로직스가 회계기준을 변경해 이익을 부풀린 것은, 당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최대주주였던 제일모직의 가치를 높여 삼성물산과의 합병비율을 이 부회장에게 유리하게 조작하기 위한 시도라며 비판해왔다. 증선위가 이에 대하 어떤 판단을 내리느냐에 따라 이 부회장의 승계 작업 전체가 물거품이 될 수도 있는 상황.

하지만 증선위가 핵심 쟁점이었던 분식회계를 통한 이익 부풀리기 혐의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면서 이 부회장도 한숨을 돌리게 됐다. 금감원은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지난 2015년 근거 없이 회계처리 기준을 변경한 것이 문제라고 주장했지만, 증선위는 2015년 이전의 회계처리 기준이 올바른지에 대해 먼저 검토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 일각에서는 증선위가 삼성을 봐주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 부회장이 아직 웃을 단계는 아니다. 증선위가 회계기준 변경에 대해서는 판단을 유보했지만 콜옵션 공시 누락을 인정한 것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정의 정당성에 타격이 될 수 있기 때문. 참여연대에 따르면, 만약 바이오진의 콜옵션 부채를 삼성바이오로직스 가치 평가에 반영할 경우 적정 합병비율은 약 1:0.5로 당시 합병비율인 1:0.35를 크게 상회한다. 참여연대는 “콜옵션 부채를 반영했다면 국민연금은 1대 0.35라는 합병비율을 수용할 수 없게 된다”며 “국민연금은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에 반대표를 행사했어야 함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참여연대는 이어 콜옵션 공시 누락으로 인해 삼성그룹 최대주주 일가가 총 1조1000억~1조3000억원 이상의 이득을 본 반면, 국민연금은 1800억~2000억원의 손실을 보게 됐다고 덧붙였다.

또한 회계처리 기준 변경에 대한 금감원의 추가 감리가 남아있는 것도 부담이다. 증선위가 일단 이 부회장의 손을 들어줬지만, 금감원의 감리 결과에 따라 상황이 바뀔 여지는 아직 남아있다.

한편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증선위 발표에 대해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시장 경제체제 사회라면 너무나 당연한 상식의 승리”라면서도 “부족하고 미뤄진 정의의 실현이 있다는 점에서 절반의 승리”라고 평했다. 박 의원은 이어 “수많은 투자자의 손실과 시장의 혼란을 가져온 이 중대 범죄를 누가 어떤 의도로 자행했는지 검찰 수사에서 명확하게 밝혀져야 한다”며 “모의하고 실행한 이들 뿐 아니라 방조하거나 조력한 세력에 대해서도 엄정한 법의 처벌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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