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 넌, 리처드 루거 전 상원의원은 지난 4월 워싱턴포스트에 과거 구소련 붕괴 이후 우크라이나 등 신흥 공화국에 적용했던 비핵화모델을 북한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내용의 글을 게재했다. <사진=워싱턴포스트 홈페이지 갈무리>

[이코리아북미정상회담을 앞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 비핵화를 위한 해법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리비아식 일괄타결 모델보다는, 과거 구소련 붕괴 이후 연방 국가들의 비핵화 모델을 참고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함께 샘 넌·리처드 루거 전 상원의원을 만나 과거 구소련 붕괴 이후 비핵화 과정에 대한 설명을 듣고, 북핵 해법에 대해 조언을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넌·루거 전 의원은 과거 구소련 해체 이후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등 4개 공화국에 배치된 핵·대량살상무기의 폐기를 위한 협력위험감소(Cooperative Threat Reduction, CTR) 프로그램의 창시자다. 1991년 ‘넌-루거 법안’의 발의로 시작된 CTR 프로그램은 소련 붕괴로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엄격한 통제가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위험 단체, 국가 등으로 밀반출되는 사태를 막기 위해 미국이 폐기 및 반출을 위한 재정·기술적 지원을 제공하는 계획이다. 초기에는 국방부 예산으로 시작됐지만 이후 국무부, 에너지부, 상무부 등이 협조체제를 구축했고, 2003년부터는 4개국 외의 다른 지역에도 확대 적용되기 시작했다.

핵비확산 분야의 '마샬플랜‘으로 불리는 CTR 프로그램은 북핵 해법을 위한 좋은 참고자료로 활용될 전망이다. 미국은 1991년부터 2012년까지 4개국에 매년 약 10억 달러의 비용을 지출하며 비핵화 과정을 지원했으며, 핵폐기에 따른 안보공백을 미국·영국·러시아 등 주변국들이 안보조약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메웠다. 기존 핵개발 분야에 종사하던 연구자들도 새로운 분야에서 일할 수 있도록 자리를 제공함으로서 핵물질뿐만 아니라 핵기술이 잠재적 위험국가로 반출되는 사태를 방지했다.

한때 세계 3위 핵보유국이었던 우크라이나는 CTR 프로그램의 대표적 성공 사례다. 당시 우크라이나 의회 및 군부는 핵무기를 포기할 경우 잠재적 적대국인 러시아를 견제할 수단이 없다는 이유로 비핵화에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논의 끝에 모든 핵시설을 포기하기로 미국과 합의했고, 미국은 보상으로 안보조약을 통한 체제안전보장, 경제적 지원, 서방사회 편입 등을 제공했다. 핵시설 중 평화적 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장비는 우크라이나 과학기술센터와 같은 민간시설로 전환시켜 종사자들의 재취업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북한은 ▲강대국과 맞서기 위해 핵보유가 필요하다고 주장해왔으며 ▲경제성장을 위해 핵무기를 포기할 의사를 내비쳤다는 점에서 당시의 우크라이나와 사정이 비슷하다. 핵폐기와 체제보장 및 경제지원을 맞교환하는 외교적 비핵화 해법인 ‘넌-루거 모델’이 북핵문제의 대안으로 조명되고 있는 이유다. 특히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이 주장해온 ‘리비아 모델’에 비교하면, 북한 입장에서도 받아들이기 수월한 방안이다.

반면 ‘넌-루거 모델’을 북한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는 반론도 있다. 당시 우크라이나에 배치된 핵무기는 모두 구소련의 것으로 수량과 소재에 대한 정보가 투명하게 파악되어 있는 상태였다. 아직 핵무기와 관련된 정보가 베일에 가려져 있는 북한과는 핵폐기·검증의 난이도가 다른 셈이다. BBC의 군사전문기자 조나단 마커스는 지난달 한 대담에서 “(과거의 비핵화 사례 중) 북한과 연관성이 있는 사례는 없다”며 “다른 비핵화 사례는 모두 특수한 경우였고 현재 북한의 핵보유 능력을 감안하면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비핵화 동기의 차이도 있다. 당시 우크라이나 정부는 러시아와의 관계에서 소규모 핵전력을 보유하는 것이 안보에 오히려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핵무기 정보를 숨기면서 협상력을 극대화하고 있는 북한과 달리, 핵무기 정보가 완전히 파악된 우크라이나는 핵전력을 통한 외교적 줄다리기를 시도하기 어려운 상황이었기 때문. 따라서 우크라이나 정부는 비교적 빠르게 핵폐기에 합의할 수 있었다.

또한 ‘넌-루가 모델’을 통해 합의에 이른다 해도 비핵화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가능성이 있다. 우크라이나는 1994년 3월 미국·러시아와 3자 협정을 체결한 뒤 비핵화에 돌입했지만 최종적으로 비핵화 절차가 마무리된 것은 4년 뒤인 1998년이었다. 우크라이나와 달리 직접 핵·미사일을 개발했으며, 관련시설 정보가 부족한 북한의 경우 우크라이나보다 더 오랜 기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북핵 해법을 찾기 위해 ‘열공’ 중인 트럼프 대통령이 ‘넌-루거 모델’을 반면교사 삼사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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