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리아삼성생명이 30일 이사회에서 약 1.11조원 규모의 삼성전자 주식을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금융업계는 이번 매각 결정이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 작업으로 이어질 가능성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삼성생명·삼성화재는 지난 30일 이사회에서 보유 중인 삼성전자 주식 각각 2298만3552주(0.38%), 401만5448주(0.07%)를 31일 개장 전 시간외대량매매(블록딜) 방식으로 매각하겠다고 결정했다.

이는 삼성전자의 자사주 소각을 앞두고 금융계열사 지분율을 10% 이하로 낮추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현행 금산법(24조)에 따르면 금융사가 보유한 비금융계열사 지분은 10%를 초과할 수 없으며, 만약 초과할 경우 금융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현재 삼성생명(8.27%)과 삼성화재(1.45%)가 가진 삼성전자 주식을 더하면 총 9.72%로 10%를 넘지 않는다.

삼성전자는 연내 40조원 규모의 자사주를 소각하겠다고 발표한 상황이다. 만약 자사주 소각이 예정대로 진행된다면, 삼성생명과 삼성화재의 보유지분은 각각 8.90%, 1.55%로 늘어나 총 10.45%로 현행 규정을 위반하게 된다. 금융업계는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삼성전자 자사주 소각에 따른 법적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선제적 대응에 나선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반면 일각에서는 삼성생명에 지속적인 삼성전자 지분 매각 압력이 있었던 만큼, 삼성그룹이 결국 지배구조 개선 작업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예측도 제기되고 있다. 김상조 공정위원장은 지난 10일 대기업 지배구조 개선 정책간담회에서 “삼성도 삼성생명을 통해 이어지는 삼성그룹의 소유지배구조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며 “결국 결정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삼성생명이 이번에 매각한 삼성전자 지분 0.38%에 더해 추가로 매각해야 할 지분은 최소 3.3%다. 금융사의 비금융사 지배를 금지하고 있는 현행법상, 삼성전자의 2대주주 삼성물산이 보유한 지분(4.63%)보다 낮은 비율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 게다가 현재 국회 계류 중인 보험업법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추가 매각분 규모는 더욱 늘어날 수 있다. 보험사의 계열사 주식·채권 보유한도를 총 자산의 3%로 규정한 현행 보험업법은 보유자산을 ‘취득원가’로 표기하고 있는데, 이것을 ‘시가’로 변경할 경우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 총액은 총 자산의 3%를 훌쩍 뛰어넘게 된다. 만약 보험업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삼성생명이 처분해야 할 지분 규모는 총 2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추산된다.

문제는 이렇게 막대한 규모의 지분을 처분하면서 경영권을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지난해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삼성전자가 삼성생명의 보유지분을 매입할 수 있는 길을 터줬지만, 당장 20조원의 자금을 마련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삼성물산이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을 매입하는 방안도 있지만, 지주사 강제 전환에 따르는 추가 부담을 감당하기 어렵다.

한편 금융업계는 삼성생명·삼성화재의 삼성전자 주식 매각은 예상된 조치인 만큼 시장에 단기적인 충격은 없을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31일 오전 11시 현재 삼성생명 주가는 전일 대비 4.19% 하락한 10만3000원, 삼성화재는 전일과 동일한 25만1500원을 기록하고 있다. 지분 매각 효과로 주가 하락이 우려되고 있는 삼성전자는 5만300원으로 전일 대비 1.62% 상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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