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폴리티코 홈페이지 갈무리>

[이코리아] 북한이 남북고위급회담 취소에 이어 리비아식 비핵화를 주장한 존 볼턴 미 국가안보보좌관을 비난했다. 미국은 북한의 반발에 대해 북미회담은 차질 없이 진행될 것이라고 발표하고 대책회의를 소집하는 등 발 빠른 대응에 나서고 있다.

CNN에 따르면 백악관은 북한이 남북고위급회담 취소를 발표한 직후인 15일(현지시간) 오수 2시경 긴급대책회의를 열고 대응 방식을 논의했다. 이날 긴급대책회의에는 국가안보회의(NSC) 위원 및 국방부, 국무부 등 유관 부처 관계자들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북미회담 취소까지 언급한 만큼, 사안의 중대함을 고려해 이례적으로 빠른 대응에 나선 것. CNN은 백악관 참모를 인용해 “백악관이 북측 통보로 허를 찔렸다”며, 트럼프 정부의 당혹감을 전했다.

대책회의에서 논의된 내용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북미회담과 관련된 변수를 차단하기 위한 논의가 진행된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긴급대책회의 후 백악관, 국무부 및 국방부 발표가 모두 북미회담에 차질이 없음을 강조한 점을 고려할 때, 대책회의에서 강경대응보다는 북한과의 갈등을 봉합하자는 결론이 내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대책회의 후 브리핑에서 헤더 나워트 국무부 대변인은 “우리는 북한 정부 또는 한국 정부로부터 이 훈련을 계속 수행하지 말라거나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의 회담 계획을 계속하지 말라는 의사를 내비치는 어떤 것도 들은 게 없다”며 “우리는 (북미정상) 회담 계획을 계속 세울 것”이라고 말했다.

새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 또한 16일(현지시간) 기자들과 만나 “나는 그것(리비아 모델)이 논의된 것을 본 적이 없다. 따라서 그것이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모델인지 알지 못한다”며 볼턴 보좌관의 의견과 선을 그었다. 샌더스 대변인은 이어 “(북핵 협상에 있어서) 정해진 모델은 없다”며 “이것은 트럼프 대통령 모델이다. 그가 알맞다고 생각하는 방식대로 협상을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미국의 대응을 볼 때 트럼프 대통령은 긴급대책회의를 통해 볼턴 보좌관의 주장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기로 결정을 내린 것으로 분석된다. 볼턴 보좌관은 국가안보보좌관 취임 이전부터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을 주장해온 대표적 강경파다. 그는 트럼프 내각에 입성한 이후에도 일괄타결식 핵폐기 후 보상을 제공하는 리비아식 모델을 북한에 적용할 것을 주장해왔다. 지난 13일(현지시간)에는 A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핵무기를 폐기해 미국 테네시주 오크리지로 보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같은 볼턴 보좌관의 강경론은 북미회담에 많은 것을 걸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과는 차이가 있다. 당장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 이번 북미회담은 최대의 정치적 이벤트다. 외신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미 엄청난 정치적 자원을 북미회담에 투자한 만큼 북미회담을 파국으로 몰고 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취임한 지 얼마 안 된 볼턴 보좌관을 해임하지는 않겠지만, 북미회담 논의의 중심에서 밀어내고 북한에 어느 정도 타협안을 제시할 가능성도 있다.

오바마 정부에서 국가안보회의 위원을 역임했고 부시 정부에서 북한과의 대화에 참여했던 로라 로젠버거는 16일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를 통해 “북한은 한반도 종전을 선언하며 정상회담의 환상에 빠져있는 트럼프 대통령과 비핵화 강경론자인 볼턴 보조관 사이에 틈이 있다고 계산하는 듯 보인다”고 지적했다. 로젠버거는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의 회담 성공에 대한 열망으로 인해 볼턴 보좌관을 무시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북한은 남북고위급회담을 당일 취소하고 볼턴 보좌관을 공개 비난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내부 잡음을 정리하고 북한에 적절한 타협점을 제시해 줄 것을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빠른 진화에 나선 백악관과 달리 볼턴 보좌관은 여전히 강경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볼턴 보좌관은 16일 폭스 뉴스 인터뷰에서 북한의 비난에 대해 “이런 반응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며 나에게는 매우 익숙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2003년 조지 W. 부시 정부 당시에 나는 북한 김정일 위원장을 ‘폭군’, ‘독재자’로 불렀고, 북한은 나를 ‘인간쓰레기’, ‘흡혈귀’라고 원색적으로 욕했다”라고 회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6일 북미회담 취소 여부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지켜봐야 할 것이다”(We'll have to see it)라며 말을 아꼈다. 하지만 북한의 남북고위급회담 취소 발표 이후 미국 측의 대응을 보면 볼턴 보좌관의 희망과는 달리 한 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북한의 반발과 볼턴 보좌관의 고집 사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선택을 내릴지 관심이 집중된다.

저작권자 © 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