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인 대통령 외교안보특보.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문정인 대통령 외교안보특보가 다시 주한미군 관련 발언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일각에서는 문 특보의 발언에 대해 북미회담이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주한미군 철수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경솔하다고 비난하고 있다. 반면 다른 편에서는 글 전체의 맥락에서 벗어나 특정 문장만을 강조해 문 특보가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한 것처럼 왜곡해서는 안된다고 반박하고 있다.

◇ 주한미군 문제 놓고 우려 제기

문 특보는 지난달 30일 미국의 외교전문매체 ‘포린어페어즈’(Foreign Affairs)에 “한반도 평화로 가는 진정한 길”이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게재했다. 문 특보의 기고문은 총 세 부분으로 이뤄져 있는데, 이중 서론과 첫 두 단락은 모두 지난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를 설명하는 내용이다. “앞으로의 가시밭길”이라는 부제가 달린 마지막 단락은 정상회담에서 이뤄진 평화적 합의 이행을 위해 극복해야 할 난제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문제가 된 문장은 마지막 단락의 끝부분에 포함돼있는데 해당 문단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한국도 내부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평화협정에 서명하면 주한미군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까? 협정 이후에는 주한미군의 지속적인 주둔을 정당화하기 어려울 것이다. 반면 보수파는 주한미군의 감축이나 철수에 대해 강력하게 반발할 것이며, 이는 문 대통령에게 중요한 정치적 딜레마가 될 것이다. 비록 문 대통령이 정권이 바뀐 이후에도 판문점 선언이 이행될 수 있도록 국회비준을 추진하고 있지만, 보수파의 반대는 국회 비준을 막고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노력을 지연시킬 것이다.

문 특보는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한국 내 보수파의 반발이 있으며, 주한미군 문제와 판문점 선언 비준 문제가 주요 이슈가 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얼핏 보면 평화협정 이후 주한미군이 계속 주둔할 이유가 없다는 의미로 읽히지만, 맥락을 살펴보면 향후 주한미군 정당성에 대한 논란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예측에 가깝다. 남북평화정착을 위해서는 문 대통령이 국내 보수파의 반발이라는 정치적 과제를 해결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주한미군이 이슈로 부각될 수 있다는 것.

실제로 문 특보는 이 기고문에서 김 위원장이 실용적이고 현실적으로 회담에 임했다고 평가하며,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지 않았다는 점을 그 이유로 들었다. 또한 지난 2009년 발표한 논문에서도 “주한미군의 위상과 역할은 기존의 대북 억지력 차원에서 지역적 분쟁에 신속히 투입될 수 있는 지역적 기동타격대로의 역할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며 “주한미군의 역할변화에 따라 대북 억지력 차원의 한미동맹은 향후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담당하는 지역안보 동맹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문 특보의 입장을 주한미군 철수론으로 해석하기는 어려워보인다.

문정인 특보의 기고문에서 논란이 된 부분. <사진=포린어페어즈 홈페이지 캡처>

◇ 기고문은 어떤 내용?

해당 문장이 특히 부각됐지만, 문 특보의 기고문의 전체적인 내용은 대부분 지난 남북정상회담 성과에 대한 찬사로 채워져 있다. 문 특보는 서론에서 “세 번의 남북정상회담에 모두 참석했지만, 이번 회담에서야말로 진정한 발전과 평화의 토대가 구축됐다”며 합의 이행을 위한 구체적 일정과 조치들이 논의된 점을 높게 평가했다. 서론에 이어진 기고문의 첫 단락에서는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전환을 비롯해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설치, 광복절 이산가족 상봉, 남북 상호 간 적대적 군사행동 중단, 서해 NLL 평화수역 조성 등의 성과들이 그 중요성과 함께 설명돼있다.

두 번째 단락도 비슷한 내용이다. 문 특보는 ▲그동안 경제이슈를 우선해온 남측과 군사정치이슈를 중시해온 북측이 이번 회담에서 처음으로 군사정치이슈(비핵화)에 주목하기로 합의했다는 점 ▲핵문제를 남북대화의 아젠다에서 배제해온 북한이 비핵화에 대한 문서화된 합의를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이번 남북정상회담의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또한 이번 남북정상회담의 성공 원인으로 ▲김 위원장의 전략적 결단 ▲문 대통령의 중개자 역할 ▲압박과 대화를 병행한 트럼프 대통령의 노력을 꼽기도 했다.

마지막 단락은 한반도 평화를 위해 남아있는 문제들에 대한 설명이다. 문 특보는 크게 비핵화에 대한 한국, 북한, 미국의 서로 다른 입장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문 특보에 따르면 북한은 미국으로부터 최대한의 이득을 얻어내기 위해 점진적이고 동시적인 비핵화를 선호한다. 비핵화 단계를 여러 개로 나누고, 매 단계마다 그에 따른 보상이 동시적으로 주어지는 방식이다. 반면 미국은 ‘선 비핵화, 후 보상’을 통한 일괄 타결을 선호한다. 한국은 압축적인 일정에 따라 단계적 비핵화를 이행하는 절충안을 주장하고 있다.

문 특보는 북한이 과거와 같이 점진적·동시적 비핵화를 주장할 경우 한국과 미국이 받아들일 수 없을 거라며 합의 전체가 무너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문 특보는 이어 북한은 이미 비핵화의 보상은 크지만 핵개발은 고통스러운 길이라는 점을 잘 이해하고 있다며, 과거의 전술을 고집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 청와대 “평화협정 이후에도 주한미군 주둔 필요”

한편 청와대는 문 특보 기고문의 한 문장으로 벌어진 논란에 대해 주한미군은 여전히 필요하다며 진화에 나섰다. 청와대 김의겸 대변인은 이날 문 대통령이 참모들과의 회의에서 “주한미군은 한·미동맹 문제이다. 평화협정 체결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김 대변인은 이어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은 조금 전 문정인 특보에게 전화를 걸어 대통령의 이런 말을 전달한 뒤 대통령 입장과 혼선이 빚어지지 않도록 해 달라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문 특보의 말에 얽매이지 않는다”면서 “문 특보는 특보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누리는 교수다. 정책방향을 설정하는데 있어 풍부한 정치적 상상력을 도움받기 위해 특보로 임명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야당은 해당 발언에 대해 문 특보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장제원 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주한미군 철수가 청와대 입장이 아니라면 문정인 특보를 즉각 파면하라”고 촉구했다. 바른미래당 박주선 공동대표 또한 문 특보에 대해 “문재인 특보인지 김정은 특보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강하게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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