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민주화운동 당시 가두방송을 했던 차명숙씨가 30일 오전 광주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당시 광주교도소 수감기록을 공개했다.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5·18 광주민주항쟁 당시 가두방송의 주역 차명숙씨가 38년만에 신군부의 고문 만행을 폭로했다. 차씨는 30일 광주시의회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보안대와 상무대 영창에서 받은 고문으로 하얀 속옷이 까만 잉크색으로 변하도록 살이 터져 피가 흘러나와 앉을 수도 누울 수도 없었다”며 당시 고문 실상을 밝혔다.

차씨는 자신의 수감기록을 공개하며 "80년 5월에 자행한 고문수사와 잔혹행위에 대한 진실을 밝히고 가해자들을 처벌하라"고 촉구했다.

차씨는 80년 5월 당시 열아홉살 꽃다운 나이에 계엄군의 만행을 목격하고 자신해서 가두방송에 참여했다. 차씨는 병원에 실려온 부상자들을 보살피던 중 계엄군에 연행돼 보안대로 끌려갔다. 이후 보안대와 상무대 영창에서 갖은 고문을 당하며 협박과 회유를 당했다.

차씨는 "아직도 언제 붙잡혔는지, 어느 병원에서 붙잡혔는지조차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38년이 지나서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은 끔찍한 고문이다. 보안대의 고문은 너무나 가혹하고 잔인했다. 특히 여성들에게 가해진 고문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치욕적이었다”라고 회상했다.

차씨는 수감 기록을 근거로 "9월 30일 오후 5시께 교도관 3명이 들어와 내 등 뒤로 수갑을 채우고 곤봉을 끼웠다. 수사관들은 이미 정해진 7가지 항목을 정해두고 죄목이 추가되면 사형이나 종신형까지 받을 수 있으니 자신들이 하라는 대로 시인하라고 협박했다"고 말했다.

차씨는 "쇠줄에 묶인 가죽수갑을 양 손목에 찬 채 먹고 자고 볼일을 보면서 짐승만도 못한 상태로 지내야 했다. 38년이 지난 지금도 그날의 기억과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차씨는 당시 교도소에 수감돼 고문 수사를 받은 이유를 알지 못했으나 최근에 수감기록을 확인하면서 알게 됐다고 말했다. 차씨는 "수감기록에 80년 9월21일 오후 8시쯤 광주교도소 여사1호실에서 같이 수감 중이던 동료에게 '불온언사'를 발언했다고 적혀 있었다"고 말했다.

수감기록에는 '불온언사 발언'이라는 제목에 '5·18때 전두환 첩자, 방첩대 첩자, 경찰관 첩자들이 우리 사이에 끼어 간첩이 있는 것처럼 연극을 하며 독침사건을 벌였다', '이승만 때 여순사건, 제주사건만 보더라도 우리나라는 똑똑한 사람은 다 죽이려고 했었다', '5·18에서 정부는 계속 거짓말을 하고 있으며 학생·시민이 다쳐 죽은 것은 보여주지 않고 군인들만 다쳐 후송한 것만 보여주고 있다'는 등의 내용이 적혀 있다.

차씨는 가해자에 대한 처벌과 진상 규명도 요구했다. 차씨는 "5·18관련 수감자들을 잔혹하게 고문하고 협박·회유한 가해자에게 책임을 묻기 위해 광주교도소를 형사고발할 생각이다. 광주교도소는 지금이라도 80년 5월에 자행한 고문수사와 가혹행위에 대해 사죄하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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