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 초청 오찬에서 발언 중인 문재인 대통령.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문재인 대통령이 지지부진했던 개헌 논의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지난 13일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로부터 대통령 4년 중임제를 골자로 정부 개헌안 초안을 보고받은 문 대통령은 21일 발의하겠다고 예고했다.

국회 심의와 투표 공고 등에 걸리는 시간을 감안하면, 21일 개헌안 발의는 6월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를 동시 실시하기 위한 마지노선이다. 문 대통령은 “이번 지방선거 때 동시투표로 개헌하자는 것이 지난 대선 때 모든 정당과 모든 후보가 함께 했던 대국민 약속이었는데 국회가 그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있어서 매우 안타깝다”며 “대통령이 마련하는 개헌안을 조기에 확정해 국회와 협의하고, 국회의 개헌 발의를 촉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21일 직접 개헌발의권을 행사하기 전 국회에서 먼저 개헌 논의를 진전시켜달라는 당부인 것.

한편 문 대통령이 개헌논의에 속도를 내면서 주요 언론사에서도 일제히 이 소식을 비중 있게 다뤘다. 대부분의 일간지에서 그동안 개헌 논의를 지연시켜온 국회에 책임을 묻고 있는 반면,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문 대통령의 개헌안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밝혔다.

◇ “대통령 발의 전 국회 책임 다해야”

14일 주요 일간지들은 국회가 그동안 개헌 논의를 미뤄온 것을 비판하며 대통령 개헌안 발의 이전에 국회에서도 개헌 논의를 서둘러야 한다고 촉구했다. 경향신문은 이날 사설에서 “개헌의 중심이 되어야 할 국회는 논의조차 하지 않는데 대통령은 착착 개헌을 준비하고 있다”며 “문제는 시민의 뜻을 물어 개헌을 주도해야 할 국회가 개헌 논의를 진척시키지 않고 있는 점”이라고 말했다. 경향은 특히 4년 중임제를 더불어민주당의 정권연장 음모라고 비난하고 있는 자유한국당에게 “과거 자신들이 4년 연임제를 주장하고 지방선거 때 투표하자고 공약한 사실을 잊은 듯하다”고 지적했다. 경향은 이어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는 최후의 수단이다. 개헌은 국회가 주도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한국당이 개헌안을 내놓고 여야가 밀도있게 논의하면 개헌할 수 있다”고 한국당의 적극적인 개헌 논의 참여를 촉구했다.

동아일보는 자유한국당에 대해 개헌논의 지연의 책임을 물었다. 동아일보는 이날 사설 “대통령 개헌안 반대하는 野, 과연 개헌의지는 있나”에서 “한국당은 10월 개헌 투표를 주장하지만, 그때는 무슨 동력으로 개헌을 밀고 갈 건가. 개헌에 여유를 부리는 국회를 보면 과연 개헌 의지가 있는가 하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라고 주장했다. 동아일보는 이어 “정부의 개헌안이 미흡하다면 국회가 새로운 개헌안을 마련하면 된다”며 “여야는 하루빨리 자당(自黨)의 개헌안을 제시하고 개헌 논의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국일보는 국회가 개헌 논의를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문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는 무리수가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한국일보는 이날 사설에서 “문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 다짐은 대선 당시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읽힌다”면서도 “‘대통령 개헌안’이 발의되는 순간, 정국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정쟁의 소용돌이에 말려들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야당이 정부 개헌안에 대해 이견을 보이고 있기 때문.

한국일보는 국회 책임도 강조했다. 한국일보는 사설에서 “6월 개헌은 지난 대선 때 모든 정당이 약속했는데도 공약을 지키려는 노력은 빠뜨린 채 문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 준비만 비난하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지적했다. 한국일보는 이어 “특위의 자문안은 대체로 쟁점을 잘 정리했다. 야당이 반발하는 권력구조도 대통령 인사권ㆍ예산권ㆍ감사권 등을 국회에 대폭 이양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어 접점을 찾지 못할 것도 아니다”라며 국회 주도의 구체적 개헌안 작성을 서두를 것을 주문했다.

◇ 조선·중앙, “제왕적 대통령제 개선해야”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개헌 논의 지연에 대한 국회, 특히 야당의 책임을 지적하면서도,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을 견제하겠다는 당초 개헌 취지에는 미흡하다며 문 대통령 개헌안의 내용 비판에 초점을 맞췄다.

조선일보는 이날 사설에서 “이번 개헌 논의는 대통령 탄핵 사태에 대한 반성으로 시작된 것이다. 제왕적 대통령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게 국민적 공감대였다”라며 “문 대통령 개헌안은 5년 단임 대통령제를 4년 연임제로 바꾸었을 뿐 정작 중요한 권력 분산은 사라져버렸다”고 지적했다. 감사원 독립이나 대통령 특별사면권 제한 등의 조치로는 부족하다는 것. 조선일보는 이어 “수도(首都)를 법률로 정하게 한 것, 토지 공개념 확대, 공무원 노동3권 허용, 영장제 개편, 국회의원 선거제도, 대통령 결선 투표제, 예산 시스템, 국민의 사법 참여 등 모두가 논란을 일으켜 개헌논의 자체를 산으로 보내버릴 것”이라며 “개헌할 생각이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고 비판했다.

조선일보는 “한국당이 소리(小利)를 버리고 약속대로 제왕적 대통령제를 바꾸는 개헌에 적극 나섰다면 대통령이 개헌에 개입할 수 없었다”며 “개헌 논의가 이 지경이 된 것은 자유한국당 책임이 가장 크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대통령이 개헌안을 제출하고 국회서 부결되면 개헌 동력은 살아나기 어렵다”며 개헌 논의를 대통령 권력 분산과 지방자치 확대로 축소시켜 빠른 시일 내에 여야 합의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앙일보는 문 대통령의 이번 개헌 드라이브는 사실상 ‘국회 압박용’이라며 “개헌 공약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는 결의를 보여 설사 개헌안 발의에 실패해도 ‘자유한국당 심판론’을 앞세울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문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 예고를 실질적인 개헌논의보다는 책임회피용이라고 분석한 것. 중앙일보는 이어 “정부 주도 개헌안이 나오게 된 건 정치권, 특히 야당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며 야당이 “개헌 투표를 병행하면 지방선거에서 불리할 것이란 걱정”으로 인해 개헌논의에 소극적이었던 점도 지적했다.

중앙일보는 “많은 국민이 개헌에 찬성하는 건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최종 확정된 건 아니지만 정부 초안은 이런 폐단에 대한 근본적 견제 방안엔 미흡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지적했다. 대통령 4년 연임제가 오히려 대통령 권한을 강화할 수 있는데다, 정부 주도의 개헌 드라이브도 올바르지 못하다는 것. 중앙일보는 “당초의 개헌 논의가 제왕적 대통령의 폐해를 없애야 한다는 필요성에서 출발한 만큼 논의를 여기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며 “여야가 개헌 시기만이라도 합의하고 국민에게 함께 공표하는 정도의 결과물을 하루속히 내놓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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