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이 교직원의 총기 무장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해 논란을 빚고 있다. <사진=CNBC 홈페이지 캡처>

[이코리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벌어진 총기난사 사건에 대해 교사들도 총기로 무장해야 한다고 주장해 파문이 일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1일(현지시간) 17명의 사망자를 낳은 더글러스 고등학교 총기사건의 생존 학생과 희생자 부모들을 만난 자리에서 “총기에 능숙한 교사가 있었다면 사건을 빨리 끝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교직원을 무장시킬 것을 호소한 한 학부모의 발언을 두둔하며,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해 ‘총기금지구역’도 없애야 한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한 총격범 니콜라스 크루즈를 “아픈 사람”이라고 지칭하며 “정신건강에 초점을 맞춘 방안을 생각 중이다”라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범죄자는 아니지만 행동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보낼만한 보호시설이 얼마 없다”며 이번 사건을 총기규제 문제가 아닌 정신건강 문제로 규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총기 사고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대책에 피해자들은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번 사건으로 6살 난 아들을 잃은 니콜 호클리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개인적으로 (교직원 무장을) 지지하지 않는다. 무기보다는 이런 일이 애초에 일어나지 않도록 방지할 수 있는 지식으로 교직원들을 무장해야한다”고 호소했다. 생존자인 샘 자이프도 “오늘 20살 청년이 총기판매점에 들어가 위조신분증으로 5분 만에 AR-15를 구매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어떻게 총기류를 사는 것이 이렇게 쉬울 수 있나? 어떻게 컬럼바인이나 샌디훅 사태를 겪고도 이런 일이 멈추지 않는 것인가”라고 울분을 토했다.

교계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교직원 무장 제안에 대해 잘못된 대책이라는 입장이다. 미국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의 21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교사연맹 랜디 바인가튼 회장은 “내가 아는 학교 관계자 중 이것(교직원 무장)의 정당성을 입증할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의 대책에 난색을 표했다. 바인가튼 회장은 “이를 제안하는 사람은 학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예 이해를 못하고 있거나, 아니면 전혀 관심이 없는 것”이라며 “아이들보다 전미총기협회(NRA)와 총기제조업체의 필요에 더 초점을 맞춘 대책”이라고 꼬집었다.

이번 사건을 총기문제가 아니라 정신이상자의 일탈행동으로 몰고 가려는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의 태도에 대한 비판도 제기됐다. 미국인터넷매체 복스(VOX)는 지난 21일 “정신장애가 아니라 총기가 문제다”라며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을 반박했다. 복스는 총기소유권리를 지지하는 보수파들이 폭력적인 비디오게임이나 전통적인 가족의 붕괴를 문제 삼다가, 최근에는 정신장애로 초점을 옮기고 있다며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컬럼비아 의과대학의 마이클 스톤 임상정신의학교수가 2015년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235명의 총격범 중 정신장애를 가진 것은 겨우 52명(22%) 뿐이었다.

복스는 미국에 총기난사 사건이 자주 발생하는 이유는 정신장애자가 특별히 많아서가 아니라 단순히 총기가 많이 보급됐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듀크대학교의 제프리 스완슨 정신의학 및 행동과학과 교수에 따르면 지난 2000년 기준 일본, 캐나다, 영국, 핀란드 등 치안수준이 높다고 알려진 14개 선진국과 비교해 미국의 범죄발생율은 평균적인 수준이었다. 특히 범죄피해자 중 폭력범죄 피해자의 비율이 15개국 평균 6.3%인 것에 비해 미국은 오히려 5.5%로 낮은 수준이었다.

문제는 총기규제가 이뤄지지 않는 미국에서는 폭력범죄가 사망에 이르는 확률이 지나치게 높다는 것. UC버클리 로스쿨의 프랭클린 짐링 교수와 범죄학자 고든 호킨스의 1999년 연구에 따르면 뉴욕과 런던의 재산범죄 발생율은 비슷하지만 재산범죄가 살인으로 이어질 확률은 뉴욕이 런던보다 54배나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두 연구자는 범죄에 총기를 사용하기 쉬운 미국의 환경이 이 같은 차이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피해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교직원 무장에 대한 참석자들의 찬반 의견을 확인한 뒤 “양 측 다 이해할 수 있다. 확실히 논쟁적인 사안이다”라고 말하며 심사숙고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끔찍한 총기사고에 대해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방식의 대응을 제시한 트럼프 대통령을 향한 총기소유 반대 여론의 비난은 더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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