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지성호씨가 지난달 30일 트럼프 대통령이 연두교서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목발을 들어 참석자들의 박수에 답하고 있다. <사진=CBS 홈페이지 캡처>

[이코리아] 평창올림픽으로 인한 남북화해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강경한 입장을 고수해온 미국이 ‘탈북자’라는 새로운 카드를 꺼내들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탈북자와의 만남을 통해 북한의 낮은 인권수준을 강조하며 새로운 압박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 트럼프, 탈북자 만나며 인권 압박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가 가시화되면서, 한미연합훈련 연기에 동의하고 군사옵션을 거론하는 과격한 발언을 자제하는 등 이전과는 달리 북한을 상대로 신중한 모습을 보여 왔다. 하지만 이것이 북미관계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군사옵션을 통한 힘의 과시 대신 다른 방식으로 북한의 입지를 고립시키기 위한 또 다른 외교적 전략을 채택했기 때문.

트럼프 대통령이 새로 들고 나온 카드는 ‘탈북자’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연두교서를 발표하는 자리에 탈북자 지성호씨를 초청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씨의 탈북 과정을 상세하게 소개하며 “지씨의 스토리는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모든 인간 영혼의 열망을 증명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씨의 탈북 사례를 통해 북한 정권의 아킬레스건인 인권 문제를 강조한 것.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일에도 탈북자 8명을 백악관으로 초청해 약 45분간 이야기를 나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군사옵션이나 경제제재와 관련된 언급은 자제했지만 북한 인권과 관련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모습을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반적으로 탈북자를 의미하는 ‘defector'보다 의미가 강한 ’escapee'(탈옥수)라는 단어를 사용했으며, 북한에 대해서도 “살기 어려워서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고 매우 위험한 곳”이라고 표현했다. 또한 “중국을 거쳐 한국에 정착한 탈북 여성 대부분이 인신매매의 피해자라고 들었다”며 “중국 정부에 인신매매 근절을 강력히 요청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 펜스부통령, “북한 정상화 좌시 않겠다”

탈북자를 통해 북한 인권 문제를 강조하는 미국의 외교 전략은 이번 평창올림픽 기간에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소리(VOA)는 지난 6일, 익명의 탈북자가 펜스 부통령이 올림픽 개막식인 9일 탈북자 5명과 간담회를 가질 것이라고 최근 주한미대사관으로부터 연락받았다는 사실을 밝혔다고 보도했다. 북한이 평창올림픽에 참가한 상황에서 미국 부통령이 탈북자들과 만난다는 것은, 최근의 유화 분위기로 북한의 이미지가 개선되는 것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게다가 펜스 부통령은 북한에 1년간 억류됐다 미국에 돌아온 뒤 사망한 오토 웜비어의 부모와 함께 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하겠다고 밝혔다.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강력한 상징이 될 웜비어 가족의 개막식 참석은 올림픽을 통한 북한의 선전 전략에 가장 큰 걸림돌이다. 한 백악관 관계자는 지난 5일 CNN을 통해 “펜스 부통령은 북한이 올림픽 메시지를 자신들의 선전을 위해 가로채는 행위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북한의 선전 전략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북한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을 강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 탈북자에게 미국은 ‘좁은 문’

하지만 트럼프 정부의 ‘탈북자’ 카드는 실질적인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노력이라기보다는 일시적인 외교적 수단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취임 이후 북한 난민에 대한 미국의 배려는 이전에 비해 오히려 인색해졌기 때문. 당장 지난 2017년 미국이 받아들인 북한 출신 난민은 겨우 1명으로, 그마저도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일인 20일 이전인 1월 12일에 난민 신청이 받아들여진 사례다. 그나마 지난 18일 10대 탈북자 2명이 난민지위를 인정받아 미국에 입국한 것을 포함하면, 트럼프 대통령이 받아들인 탈북 난민은 총 3명이다. 가장 많은 탈북자를 받아들인 2008년(38명)과 비교하면, 탈북자에게 미국으로 가는 문은 더욱 좁아졌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트럼프 정부는 지난해 10월 ‘2018 회계연도 난민수용계획보고서’를 발표하고 북한을 포함한 동아시아 난민 수용 쿼터를 지난해 대비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인 5000명으로 줄이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민자에 대한 폐쇄적 태도를 고수해온 트럼프 정부가 난민 쿼터를 전체적으로 줄이면서 탈북자에 대한 기회도 함께 감소하게 된 것.

미국의소리(VOA)는 지난 3일, 미 국무부의 북한인권특사가 1년째 공석이며 미국 민주주의진흥재단의 대북 인권 기금도 별다른 변화가 없다고 보도했다. 탈북자에게 문을 닫고 지원을 축소하면서 북한 인권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트럼프 정부의 현 행태는 외교적 목적을 위해 탈북자를 이용하는 것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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